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관찰인생] 스무살 여대생을 3일간 호텔에 가둔 'FBI 밀실 조사'... 한국법원의 판단은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2003년 5월 22일 오후 2시. 나는 FBI와의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서부법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 재판에서 FBI한국 지부장을 흔들어 놓았다. 오늘은 그와 함께 켄지를 압박했던 맨스필드 차례였다.
법정 앞 복도는 적막했다. 켄지의 엄마 히스 부인이 문 앞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나를 보자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303호 대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날 뿐 조용했다. 잠시 후 법정에 방청객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키가 껑충한 웨인 목사가 와서 히스 부인과 나란히 앉았다. 그가 나를 째려보았다. 지난번 재판 후 그가 항의했었다.
'왜 히스 부인보다 먼저 기자들에게 말하느냐. 고객이 먼저다.'
미국식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이것은 켄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FBI의 정치적 쇼를 폭로하는 싸움이었다. 그 진실을 한국 언론에 알리는 게 더 중요했다.
재판이 시작됐다. CID 요원 맨스필드가 증언석에 올라와 앉았다. 스트라이프 무늬의 싱글 쟈켓을 입었다. 각진 턱에 파랗게 면도 자국이 보였다.
검사의 신문이 시작됐다.
"증인의 경력을 말해주시죠"
"2000년 9월부터 미 육군 범죄수사대 특별수사관으로 용산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태원 금성장 여관에서 발생한 미국 여대생 피살사건을 수사했습니까?"
"2002년 2월 3일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에서 FBI 한국지부장을 만났습니다. 함께 웨스트버지니아 헌팅턴으로 가서 켄지를 수사한 사실이 있습니다. 거기서 거짓말탐지기 수사관 디비티스와 합류했습니다."
침착하고 사무적인 어조였다.
"제가 주로 질문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디비티스가 심리적으로 몰아갔습니다. 사흘간의 조사 끝에 자백을 받았습니다."
"켄지의 심리 상태가 어땠습니까?"
"설명을 못할 때 당황했습니다."
"이상입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증인, 이 살인사건의 수사권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한국에서 발생했으니까 한국 경찰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경찰관이 미국에 출장을 가서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켄지가 미국에 있기 때문에 제가 수사했습니다."
"증인은 군수사관이죠?"
"그렇습니다."
"민간인인 켄지를 수사할 권한이 있습니까?"
"스페셜 에이전트로서 할 수 있습니다."
모순이 발견됐다.
"범죄지가 한국이고 한국 경찰이 수사권을 가졌다고 진술하셨죠? 그렇다면 한국의 형사소송법이 적용됩니다. 증인이 한국법에 따라 수사한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맨스필드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함께 간 FBI 한국지부장은 어떤 자격으로 갔습니까? 외교관입니까, 수사관입니까?"
"한국 경찰에 협조하는 수사관이었습니다."
"아, 수사관이었군요."
나는 지난번 재판기록을 그에게 보였다.
"이상하네요. 지난 재판에서 FBI 한국지부장은 자신이 '외교관 자격'으로 갔다고 증언했는데 말입니다."
맨스필드가 입을 다물었다.
"켄지가 자백하는 순간에 한국 경찰과 협조했습니까?"
"그렇게 해야 합니까?"
"물어보는 겁니다.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저는 한국말을 몰라서 못 했고, FBI 한국지부장이 한국계 미국인이니까 그가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증인, 왜 정식 조사실이 아니라 호텔 방을 선택했습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고, 켄지가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편하게요?"
내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세 명의 남자 수사관이 스무 살 여대생을 호텔 밀실에 가두고 사흘 동안 압박한 게 편하게 해준 겁니까?"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살인 발생 시각 죽은 여대생과 같은 방에 있던 애날루스에게 혐의를 둔 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미군 21 CID 조서를 보면 애날루스는 아침에 일어나서야 죽은 여대생을 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에게서 피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아십니까?"
"그렇게 진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증인이 작성한 수사 기록 아닙니까?"
그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애날루스는 '기억이 안 난다', '못 봤다'는 거짓말을 계속했는데, 의심하지 않았습니까?"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나중에는 믿었습니다."
"왜 믿었습니까?"
"..."
그가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대답하십시오. 왜 켄지는 의심하면서, 같은 방에서 자던 네덜란드 학생은 믿었습니까?"
나는 계속 몰아붙였다.
"옆방 102호실의 마리아는 새벽에 죽은 여대생이 얻어맞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 방 사람들은 103호실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었는데, 옆방이라고는 안 했습니다. 2층이나 복도에서 났을 수도 있습니다."
"복도요?"
나는 차갑게 웃었다.
"증인, 여관 구조를 확인했습니까? 103호실은 바로 옆방입니다. 그 옆은 계단입니다. 목격자들이 남자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범인이 남자라는 의심을 안 했습니까?"
"남자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만 했습니까? 수사는 안 했습니까?"
"..."
