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한동훈으로 되는 판도 아니고, 장동혁으로도 되는 판도 아니다
[최보식의언론=최보식 편집인]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한동훈 전 대표가 28일 서울 영등포의 한 극장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일생을 그린 다큐영화 ‘김영삼의 개혁시대’를 관람했다. 장동혁 대표 주재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의 제명 결정을 하기 하루 전 날이다.
한 전 대표는 영화 관람 뒤 기자들에게 “부당한 제명을 당하면서도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김 전 대통령 말씀처럼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국민을 믿고 계속 가겠다”고 말했다.
1979년발 YS 어록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가 대부분 신문과 SNS을 통해 다시 유행되고 있다.
그 시절 '닭의 목을 비틀어도 국방부 시계는 돈다'는 등의 변형 버전으로도 많이 떠돌았던 이 어록은 '김영삼 국회의원 제명 사건'에서 비롯됐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 벌어진 국회의원 제명은 1979년 9월 16일 자 뉴욕타임스의 김영삼 신민당 총재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었다(YS는 1979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중도통합론’을 내세운 이철승을 누르고 총재로 선출).
"국민들로부터 멀어진 소수의 독재 정부냐,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이냐를 미국 정부가 명확하게 선택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 박 대통령을 제어해줘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에 대한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
공화당은 YS의 이 발언을 문제삼아 1979년 10월 4일 국회의원 제명을 의결했다.
징계 사유는 반민족적 사대주의 망동, 대한민국 원조를 중단하라는 매국적 발언, 주한미군의 존재를 한국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인 양 주장, 정치인의 체통 손상 등 9개 조항이었다.
당시 신민당 의원들이 국회의사당 본회의장과 단상을 점거해 제명안 통과에 강력 저지하자, 공화당은 경호권을 발동해 수백 명의 무술경위를 출동시켜 놓고는 국회 별실에서 김영삼의 국회의원직 제명안을 10여 분 만에 날치기 통과시켰다.
김영삼은 의원직 제명 소식에 '영원히 살기 위해 일순간 죽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그 뒤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가택연금되자 YS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어록을 남긴 것이다.
김영삼 의원직 제명에 대한 반발로 부산과 마산에서 대학생· 시민들 시위가 벌어졌다. 이게 소위 '부마사태'다.
박정희 정권은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과 경상남도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는데, 역설적으로 유신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서곡이 됐다. 박 대통령은 닷새 뒤 궁정동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시해됐다.
한동훈은 지금 자신의 처지를 그때의 김영삼과 스스로 동일시한 셈이다. 그러나 김영삼과 한동훈의 정치적 성장 과정과 환경, 투쟁 대상, 인간적 풍모는 일치되는 지점이 전혀 없다.
김영삼이 제명됐을 때 신민당 의원 전원이 의원직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한동훈의 제명에 소위 당내 친한계 의원이나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전혀 동조 탈당할 것 같지는 않다.
한동훈은 윤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국민의 편에 섰는데, '윤어게인' 세력에 의해 보복 징계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족이 악성 댓글을 달았다는 '당게 사건'은 자신을 내쫓기 위한 저쪽 세력의 핑계라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동훈은 특수부 검사 시절 윤석열과의 인연이 없었으면, 지금은 서초동에서 돈 많이 버는 변호사를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검사 세계 안에서는 몰라도 그의 대중적 존재감은 없었던 사람이다. 윤석열이 발탁함으로써 그의 운명이 바뀐, 소위 윤석열 검찰정권의 황태자였다.
윤석열은 '애송이'처럼 비쳤던 그를 무리해서 법무장관에 발탁한 데 이어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원장 전권을 쥐어줬다. 그는 윤 정권에서 가장 권력의 특혜를 받았던 '신데렐라'였다.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그는 보스 윤석열뿐만 아니라 김건희에게도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하지만 그가 윤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소위 '딴 살림'을 차리려고 하면서 둘 사이에는 의심과 불화, 갈등이 생긴 것이다. 그걸 꼭 '배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를 인정하고 품지 못한 윤석열의 그릇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훈이 지휘했던 총선은 대패했지만, 한동훈 개인은 그 과정에서 셀프 사진을 찍으며 지지세력을 결집했고 자신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런 자신감으로 이미 흔들리고 있는 윤에 정면 반기를 들 수 있었다. 윤의 '헛발질 계엄'이 있자 그날 밤 즉각 "난 국민의 편"이라며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한동훈은 자신이 '국민'과 '진짜 보수'를 위해 옳은 길을 걸었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윤석열이나 한동훈은 똑같이 정치검사 출신에다 그 사고의 한계에 갇혀있는 '정치적 일란성 쌍둥이'일뿐이다.
윤석열 계엄은 거대야당 민주당의 잇딴 '탄핵 폭주'도 원인이 됐겠지만, 내적으로는 '밉상' 한동훈을 손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윤석열이 탄핵될 때, 그에 의해 만들어진 한동훈도 책임을 지고 동반 퇴장했어야 맞다.
나는 국힘당이 한동훈을 제명하는 것에 찬성한 적은 없다. 국힘당은 말그대로 비주류, 소수 의견을 수용 못하는 전체주의 정당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서 국힘에 남아 있겠다며 '닭의 모가지 비틀어도' 운운하는 한동훈이 더 어색하게 보인다. 당 구성원들 대다수가 그를 '배신자'로 낙인 찍고 제명하려는 이런 당을 오히려 제 발로 박차고 나오는 게 정상 아닌가.
한동훈이 정말 YS를 존경한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정당의 깃발을 들고 운명에 도전할 용기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가 당에 남아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고 실리적으로 지방선거에 무슨 이득이 있겠나.
어차피 한동훈으로 되는 판도 아니고, 장동혁으로도 되는 판도 아니다. 이 둘은 버려야 할 윤석열의 유산일 뿐이다(한정석 강호논객의 표현).
이미 국힘은 파산된 것이다. 그 속에서 한줌의 권력을 갖고 다투고 있는 본인들만 모른다. 제 1야당의 당권이라는 게 대단해 보일지 모르나 지방선거가 끝나면 '단칸방 처지'라는 걸 곧 깨닫게 되고, 그때는 장동혁이 보따리를 쌀 것이다.
이번 선거는 무슨 수를 쓴다 해도 참패는 예정돼 있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차라리 장동혁을 단식에서 구해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맡겨보는 게 나을지 모른다. 윤석열 비상계엄· 탄핵과 무관한 '추억의 박어게인' 바람으로 가면 지방선거에서 요행을 한번 기대해볼 수는 있다. 사실 국힘에게 남은 유일한 카드는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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