영구 미제로 기록됐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인공지능 생성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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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지가 미국으로 돌아간 지 20년이 넘었다.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태원의 미국 여대생 살해 사건은 영구 미제로 기록됐다.

나는 아직도 의문이다. 죽은 백인 여대생은 목뼈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맞아 죽었다.

이태원의 오래된 건물인 작은 여관방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폭행당하는 순간의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도 있고 백인 남자가 그 방에서 나와 가더라는 진술도 있었다. 죽은 여대생이 전날 밤 미군과 어울렸다는 정황도 밝혀졌다. 그런데 사건이 '영구 미제'로 덮혀 버렸다.

같은 방에서 잤던 네덜란드인 애날루스는 정확히 상황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용의선상에 오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는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했다. 심지어 자느라고 아무것도 몰랐다고 했다. 피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바로 본국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수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진실을 덮으려는 강한 힘이 작용한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일 년이 지난 후 FBI는 켄지를 범인으로 지목해 자백을 받아냈다. 자백 이외에는 증거가 없었다. 오히려 증거들은 자백과 반대의 사실들을 말해 주고 있었다. FBI는 그녀를 한국 법정으로 보냈다. 왜 그랬을까.

며칠 전 켄지를 재판할 때 통역을 했던 딸과 대화를 나눌 때였다. 통역을 하면서 그리고 석방이 되어 미국으로 간 후 딸은 켄지와 친구가 됐다. 그리고 더러 미국에서 만난 것 같았다. 딸도 이제 사십대 중반의 주부다. 서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빠 그 사건이 끝나고 몇 년 안 되서 미국에 간 길에 켄지를 만나 같이 웨이크 보드를 타고 논 적이 있어. 나는 보드를 타고 바로 일어나는 데 켄지는 다리 힘이 전혀 없어. 일어나지를 못하는 거야. 다리통은 굵고 덩치가 큰데 완전히 물살이야. 뚱뚱해서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그런 그녀가 발로 여대생을 밟아 죽이고 두개골까지 함몰할 수 있었을까.

"켄지를 미국에서 여러 번 만나 보니까 완전히 시골의 순박한 처녀야. 한국말로 치면 좀 멍하다고 할까. 다른 사람이 이 말하면 그런가 하고 저 말하면 그런가 하고 믿고 따라가는 스타일이야. 자기가 하지 않았어도 상황을 자세히 말해 주면서 ‘네가 이럴 것 같아’ 하면 동의할 것 같다니까."

그녀가 자백한 배경을 알 것 같았다.

딸이 스마트폰을 꺼내 페이스 북에 있는 사진을 찾아 내게 보여주었다. 중년의 가정주부가 된 켄지가 아들을 안고 행복해 하는 표정이었다. 금발의 아들이 귀여운 눈망울로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법정에서 FBI와 싸웠다. 그들의 불법 절차와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

하지만 그들 뒤에 있던 더 큰 힘과는 싸울 수 없었다. 정치적 계산. 외교적 거래.

법정에서의 승리. 그것이 한 명의 한국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만 이 사건이 누군가의 기획이었다는 것, 그 연출자가 누구인지, 변호사로서의 직감은 있었다.

켄지는 자유를 찾았다. 평범한 행복을 되찾았다. 하지만 제이미는 여전히 이태원 103호실 바닥에 누워 있다. 스무 해가 지나도 아무도 그녀의 죽음에 책임지지 않는 채로.

나는 이 사건을 증언으로 남긴다.

법정에서 이겼지만 진실을 밝히지 못한 변호사의 고백으로. 한국의 사법주권과 미국의 정치적 공작이 충돌한 현장에서, 한 변호사가 할 수 있었던 것과 할 수 없었던 것의 기록으로.

이태원 금성장여관 103호실의 진실을,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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