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비봉 시절풍자] 아저씨, 빗 좀 깨끗하게 빨아서 쓰세요

어려서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다니던 이발관의 정경이 눈에 선하다. 성업 중인 이발관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들어서면 훈기가 넘친다. 뜨거운 물에서 건져 낸 면수건과 비누거품, 스킨로션, 포마드 등이 합해져서 나는 특유의 이발관 냄새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와 함께 가면 지루하다. 내 상고머리를 이발하고 나면, 아버지가 이발을 마치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수천 번의 가위질과, 예쁜 아가씨의 공들인 앞면도와, 수백 번의 두드림으로 온 몸을 커버하는 의자안마가 이어지고, 콧털과 귀지를 제거하고, 손톱까지 깎아주고 나면, 광을 낸 구두를 내주면서 어른들의 이발이 끝나는데, 이를 맥없이 지켜만 보는 일은 개구쟁이에게는 참을성을 키워주는 수련의 시간이었다.
물레방아가 있는 그림액자 옆에 이발사 자격증이 걸려있는 정식 이발관 외에, 자주 가던 곳이 있으니 동네마다 하나쯤은 있었던 '야매 이발소'이다. 골목 안에 허름한 판잣집에서 목재를 두들겨서 만든 이발의자 하나를 놓고, 아저씨 혼자서 운영하는 이발소이다. 야매 이발소를 이용하는 첫째 목적은 어머니에게서 타낸 이발비 20원의 절반을 세이빙하기 위함이다. 이발이 끝나면 남은 돈으로 오징어 한 마리 사들고 만화방에 가서 오붓한 독서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여러 해를 다니던 야매 이발소의 아저씨는, 지금 생각해봐도 야매 이발소에 딱 맞는 타입의 얼굴형이었다. 순하고 물러서 누가 때려도 말 한마디 못하고 맞을 그런 타입, 십원 한 장도 허투루 못 쓰고 마님에게 다 갖다 바칠 그런 타입, 흔히 말하는 ‘법 없어도 살’ 그런 얼굴형이었다. 세상이 그런 세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아저씨에게 부업이 있었으니, 중고생 형들에게 '가치 담배'를 팔기도 했고, 극장에서 나오는 무료입장권을 팔기도 했다. 야매 이발소는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머리빗은 몇 년을 썼는지, 빗살에 허연 때가 덕지덕지해서, 그 빗을 들고 내 머리를 빗겨줄 때면, 머리가 오싹했지만, 어차피 다 깍고 나면, 머리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아프게 머리를 감겨줄 것을 생각하고 억지로 참았던 기억이다.
반올림해서 한 세기가 지난 어느 날, 나는 매스컴에서 그때 그 야매 이발소 아저씨의 얼굴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떤 사람이 삼청동에 있는 이발소를 여덟 번인가 들락날락 했다는 뉴스와 함께 등장한 인물이 바로 그 때 그 아저씨와 동일인이 아닌가 할 정도로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야매 극장표를 팔면서 야매 이발소를 운영하던 그 아저씨와 똑같이 생긴 그 아저씨가, 삼청동에서 야매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게 맞다면, 언젠가 방문해서 11살 짜리 소년의 모습으로 이발을 하고 싶다. 바리깡이 낡아서 머리가 따금따끔하고, 귀밑과 뒷목의 잔머리를 면도질 하느라고 바르던 비누거품이 오싹하고 차가워도 좋으니, 머리빗 만큼은 깔끔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때가 덕지덕지한 빗을 사용하고 있다면, 따끔하게 말해줘야겠다.
“ 아저씨, 빗 좀 깨끗하게 빨아서 쓰세요.”

* '야매'의 어원
요즘 아이들에게 야매가 뭐게? 물으니 '야동매니아' 아니어요? 라고 답한다. 야매는 일본어의 ‘야매떼’에서 온 게 아닌가 하지만, 본래 '야미(暗)'가 어원이라고 전해진다. 그래서 '야미'라고 하면, 암거래시장, 뒷거래등을 의미하며, 무자격 의사, 돌팔이 의사를 뜻하는 '야미이샤' 에서 출발했다고도 한다. 요즘 한국에는 '야미이샤'는 사라졌으나 '야매판사'들이 큰 골칫거리로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