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판결 이후 7시간, 켄지는 왜 바로 나오지 못했나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조선일보 인터넷판 캡처
조선일보 인터넷판 캡처

"피고인 켄지 스나이더는 무죄"

재판장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졌다. 방청석 앞에 앉은 히스 부인의 감격한 표정이 보였다. 이어서 재판장이 무죄 이유를 낭독됐다.

"CID 수사관인 맨스필드 작성의 수사보고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므로 증거능력이 없다."

판사가 판결 초고 용지를 보면서 계속했다.

"피고인 켄지 작성의 진술서는 FBI 한국지부장, CID수사관 맨스필드, FBI 거짓말탐지기 요원 디비티스로부터 인터뷰 형식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작성된 것으로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문조서로 본다. 그렇다면 피고인 켄지가 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므로 그 또한 증거능력이 없다."

FBI의 편법 밀실수사에 대한 한국 법원의 일격이었다. 나는 재판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맨스필드, FBI한국지부장의 진술은 모두 피고인의 자백경위에 관하여 진술한 내용으로서 피고인이 이 법정에서 위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내용을 부인하는 이상 모두 그 증거능력이 없다."

미국 수사기관보다 켄지의 말을 믿겠다는 한국법원의 선언이었다. 한국법원이 미국정부에 가한 일격이었다.

점심시간 무렵부터 켄지의 엄마 히스 부인은 영등포 구치소 앞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앉아 딸의 석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구치소 앞 식품점에서 두부와 달걀 소금을 사서 옆에 놓고 있었다. 그것들을 먹이면 다시는 한국의 감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준비한 것이다.

나는 통역을 했던 딸 정아를 구치소 앞으로 보내 켄지가 나오면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오후 3시경 딸 정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도대체 언제 켄지가 나오는 거야? 날씨는 덥고 지쳐 뚱뚱한 켄지 엄마도 완전히 파김치가 됐어."

구치소마다 나오는 시각이 일정치 않았다.

"아빠 석방될 사람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구치소 담 아래서 눈치보고 웅크리고 있어야 하잖아? 무죄를 받았는데도 이래야 돼?"

나는 담당 검사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석방지휘서를 구치소에 보냈는지 물어보았다.

"법원에서 서류가 늦게 왔습니다. 오면 바로 석방지휘서를 만들어 보낼께요. 그런데..."

뭔가 고민이 있는 눈치 같았다. 검사가 덧붙였다.

"일단 석방이 되면 켄지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데려가는 걸 검토하느라고 회의 중인 것 같습니다."

켄지의 출소가 지체되는 이유인 듯 했다. 내가 그 말에 항의했다.

"그건 석방이 아니라 또 다른 사실상의 구속이 아닙니까? 외국인이라고 그래도 되는 건가요? 법적 근거가 있나요?"

"그래서 지금 회의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법적 근거는 없어요. 기다리세요."

다시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덧 기나긴 6월의 해가 기울고 땅거미가 졌다. 딸 정아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빠 난 완전히 지쳤어. 정말 너무해. 왜 어떤 절차를 밟아서 몇 시에 나갑니다라고 통보를 않고 사람들을 마냥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거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차가 와서 바로 구치소 안으로 들어갔어. 켄지 엄마가 하루종일 기다렸는데 딸을 보지도 못하게 한다고 그래. 왜 그러지? 한국 사람은 다 자기가족을 만나 집으로 가는데 켄지는 엄마도 보지 못하고 바로 또 끌고 간대. 켄지 엄마가 딸을 한 번이라도 보고 포옹하게 해 달라고 교도관들한테 지금 부탁하고 있어."

밤 10시경 켄지는 구치소 정문을 나왔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데려간다는 것은 오해였다. 오히려 그 직원들이 직접 나와 국내 체제에 필요한 서류를 정리해 주었다고 했다. 그동안 방청을 했던 케인 목사가 켄지 모녀를 며칠 자기 집에서 재워주겠다고 했다. 변호사로서 나의 임무가 모두 끝났다.

사건을 처음 부탁했던 전도사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날씨가 덥다는데 평안하셨는지요. 조금 전에 히스 부인이 보내준 이메일을 받아 보았습니다. 최고의 소식이라는 제목답게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변호사님에 대한 감사 표현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검찰의 항소도 남아 있지만 히스 부인은 낙관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한 가정이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님까지 귀한 시간을 내서 도와 주심은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혹시 제가 사역을 하는 카렌족에게 오실 기회가 되시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카렌족은 참 좋은 사람들입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볼 때면 압도당하곤 합니다. 그들은 저를 스승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들이 진정한 저의 스승입니다. 카렌족들이 변호사님을 만나면 참 좋아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귀한 헌신과 관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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