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면 집값이 내려갈까
[최보식의언론=김진안 전 삼성전자 중동구 지역장 전무]

"부동산 투기로 불로소득 얻겠다는 수십만 다주택자."
"높은 주거비용 때문에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수백만 청년들의 피눈물."
"돈이 마귀라더니, 설마 마귀에게 최소한의 양심마저 빼앗긴 건 아니겠지요? ...."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이 X에 올린 글이다. 다주택자를 아예 "사회의 악", 내지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 주택가격이 다주택자 때문에 올라간다는 단편적인 사고가 놀랍지만 특히 높은 주거비용 때문에 수백만 청년들이 흘리는 피눈물이 다주택자의 탓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은 우리를 아연질색하게 만든다.
그러면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정책으로 다주택자가 없어질 리도 없지만 만일 없어졌다고 가정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자가율은 2024년 기준 58.4%, 임차 비중이 39% 수준이다. 그리고 주택시장에서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전국으로 9%, 서울에서 11% 정도 된다. 나머지 30% 정도는 민간의 다주택자들이 임대시장을 책임지고 있다.
다주택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임대시장'이 사라진다는 것과 같다. 임대시장이 거의 사라진다면 공공임대주택이 9%에 불과한 대한민국에서 갓 결혼한 사회 초년생들과 서민들은 어디에서 거주주택을 구할까?
그나마 돈이 조금 있는 사람들은 평택 이남에서 집을 구해 출퇴근해야 하고 그런 돈도 없는 청년들은 살 집이 없어 서울에서 직장을 구할 엄두를 못낼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 시절부터 다주택자를 임대주택공급의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고 "선과 악", "부유한자와 가난한 자"... 이렇게 이분법적 사고로 출발하니 매번 실패하는 것이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겨우 9% 공급하는 현 상황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30-40%가 될 때까지는 다주택자는 청년들을 피눈물 흘리게 하는 사회의 적이 아니라 대한민국 주택공급의 한축을 담당하는 임대주택공급자다.
오히려 임대시장의 공급과 가격의 안정을 위해 임대사업자를 장려해야 한다. 그래야 임대시장에서 공급이 늘고 임대료가 내려간다. 다주택자는 당연히 거의 임대사업자다.
서울시가 주거비용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서 임대수요가 많아 임대가격이 올라가는 수요 공급의 원칙을 어쩌란 말인가. 이런 폐혜 때문에 이미 임대차3법을 만들어 2년마다 5%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만들지 않았나?
다주택자를 세금으로 압박한다고 부동산 가격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문재인 정권 때 이미 경험했는데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한다.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약속했음에도 지키지 않으려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신경 쓰지 않지만 대통령 취임한 지 1년밖에 안 되는데 지난 정부에서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다니 한심하다.
이 대통령이 이러는 배경에는 아마도 약속했던 주식시장 종합주가지수가 5000포인트가 넘어서니 "내가 하면 된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국가의 지도자가 자신의 능력을 오판하고 환상에 빠지게 되는 아주 위험한 시점이다.
대통령은 종합주가지수 5000포인트 달성이 자신이 이루어낸 업적이라는 자만감에 취해있다. 아마 주변의 간신과 아첨꾼들이 대통령을 칭송하며 이런 착각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필자가 이 대통령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이 '마이더스의 손'도 아니고 정부의 조치로 취임 1년도 안돼 주식시장을 두 배 이상으로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 몇 달간 정부가 기업을 옥죄는 법안들만 양산했지 기업의 생산성을 올리고 증시를 부양할 특별한 조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갑자기 좋아지고 주식시장이 견고해져서 오른 것이 아니라 운 좋게 AI시대가 도래하며 반도체 특수가 터져나온 것 뿐이다. 주식시장에서 반도체 비중이 40%가 넘는 것이 그 반증이다.
반도체 주식을 산 투자자들만 돈을 벌었지 다른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은 주식 하락으로 상대적 박탈감으로 마음고생하고 있다. 만일 반도체에 무슨 변동이 생기면 대한민국 주식시장은 한순간에 폭락한다.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은 그만큼 불안한 폭등장세다.
필자가 유럽에서 오래 살았고 임대사업도 하고 있어 비교적 임대시장에 대해서 잘 안다.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네덜란드나 오스트리아는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40%를 넘는다.우리나라의 4배다.
필자가 네덜란드는 잘 모르니 두 번이나 살았던 오스트리아 이야기를 해보자.비엔나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계속해서 선정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좋은 주거 상황도 그 이유 중의 하나다.
