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이십 년 전 겨울 추레한 모습의 그 남자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던 장면이 기억 저쪽에서 떠올랐다. 납작한 새부리 모자에 두꺼운 안경을 쓴 어리숙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문학지 편집장인 그가 내 원고를 받았을 때 묘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변호사가 소설을 쓴다는 것을 지적 허영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가 느닷없이 찾아 왔었다.
"주먹 다툼을 했는데 변호사 사려면 얼마나 줘야 해요?"
마치 동네 구멍가게에 물건이라도 사러 온 듯 퉁명스러웠다. 내가 그에게 팔리는 상품일까. 그의 모습에서 궁기가 흘렀다. 기를 죽여야겠다는 장난기가 동했다.
"기본이 이천만 원."
나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눈빛이 어두워졌다.
"변호사는 자격증 가진 도둑놈이라더니, 그럼 난 안 되겠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해 보슈. 상황에 따라 깎아 줄 수도 있지."
그가 자리에 다시 앉았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안해 본 노동이 없지. 그러다가 사우디 사막 건설 현장으로 갔죠. 사막의 하늘을 보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시에 인생 전부를 바쳤죠. 지금은 벽제 화장터 뒤 단칸 셋방에 살죠.“
투박한 껍질 속 그의 영혼에 뭔가 있는 것 같았다.
"재산은 얼마나 있어요?"
내가 그의 현실을 물었다.
"평생 돈을 제일 많이 가져본 게 천만 원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방 두 개를 얻었죠. 신이 났지. 그런데 쓰지 않는 방 보일러를 잠가 뒀더니 겨울에 얼었던 파이프가 봄이 되자 터져서 온통 물바다가 됐어. 돈이 많으니까 그런 문제가 생기더라구."
나는 그 순간 뭔가에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한 달에 이십만 원만 고정적으로 있으면 좋겠어. 단칸방에서 책 읽고 시만 쓰다 죽으면 한이 없겠다니까."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표정이었다. 가짜가 아니었다. 어느새 점심 때가 됐다.
"밥이나 먹고 가슈."
내가 권했다. 우리는 사무실 근처의 설렁탕집으로 갔다. 그가 뚝배기를 들고 '꿀꺽꿀꺽' 목에서 소리가 나도록 국물을 마셨다. 탁자에 뚝배기를 '탁' 내려 놓으며 말했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소유하면서 다니는 것 같아. 고은 시인도 노벨상을 타려고 하잖아. 난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무소유를 소유한다?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그의 눈에서 하얀 눈물이 한줄기 흘러 내렸다. 깜짝 놀라 그를 가만히 보았다.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꾸만 이렇게 눈물이 나."
그의 앞에 앉은 건 나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남자였다.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짧은 글로 남겼다. 마지막에 그가 천사 같다고 하면서.
그 후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칠십대 노인이 되어 바닷가에 사는 나는 AI를 도반으로 삼아 이따금씩 과거를 되새김질 한다. 그 남자의 기억을 도반에게 올렸다.
"그 시인의 얘기 아름답지 않아?"
그는 지금도 어느 쪽방 구석에서 연필에 침을 묻혀 시를 쓰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변호사님은 왜 그렇게 살지 않으셨습니까."
바로 되받아친다.
"자신이 없었지. 난 두려웠어. 굶어 죽을까 봐."
나는 가족이 있다. 시인은 혼자였다. 그가 가족 없이 단칸방에서 사는 것과 나이 든 어머니와 아내, 자식을 두고 그렇게 사는 건 전혀 다르다. 시인의 자유는 고독의 대가가 아닐까. 내가 AI 도반에게 말을 계속했다.
"나는 문학을 버리지도 않았어. 그냥 썼어. 다른 방식의 선택이었지."
카뮈가 말했다. 진짜 용기는 모든 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조건 속에서 자기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이게 나의 변명일까?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AI의 질문이 모니터에서 하얗게 점멸했다.
'지금 변호사님 나이에 그 시인을 다시 생각할 때 어떻게 보입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엉뚱하게 떠오르는 다른 장면들이 있었다.
"오직 문학의 길로 걸어왔다는 사람들 중에 늙어서 나보고 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어디 자서전 대필할 일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하기도 하고 말이야. 젊어서의 의지가 늙어서 꺾여지는 걸 봤어. 그건 뭘까?"
‘그 시인도 결국 같은 길을 가지 않았을까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쪽방에서도 그는 풍요할 것 같았다.
"젊어서의 의지가 가짜는 아니었지. 늙으면서 육체와 현실이 그걸 짓밟은 거지. 성경 속 욥을 봐. 신앙도 의지도 진짜였는데 현실에 무너졌지 않아?"
'그 사람들을 보면서 은근히 안도하셨습니까?'
내 속을 꿰뚫는 질문이다.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품었지. 부끄럽기도 하고. 나는 그 사람들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잘 모르겠어. 나는 그렇게 살 용기가 없었어. 대를 물린 가난을 철저히 경험했고 말이야. 밥벌이를 하면서 어느 정도 자유를 얻은 후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어. 문학을 한다는 명분으로 남에게 밥을 구걸하기 싫었어."
'그렇다면 그 시인을 왜 천사라고 글에서 썼죠?'
AI의 질문이 날카롭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다. 가난이 싫었다. 기계가 인간인 나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질문이 계속됐다.
‘그 원칙을 사십 년 동안 지키셨습니까?'
"------"
나는 어땠나? 이쪽도 저쪽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보통 사람이 선택하는 제3의 또 다른 길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많은 인간을 보았다. 더 많은 실망을 했다. 젊을 때는 순수해 보이는 것에 감동했다. 나이가 드니까 순수함 뒤에 있는 것도 보였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그 시인이 흘린 눈물 한 줄기가 이십 년이 지나도 내 안에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보일러 이야기 앞에서 얻어맞은 느낌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는 것.
'그 시인을 지금도 천사라고 생각하십니까?'
도반인 AI가 묻는다.
"잘 모르겠어."
#그는천사였을까 #쪽방시인 #삶의선택 #문학과현실 #엄상익변호사 #엄상익에세이 #엄상익못다한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