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의 총연출는 FBI한국 지부장...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이태원 미국 여대생 살인사건'은 연재 형식의 글입니다. 아래 관련기사부터 먼저 읽으면 좋습니다. (편집자)

2003년 3월 6일 오후 2시30분. 나는 서부지방법원 303호 법정 앞 벽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첫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켄지의 살인 자백이 뚫어야 할 높고 두꺼운 벽이었다. 

살인을 하지 않았다면서 왜 자백을 했을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진짜 죽인 건 아닐까.

나는 가방에서 미국의 와이스 변호사가 보낸 감정서를 꺼내 다시 점검했다. 그가 자백서를 심리학자에게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는 심리적 압박에 의한 자백으로 보인다고 했다. 허위자백은 흔했다. 수사관의 심리적 압박에 쉽게 무너지곤 했다.

의외로 켄지는 정신력이 강한 것 같았다. 낯선 한국의 감옥에서도 잘 견뎌내고 있었다.

법정 앞에 붙어있는 전자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개정 중이라는 파란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법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청석을 둘러 보았다. 미국 통신사의 기자들, 시사잡지 기자들이 방청석에서 재판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켄지의 엄마 히스 부인도 초조한 얼굴로 방청석 앞에 앉아 있었다. 방청석 맨 뒷줄의 코너에 FBI 한국 지부장이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마치 재판이라는 연극의 연출자같이.

연록색 재소자복을 입은 켄지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백지같이 하얗게 바랜 옆 얼굴이 보였다. 뒤로 하나로 묶은 금발이 반짝였다. 재판장이 두 명의 배석판사와 함께 법정으로 들어와 앉았다. 넓은 이마에 성실해 보이는 눈빛의 재판장이었다. 재판장이 켄지의 신분을 확인한 후 검사에게 신문할 것을 명령했다.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사는 FBI가 검찰로 보낸 켄지의 자백서를 손에 들고 피고인석에 있는 켄지에게 가서 보이면서 물었다.

"이 자백서를 썼나요? 그리고 서명했어요?"

"그랬습니다."

이어서 검사가 그 내용을 한참 동안 읽어주었다.

"내가 읽은 내용들이 진실인가요?"

"아닙니다. FBI가 내 정신을 흐렸습니다."

"흐리다니요?"

검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설명하기 힘들어요."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2001년 3월 18일경 밤 2시경 제이미가 있던 103호실에 간 적이 있죠?"

"시간은 정확히 모르지만 간 적이 있어요."

"제이미와 동성애를 나누었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제이미가 죽은 건 언제 알았죠?"

"아침 8시경 제이미 방에 있던 애날루스가 우리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이상입니다."

검사가 신문을 끝냈다. 집요함을 보이지 않았다. 뭔가 느끼고 있는 눈빛이었다. 나는 방청석 뒤에 있는 FBI지부장을 보았다. 굳은 표정으로 검사를 보고 있었다.

"변호인 신문하시죠"

재판장의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자백서를 쓰게 된 경위를 말해 줄래요?"

그녀는 울컥하는 북받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잠시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2002년 학기 초 무렵 FBI라고 하면서 전화가 왔어요. 만나자고 했습니다. 제이미 사건 정보를 얻고 싶다는 거였죠."

안심시킨 것 같다. 자주 쓰는 수법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인 라마다 인 호텔로 갔죠. FBI요원과 CID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저를 2층의 객실로 데리고 갔어요. 그 방에 들어갔더니 또 다른 남자가 있었어요."

왜 호텔에서? 나는 그들이 던진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공격적으로 수사의 불법성을 먼저 건드려 보기로 했다.

"그들이 체포영장을 제시했나요?"

"그런 거 없었습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말해주던가요?"

"제가 호텔에서 이틀간 조사받을 때 변호사 선임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면 쉽게 끝낼 걸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거라고 했어요. 협조만 해주면 일이 잘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어요."

