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구멍가게 하나도 운영 못해
[최보식의언론=박혜범 강호논객]

아주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이다.
평생을 전라도 섬진강과 지리산을 헤매며 살아온 나의 관점에서 보면, 광주와 전라도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최악의 조건을 스스로 고착시킨 사람들의 땅이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서 기업 문제나 자녀 교육 문제로 상의를 해오는 사람들에게, 망설임 없이 광주와 전라도를 떠나라고 조언한다.
이 조언은 감정도, 정치적 호불호도 아니다. 구조에 대한 판단이다.
지금의 전라도와 광주는, 내 눈에는 조선 말기와 너무도 닮아 있다. 주자학의 껍데기만 붙들고 쇄국을 외치던 기득권자들이 나라를 지배하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지도 들으려 하지 않던 시기. 변화는 사악한 것이고, 외부는 적이며, 기존 질서를 흔드는 자는 배척의 대상이던 그 시절 말이다.
그때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외세가 아니었다. 변화를 죄악시한 내부의 지배 질서와, 양반이라는 주인이 설정한 그 질서에 무비판적으로 순종하는 노비로 길들여진 백성들이었다.
지금 전라도의 정치와 사회를 보면, 이 장면이 그대로 겹쳐진다. 정치는 성역이 되었고, ‘왜’라는 질문은 배신이 되었으며, 정책은 사라지고 충성만 남았다.
기득권은 “지금 이대로가 옳다”고 외치고, 지역민들은 그 말에 박수를 보낸다. 비판은 배척되고, 의문은 입을 굳게 닫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지금의 전라도는 외부가 떠나서 망하는 땅이 아니다. 스스로 문을 닫고 쇄국을 선택한 망조의 땅이라고.
이유는 단순하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정치다.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인심이나 분위기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올 때, 내가 반드시 덧붙이는 말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정치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말라”는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혹은 하다못해 산골 군의원일지라도, 특정 인물을 지지한다거나 비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구멍가게 하나 운영하는 일조차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정치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침묵을 강요하는 금기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전라도를 살리자”는 말들이 떠돈다.
그 가운데 조직적으로 용인 반도체를 전라도로 옮기자는 주장, 그리고 광주·전남 통합을 하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헛소리들. 듣고 있으려니 그냥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전라도 토박이'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지금 전라도의 환경 즉 알기 쉽게 요약하면 다음 세 가지 지금과 같은 정치·노동·교육 구조에서는 어떤 산업도, 어떤 통합도, 어떤 예산도 모두 깨진 독에 물 붓기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사람을 뽑는 방식, 기업을 대하는 태도, 자식을 키우는 철학이다.
첫째, 정책이 아니라 공천에 거수기로 몰표를 주는 일당 정치다.
민주사회에서 지역 발전의 출발점은 정치다. 정치는 원래 정책으로 경쟁해야 한다. 정책을 내놓고 → 검증받고 → 그 결과로 공천되고 →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구조, 이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전라도에서는 이 순서가 오래전에 무너졌다. 먼저 공천이 결정되고, 정책은 나중에 형식적으로 붙는다.
지역민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꺼이 몰표로 찬성 선출한다. 정책을 보고 사람을 뽑는 유권자가 아니다. 당이 지명한 후보를 확인해 주는 거수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 구조에서 선출직들이 지역 발전을 고민할 이유는 없다. 애초에 정책으로 평가받지 않으니 정책 실패에도 책임이 없고, 무능해도 결정권자에게 돈만 바치면 다음 공천이 보장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다시 투표라는 형식을 빌려 같은 인물을 재선출한다.
그래서 전라도 정치에서 선거는 지역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아니다. 이미 정해진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도, 아무리 많은 국가 예산도, 아무리 그럴듯한 지역 전략도 결과는 하나다. 깨진 독에 물 붓기다.
둘째, 전라도 사람들조차 전라도에 공장을 세우지 않는다.
이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전라도 출신 기업인과 자본가들조차 공장은 타지에 짓고, 본사는 수도권에 둔다.
외부 환경 때문이 아니다. 자기들이 이곳에서 살며 직접 겪어본 결과다.
