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불편한 선택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검증된다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했다. 정당이 소속 정치인을 제명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 제명은 언제나 개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 그 정당이 문제를 해결해 온 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사건이 된다. 중요한 것은 제명의 찬반이 아니다. 왜 보수 정당은 갈등의 끝에서 늘 같은 결론, 즉 징계와 제명으로 귀결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이 된 이른바 ‘당원게시판 사건’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 사안이라기보다는 내부 관리와 정치적 판단의 문제에 가까웠다.
정당의 게시판은 본래 불만과 오해, 과장과 감정이 뒤섞이는 공간이다. 민주주의의 소음이 가장 거칠게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치의 역할은 그 소음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다. 감당하고, 조정해, 질서로 바꾸는 데 있다.
이번 사태에서 정당이 보여준 모습은 설득의 정치가 아니라 정리의 행정이었다. 설명은 짧았고, 책임의 언어는 흐릿했다. 갈등을 낮추기 위한 중재와 조정의 과정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정치적 해법 대신 징계 절차가 전면에 등장했다. 그 결과 정당은 점점 선택지를 잃었고, 결국 제명이라는 가장 강한 조치로 귀결됐다. 이는 우발적 결단이 아니라, 설득을 포기한 대응이 누적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정당만 책임을 질 수는 없다.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사태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치 지도자가 위기 국면에서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은 메시지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장면을 만드는 일이다. 갈등의 당사자를 직접 만나고, 공개적 공간에서 화해와 조정의 의지를 보여 주며, 공동체 앞에서 책임을 나누는 행동이 필요했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었다. 장동혁 의원이 단식에 들어갔을 때다. 단식은 언제나 정치적 신호다. 그것은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마지막 호소다. 이런 순간에 지도자는 계산을 멈추고 현장으로 가야 한다.
실제로 여러 보수 정치인들이 단식 현장을 찾아 설득과 중재, 최소한의 화해 제스처를 시도했다. 그러나 한동훈은 그 자리에 없었다. 입장 표명과 설명은 있었지만, 갈등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이 부재(不在)는 단순한 일정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내공의 문제다. 정치의 내공은 말의 세련됨이나 논리의 정합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불편한 자리에 몸을 놓을 수 있는 용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갈등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결단에서 드러난다. 그 자리를 피하는 순간, 정치는 설득이 아니라 관리가 되고, 지도자는 조정자가 아니라 관찰자가 된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한동훈의 모습은 정치의 무게를 감당하는 지도자라기보다, 위기를 관리하려는 개인의 태도에 가까웠다.
정당의 설득 부재와 한동훈의 미숙한 정치적 대응은 갈등을 증폭시켰다. 설득이 사라진 공간에서 갈등은 깊어졌고, 남은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제명은 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설득을 회피한 지도자와 설득을 포기한 정당이 함께 만들어 낸 정치적 결과였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나 역시 같은 정당에서 유사한 과정을 직접 겪었다. 2018년 서울시장 공천 과정에서 유일한 공천 신청자로서, 독단적 판단과 밀실 정치의 결과로 전략공천 대상으로 떠오른 이석연과의 경선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홍준표 당대표와 갈등이 발생했다. 당대표의 영향력 아래 놓인 임명직 중심의 윤리위원회는 나에 대한 제명을 의결했으나, 선출직이 다수였던 최고위원회는 이를 부결했다.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해당 사안은 종결된 것으로 이해됐다.
그럼에도 사안은 다시 윤리위원회에 회부됐고, 최고위원회 의결조차 필요 없는 당원권 정지 3년이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당시 나는 당대표 개인의 판단이 당의 제도와 절차를 압도하는 상황을 문제 삼았다. 민주정당을 표방하는 보수정당에서 내려진 이 결정은 민주주의의 원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보았다. 내부 갈등을 설득과 조정이 아니라 권력적 판단과 징계로 반복 처리하는 방식은, 민주정당이라기보다 중국 공산당이나 북한 노동당식 조직 운영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였다. 1년 6개월이 지나 황교안 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해당 징계는 해제됐다. 형식은 징계 해제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사면에 가까운 조치였다. 이를 통해 정치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제 질문은 명확해진다. 보수는 무엇을 고쳐야 다시 설 수 있는가. 보수 재건의 출발점은 인물 교체가 아니다. 정치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첫째, 징계 중심 정당을 설득 중심 정당으로 전환해야 한다. 윤리위는 갈등의 종착역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당내 이견은 공개 토론과 중재 기구를 통해 먼저 소화돼야 한다.
둘째, 지도자 검증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언변, 이미지, 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 앞에서 갈등의 현장에 서 본 경험이다. 선거, 지역, 당내 토론을 통과하지 않은 벼락출세는 지도자를 만들지 못한다.
셋째, 책임의 문법을 복원해야 한다. 사과는 메시지가 아니라 제도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누가 책임지는지, 어떻게 고칠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는 구조가 없으면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넷째, 팬덤 정치를 끝내고 통합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충성 경쟁은 내부를 결집시킬 수는 있어도, 중도와 미래 세대를 설득하지는 못한다. 보수는 다시 다름을 견디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정당 권력을 개인의 손에서 제도로 돌려놓아야 한다. 대표 개인의 판단이 윤리, 공천, 징계를 좌우하는 구조에서는 어떤 지도자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
지도자는 옳은 말을 하는 사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도자는 불편한 선택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검증된다. 설득이 필요한 순간에 설득의 자리에 서지 않는 지도자, 갈등의 현장을 피하는 지도자는 위기 앞에서 공동체를 지킬 수 없다. 그때 정치는 조정이 아니라 징계로, 통합이 아니라 정리로 흘러간다.
정치는 징계의 기술이 아니다. 정치는 설득의 축적이며, 불편한 자리에 서는 용기이고, 갈등의 한복판에서 공동체를 대표하는 책임이다. 이번 제명이 이 기준을 분명히 드러내지 못한다면, 보수는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음 인물에게도 똑같이 던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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