"대답하십시오. 남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데도, 왜 스무 살 여자 대학생만 집요하게 조사했습니까?"
"켄지의 자술서에 너무 많은 모순이 있었습니다."
"모순이요?"
나는 기록을 들어 올렸다.
"켄지가 사건 당시 입었던 옷에서 피가 나왔습니까?"
"아니요."
"신발에서는요?"
"없었습니다."
"손톱 밑에서는요?"
"없었습니다."
"머리카락이나 타액 같은 생체 증거는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기록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증인, 죽은 제이미의 얼굴과 몸은 피투성이였습니다. 목뼈가 부러지고, 귀가 찢어지고, 이마가 함몰됐습니다. 그런 잔혹한 살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옷과 신발에서 피 한 방울 안 나왔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맨스필드가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증인, 이 사건을 수사하기 전에 FBI 본부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지시라기보다는... 협조 요청이었습니다."
"누구로부터요?"
"FBI 한국지부장을 통해서입니다."
"그 한국지부장은 누구입니까?"
"한국계 미국인입니다.한국, 일본, 홍콩 지역 FBI 책임자입니다."
나는 잠시 멈췄다가 물었다.
"증인, 2002년은 어떤 해였습니까?"
맨스필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입니까?"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겁니다."
"...미군 장갑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군 장갑차가 한국 여중생 두 명을 깔아 죽였습니다. 미군 군사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반미 촛불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그 시기에 갑자기 일 년 동안 묻혀 있던 이 사건이 재수사되기 시작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입니까?"
"저는 정치적인 건 모릅니다."
"모릅니까?"
나는 서류를 꺼내 들었다.
"FBI 내부 보고서입니다. 2002년 2월 7일 자입니다. 여기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언론과 국무성 및 미국 상원의원들의 압력이 계속됐다. 펜실베이니아 스펙터 상원의원은 한국 방문 중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 사건에 관심을 표명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맨스필드가 침묵했다.
"미국 정부가 반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겁니다. 자국민을 희생양으로 던진 겁니다. 증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수사관으로서 제 임무를 수행했을 뿐입니다."
"임무요? 증거도 없이, 절차도 무시하고, 스무 살 여대생을 호텔 밀실에서 사흘 동안 압박해서 거짓 자백을 받아낸 게 임무였습니까?"
사실 심리가 모두 끝났다. 검찰은 켄지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내가 변론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사건의 본질은 살인이 아닙니다. 정치입니다."
방청석의 눈들이 내게로 집중됐다.
"미국은 2002년 반미 여론이 들끓자 묘수를 생각해냈습니다. '우리도 자국민을 한국으로 넘긴다'는 제스처를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일 년 동안 묻혀 있던 이 사건을 꺼내들었습니다."
나는 FBI 보고서를 들어 올렸다.
"스펙터 상원의원이 압력을 넣었습니다. FBI는 서둘러 켄지를 지목했습니다. 증거가 없으니 자백을 받아내야 했습니다. 세 명의 수사관이 스무 살 여대생을 호텔 밀실에 가두고 사흘 동안 심리적으로 압박했습니다."
나는 재판장을 바라보았다.
"자백을 받은 경우, 증거능력이 있으려면 본인이 법정에서 내용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게 형사소송법 312조의 취지입니다. 피고인 켄지는 이미 자백의 내용을 모두 부인했습니다. 따라서 그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살인을 입증할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검사가 손을 들었다.
"이의 있습니다. 켄지가 스스로 쓴 자필 진술서는 조서가 아닙니다. 형사소송법 313조는 그 자백이 믿을 만한 상황에서 된 것이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로 반박했다.
"세 명의 전문 수사관이 한 명의 여대생을 호텔 방에 가두고 회유하고 협박한 상황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입니까? "
주심 판사가 재판장과 귓속말을 나눴다. 이윽고 주심 판사가 나를 보고 말했다.
"변호인, 이건 외국에서 작성된 진술서이고 외국 수사기관의 조서인데, 이에 대한 법적 견해가 어떻습니까?"
"외국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와 진술서에 대한 선례가 없습니다. 하지만 원칙은 분명합니다. 저는 내용을 부인하며,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나는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판단해야 합니다. 무자격자의 밀실 수사를 그리고 미국의 정치적 쇼에 동조할 것인가, 아니면 정의를 세울 것인가를 말입니다."
나는 방청석을 돌아보았다. 켄지의 엄마 히스 부인이 가슴을 졸이고 있는 표정이었다.
선고 하루 전날인 2003년 6월 18일 오후, 담당 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내일 선고인데... 혹시 켄지가 석방되면 묵을 곳이 있나요?"
검사는 재판부가 석방할 것이라는 걸 예견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석방이 돼도 검찰에서는 출국 정지를 시키고 항소할 예정입니다. 켄지의 소재를 파악해야 법정에 출두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일이면 판결이 나온다. FBI와 나의 싸움, 미국 정부와 한국 사법부의 대결이 결론을 맺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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