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 달라 했었나.
강호논객 한정석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을 알고 땅을 치고 통곡했다."
'민족의 장군 홍범도'를 펴냈던 이동순 시인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뒤 이 시인은 또 자신의 페이스북에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 달라 했었나. 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 또 그걸 철거한다고 이 난리인가'라는 자작시를 올렸다. 책을 낸 시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감상적인 언급이 마치 역사적 '정설'인양 퍼져나갔다. 역사에 대한 객관적 사실의 접근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홍범도 사안은 시적인 언어가 아니라 사실과 사료로써 따지는 산문의 언어가 돼야 한다.
땅을 치고 통곡했다면, 그런 홍범도는 왜 소련 적군(赤軍)의 무장 해제 명령을 거부했다가 포로가 된 독립군들에 대한 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해 '반혁명 죄'를 언도하고 단죄했나? 그 직후 이동휘 장군이 코민테른에 이의제기를 해 그 재판이 '이르쿠츠크파'의 월권과 농단 재판임을 소련 공산당이 인정했다.
소련 공산당이 재판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대항 세력(상해파)이었던 친(親) 소련 적군 이르쿠츠크파 독립군 핵심들이 벌인 재판이었다. 홍범도가 강요에 의해 어쩔 수없이 재판위원을 맡았다고? 그럴 리도 없지만 강요에 의했다고 면책되나?
홍범도는 독립군에 영향력이 지대했던 지도자였다. 땅을 치고 통곡했다면 차라리 재판위원을 거부하고 자신의 행위로 독립군 진영이 분열되고 학살된 책임에 종적을 감췄어야 했다. 그는 오히려 소련군 부대에 편입됐다.
홍범도의 배신으로 자유시의 독립군들은 철수하지도, 항복하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학살됐다. 그 후로 독립군은 사실상 해체되고 뿔뿔이 흩어졌다. 한마디로 궤멸 상태로 간 것이다.
또 그렇게 항복한 홍범도 부대는 적군(赤軍)에 편제되어 일본군과 전투가 아니라, 러시아 적·백 내전에 동원됐다. 이 모두 팩트고, 해제된 소련 문서에 나오는 내용이다.양심이 있다면 진실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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