극렬하고 비생산적인 노조, 협력보다 대립이 기본값인 노동 문화, 기업을 파트너가 아니라 감시와 적대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 기업주를 노동자의 고혈을 빠는 존재로 규정하는 정서 속에서 누가 고향에 공장을 짓겠는가.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반도체 하나만 달라”는 구걸이 아니다.
삼성이나 하이닉스 둘 다 전라도로 와도 안 된다. 기업과 기업주를 적대시하는 강성 노조와 지역민들의 정서 때문에 망할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자본과 기업주들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
광주와 전라도가 가장 빨리 가장 확실하게 잘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멀쩡한 기업도 전라도에 가면 망한다는 인식을, 망할 기업도 전라도에 가면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바꾸는 것.
전라도에 가면 기업주가 죄인이 아니라 지역의 동반자로 존중받는다는 신뢰. 이 신뢰가 없으면 어떤 자본도, 어떤 대기업도, 어떤 첨단산업도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와도 오래 못 버틴다.
셋째, 평준화라는 이름의 집단적 발목 잡기다.
여기서 인구 소멸의 폭탄이 터진다. 전라도 교육을 둘러싼 가장 위험한 착각은 평준화다. “그래도 교육은 괜찮다”는 자기 위안, 학생을 위한 교육이라며 학생과 부모를 속이는 기만적인 교육.
그러나 통계는 냉정하다. 전남·광주에서 수능을 치른 학생들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는 비율은 전국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전국 최하위권 수준이며, 지역 출신 인재가 최상위 대학으로 진학하는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다.
지금 이재명과 민주당이 장담하고 있는 전국에 서울대 열 개를 만든다는 것 즉 지금의 전남대를 서울대로 간판을 갈아도, 역시 서울의 서울대로 갈 애들은 간다는 사실이다.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 민주당이 전라도에다 의과대학을 몇 개를 세워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3대 병원으로 간다는 것, 결국 능력이 없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것과 같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전라도에서 공부하면 아무리 잘해도 상위권으로 뚫기 어렵다는 인식이 굳어졌다는 뜻이다. 특히 전라도에서 태어난 학생이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도, 그 향학열을 충족시켜 줄 교육이 학교에 없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아이와 부모는 일찍 떠난다. 특히 능력 있는 부모들은 무조건 떠난다. 그 결과, 광주와 전남은 아이를 키워 수도권에 헌납하는 구조가 되었다.
더 치명적인 사실은 아이가 떠날 때 부모만 떠나는 게 아니다. 그 부모가 가진 사회적·경제적 자산까지 함께 떠난다는 점이다. 이게 지역 소멸의 결정타다.
“내 자식이 못 가는 서울대, 너의 자식도 가면 안 된다.”
이건 평등이 아니다. 평준화는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을 집단적 하향 안정화, 즉 바보로 만드는 교육이다.
그리고 이것이 학생과 부모를 동시에 떠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장치다. 전라도에서 공부해도 원하는 대학에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신뢰, 이걸 회복하지 못하면 어떤 출산 정책도, 어떤 청년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결론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정치 노동 교육 이 세 개의 문을 활짝 열지 않으면,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전라도는 피해자가 아니다. 스스로 문을 닫아놓고 외부가 오지 않는다고 탓하는 사람들의 땅이다.
정책으로 평가받는 정치, 기업이 존중받는 노동 문화, 어린 인재들이 바라는 꿈을 성취하게 하는 교육 신뢰.
이 세 가지만 열어버리면, 인구는 저절로 늘고 지역 발전은 따라온다. 그러나 이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반도체를 달라, 통합을 하자, 돈을 더 달라 외치는 건 모두 깨진 독에 물 붓기다.
끝으로 나 같은 촌부가 쓰는 이 글 하나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잘 안다. 무엇보다도 기득권에 쩔어 있고 맹목적 정치에 매몰된 전라도와 광주는 바뀌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향후 100년 안에 바뀔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래도 돌맹이 하나는 던져야 한다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작은 돌 하나 던지지 않으면 연못은 영원히 고요하다.
그래서 입춘의 길목에서 허공에 돌팔매질 하나를 해본다.
#정치노동교육 #지역소멸의본질 #깨진독에물붓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