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양아치 같은 판사새키야,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징역을 맘대로 때려
[최보식의언론=검비봉 논설위원]

법정에서 판사가 형량을 선고하기 전에 “피고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오” 하는 이른바 최후진술의 기회를 준다.
이 최후진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판사 마음을 움직여서 형량에 변화를 주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어느 뒷골목의 양아치 일화가 있다.
판사가 최후진술 이후에 형량을 선고하는데, “피고를 징역 10월에 처한다”라고 했다.
그러니 이 양아치 왈, “이게 뭐야, 쫀쫀하게 10월이 뭐냐구?”
이른바 허세 가오다시를 부렸다.
“그래? 법정모독죄를 추가하여 징역 2년에 처한다.”
11개 혐의라든가, 워낙 죄가 많아서 헷갈리는 '악성 셀럽'이 있다. 이 사람의 지루한 재판이 끝나는 날, 전국의 주점은 왁자지껄 와글와글 대소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비상근무를 발동할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최종판결 직전에 주어지는 <최후진술>에서 어떤 말을 남길까?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당선, 낙선 두 경우를 모두 대비해서 두 가지 소감문을 준비한다고 한다. 이 피고도 강성, 온건성 두 가지의 최후진술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한다.
“피고는 반민주적, 반사회적, 반국가적 죄질이 무거우므로... 징역 00년에 처한다”라고 했을 때, 평소 노여움을 잘 타는 강퍅한 성품의 피고인은 어쩌면 양아치와 같은 분노를 보일지도 모른다.
“야 이 양아치 같은 판사새키야,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징역을 맘대로 때려, 차라리 죽여라 죽여...”
아니면, 뜻밖에도 “제가 오늘 이 법정에서 받은 판결에 대해서는,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판사님이 주시는 형벌이 온 국민의 뜻으로 알고, 국민에게 실망을 드린 죄를 반성하면서 향후 정해진 시공간에서 반성과 수양에 전념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또 한 번 반전될지도 모른다.
사람의 본바탕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스스로 자신의 목을 꺾어서라도 운명 앞에 겸허한 자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인생의 최후진술을 뭐라고 남기게 될까?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또는 “그냥 허허 웃지요”,
혹은 “소풍을 잘못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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