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정받기 싫습니다. 사형을 당하고 싶습니다.
저는 공소장에 나와 있는 것 같이 강도강간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구하신다면 그것도 죽음과 함께 가져가겠습니다.

뉴스앱으로 간병인이 죽어가는 말기 암 환자를 때린 기사를 보았다. 첨부된 동영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환자가 때리지 말라고 손을 들어 애원하는 데도 간병인은 짐짝같이 사람을 험하게 다루고 있었다. 짐승도 동료에게는 따뜻하다. 간병인이란 탈을 쓴 그는 짐승보다 낮은 차원의 영혼을 가진 존재인 것 같았다. 개인만이 그럴까. 나는 사람들의 애환이나 아우성과 함께 하는 변호사업을 하면서 차디찬 세상을 많이 보아왔다.

법정에서의 차디찬 논고는 주위를 얼어붙게 할 때가 많았다. 오래전 있었던 기억의 한 단편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다. 2000년 1월의 마지막 월요일이었다. 부산법원 103호 법정은 가득 찬 냉기로 썰렁했다. 탈주범 신창원이 무술교도관들에 의해 이끌려 나와 재판장 앞에 섰다. 이미 그는 사회적 관심을 잃고 용도폐기가 되어 있었다. 방청석은 텅 비어 있었다. 검사의 논고가 시작됐다.
“피고인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성격이 비뚤어지고 흉악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교도소 안에서도 난동을 부려 선량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려는 노력을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피고인은 지금까지도 경찰과 정치인을 상대로 전쟁을 완수하지 못해 한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교정당국의 문제점을 일기장에 쓴 것도 자신의 탈주범행을 합리화하려는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는 오랜 수감생활로도 교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교화라는 차원을 넘어서 그는 악 그 자체입니다.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를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 만이 적정한 국가 형벌권의 행사라고 봅니다. 피고인을 사형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이 이어서 나를 보면서 “변론하시죠”라고 했다. 그 순간 앞에 있던 신창원이 나를 보면서 소리쳤다.
“변론하지 마세요. 저런 사람들한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 않아요.”
순간 법정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곳곳에 배치된 무술교도관들이 신경줄을 면도날 같이 세우고 있었다. 신창원이 누구를 향해 달려들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재판장이 굳은 표정으로 변호인석의 내게 명령했다.
“그래도 변론은 하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감옥 안에서 열 네살이 갓 넘은 소년은 아팠습니다. 열이 심하게 오르고 끙끙 앓았습니다. 소년은 교도관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동물에게도 가해지지 않을 학대였습니다. 소년은 수갑에 채워진 채 높은 철창에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손목이 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또 교도관의 명령에 따라 재래식 화장실의 똥통에 머리통을 박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찬 웃음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검사님은 오랜 수감생활로도 교화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만 그런 학대는 교화가 아니라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괴물은 마침내 무기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탈주는 자유롭기를 원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일 것입니다.”
나는 변론에서 그가 세상에서 받았던 비인간적인 학대와 설움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최후진술은 이랬다.
“저는 동정받기 싫습니다. 사형을 당하고 싶습니다. 저는 공소장에 나와 있는 것 같이 강도강간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구하신다면 그것도 죽음과 함께 가져가겠습니다.”
그렇게 그의 재판이 끝났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무기수가 됐다. 강도강간죄는 무죄가 선고됐다. 나는 그 사건을 담당하면서 지식이 아닌 체험으로 많이 배웠다. 우리는 권력자나 돈 있는 사람에게는 굽실댄다. 가난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에 대해서는 가볍게 보고 낮게 보고 그의 영혼의 진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지든 죄수이든 그가 사람이기 때문에 귀중하다. 그들을 사람으로서 존중해야 한다. 학대자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양심의 밑바닥을 볼 수 있는 실재자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사람을 학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학대하는 것이다. 국가도 정신이 바로 서야 한다. 아무리 IT 지식이 많고 경제가 풍요해도 인간존중의 기본이 없는 국가는 무너지는 모래성이다.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