비엔나는 임차인 천국이다. 비엔나 주민의 80%가 세입자이며, 시영(25%) 및 기금 지원(25%), 사회주택(공공임대주택)이 비엔나 전체주택의 50%를 차지한다. 민간임대가 주택시장의 30% 정도 담당한다.
특히 사회주택은 소득 하위 80%가 신청 가능할 정도로 접근이 쉽고 철저한 주거비 통제로 유럽 도시 중 가장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주거 환경을 제공한다. 그래서 비엔나 주민의 80%가 공공임대주택에 살아도 좋은 주변 환경 속에서 주거비 걱정없이 행복하게 산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부분의 사회주택이 교통이 편리한 도심 중심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특히 훈데르트 바서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공공임대주택의 건축에 참여해 그가 디자인한 아파트들이 시내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고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나도 여러 번 가봤는데 아주 독특한 디자인이고 내부에 상점들도 있다. 비엔나 시민 모두가 사회주택에 들어가 사는 데 거부감이 없다. 서울의 압구정동과 같은 위치에 있는 도나우 강변에 사회주택이 즐비하다. 도나우 강변의 쾌적한 공간에 민간아파트가 아닌 저층의 사회주택이 들어섰다.
민간임대는 주로 강변이 아닌 비엔나 산쪽으로 집중된 것 같다. 교통이 비교적 불편한 지역들이지만 모두 자가용이 몇 대가 되니 거주에 불편이 없다.
필자도 주재원 시절 비엔나 산쪽 포도밭 인근에서 거주했다. 다른 주재원들과 외교관들도 비슷했다. 비엔나 시내에 위치한 쓰레기 소각장도 훈데르트 바서가 디자인했는데 쓰레기소각장 인근 주택들은 관광명소로 자리잡아 주택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모든 공공임대주택이 같은지는 모르지만 임대주택의 내부는 임대 들어 갈 때 텅 비어 있다. 벽지도 없는 시멘트벽 상태고 주방기구나 전등도 없다. 입주하는 사람이 모두 사서 자기 취향 대로 꾸며야 한다. 나갈 때는 입주할 때 상태로 완전 원상복귀 시켜줘야 한다.
필자는 민간임대주택에 살았는데, 입주할 때 주방기구는 있었지만 거실이고 부엌, 모든 방에 전등조차 없어 직접 사서 달았다. 정부가 사회아파트의 골격만 만들어주고 내장까지 해주지 않는다. 내부 시설과 장식 정도는 입주자가 알아서 책임지라는 것 같다.
비엔나가 워낙 공공임대제도가 잘되어 있어 오세훈 시장도 벤치마킹하러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공공임대시장이 잘되어 있는 비엔나도 최근에는 수요 폭주로 비엔나에 입성하려면 5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특히 위치가 좋은 아파트는 주민들이 이사를 나가지 않아 신청하고 10년을 대기한다. 그래도 한 번 입주하면 임대료 걱정없이 평생 살 수 있으니 그게 어디인가.
비엔나 이야기를 했지만 비엔나가 공공임대주택 하나로 주택가격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여러 도시들이 직장, 학교 등 모든 주거 여건이 좋아 굳이 비엔나로 이주하지 않아도 살기 좋으니 주택 수요가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산되기 때문이다. 소위 지방도시들의 균형적인 발달이다. 아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를 여행해본 사람들은 모두 내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것이다.
세금으로 다주택자를 억압해서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잡힌다면 진작에 서울의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정부가 세제를 동원하면 수요자들의 투기심리를 자극해서 폭등한다. 이러한 원인 때문에 과거 좌파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부동산가격이 폭등했던 것이다.
정부가 세제를 동원하여 부동산가격을 누를수록 폭등하니 그냥 자연적으로 올라가도록 관리해주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 우리나라 부동산정책이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정책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고, 좌파정권이 매번 부동산실책을 반복하는 이유는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에 부동산 업적을 만들려는 욕심 때문이다.
부동산은 지역 균형발전 등 장기적 정책이 선행되어야 하므로 자신의 임기 내에 뭔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성공한다.
지난 번 이재명 대통령이 공공임대주택을 교통이 편리하고 살기좋은 곳에 지으라고 지시했던데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이다.
이 대통령이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하지 말고 부동산에만 집중하여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는 여러 인프라를 조성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역사에 남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쓸데없이 민생지원금 풀어 허공에 돈 날리지 말고 부동산, 특히 서울 요지에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말만 앞세우지 말고 우선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지역에 정부가 모든 토지를 사들여 모두 공공임대주택을 지으면 서울 공공임대사업의 위대한 첫걸음이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공임대확대 #다주택자#임대시장의현실 #부동산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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