나는 방청석 뒤의 FBI지부장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디비티스라는 사람이 집요하게 자기가 추측하는 상황을 내게 말하면서 그렇지 않느냐고 나에게 묻고 또 물었어요. 그가 집요하게 계속하니까 서서히 머릿속에 구름이 생기는 것 같았어요. 그 구름의 색깔이 점점 밝아지면서 그런 상황에 대한 그림이 생겼어요."

미국 전문가의 감정서에는 심리적 압박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켄지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제가 정말 그런 일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맞춰주려고 그렇게 따라간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 정도면 자백의 신빙성을 어느 정도 흔든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내가 그들에게 프레임을 던질 차례다.

"그날 저녁 미군을 만났던 일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어요?"

나는 구치소에서 이미 상세하게 들었다. 통역이 내 질문을 영어로 옮기는 동안 나는 켄지의 표정을 관찰했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이태원의 니클비스클럽에서 미군들과 같이 놀았어요. 빈센트라는 미군이 저에게 제주도에 함께 가자고 했어요. 경비는 자기가 대고 나는 같이 잠만 자면 된다고 했죠. 섹스 요구였죠. 저는 거부했어요. 빈센트는 죽은 제이미에게도 섹스 요구를 했어요. 저보다 예쁜 제이미에게 더 끈적댔어요. 조쉬라는 미군은 댄스 플로어에서 제이미와 키스를 하는 걸 봤어요."

그날 밤 숨은 그림이 드러나고 있었다.

"저는 춤추던 제이미를 끌고 함께 바를 나와 숙소로 향했어요. 소방서 골목에서 꺾어져 식품점 앞을 지날 무렵 같이 춤추던 미군들이 따라왔어요."

"그 미군의 인상착의를 말해줄 수 있어요?"

"이름이 빈센트라고 했는데 키가 6피트쯤이고 넓은 어깨를 가진 근육질의 남자였어요. 또 옆에 긴 얼굴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남자가 있었어요. 미국 남부 사투리였죠."

"FBI에게 조사를 받을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나요?"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들이 미군인 빈센트에 대해 다 조사해 봤는데 그 날 밤 빈센트는 거기에 없었는데 어떻게 볼 수 있었지?'라고 하더라구요."

"그날 밤 미군 빈센트를 본 게 맞나요?"

"저는 분명히 클럽에서 춤을 췄어요. 그리고 자기 이름이 빈센트라고 했어요. 지금도 기억해요. 빈센트 말고 다른 미군은 이름이 '닉'이라고 했어요."

나는 켄지의 입을 통해 공식적으로 미군 범죄의 가능성을 법정에 올려 놓았다. 방청석의 기자들이 수첩에 부지런히 적고 있었다.

"한국에 와서 재판을 받는 것에 대해 FBI는 뭐라고 설명하던가요?"

"만약 재판을 받는다면 미국보다 한국으로 가는 게 나을 거라고 했어요. 한국의 매춘부를 살해한 미군이 한국에서 징역 5년 정도만 받았대요. 한국으로 가면 미국보다 훨씬 가벼운 형을 받는다고 했어요."

"같이 지낼 때 죽은 제이미의 성격은 어땠어요?"

"제이미는 성 경험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 애는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문을 닫았고 잠잘 때도 문이 잠겨 있는지 확인했어요. 그 애는 누군가가 자기를 보는 것을 싫어했어요."

그런 성격이 동성애를 할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왜 한국에서 재판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미 국무장관 콜린 파월이 미국 군인을 보호하기 위해 저를 대신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방청석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내가 재판장을 보고 말했다.

"이 사건의 총연출이자 수사는 FBI한국 지부장입니다. 그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나는 방청석 뒤의 그를 응시했다. 시선이 부딪쳤다. 그가 노골적으로 불쾌한 눈빛을 보냈다. 그와 정식으로 붙어봐야겠다는 투지가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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