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원 침대공상] ‘조국의 표창장’과 ‘남국의 코인’은 서로 다르지 않다. 관행이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4.19 혁명의 부풀었던 꿈이 5.16으로 좌절되자 나서서 저항하지 못하고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며 시인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란 시()를 써 현실을 애둘러 비판했다.

그 시절엔 그랬다. 거악에 맞서 싸우는 게 정의였다. 이유를 막론하고 부정함과 불의함에 맞서는 게 아직 시민이 성숙되지 않았던 시절 무지랭이 국민을 대신해 자유와 권리 사수를 위한 지식인의 임무였다.

거악에 맞서 투쟁을 했고 민주화를 쟁취했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코페르니쿠스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해야 하는데, 우린 여전히 민주화의 습관에 빠져있다.

조국의 표창장남국의 코인은 서로 다르지 않다. 관행이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퉁치고 넘어갈 수가 없는 문제다. 민주화 시대에선 거악 타파가 정의였다면, 민주주의는 문화 습속을 타파해야 된다.

거악의 시대 우리가 사소하게 취급했던 문제들, 50원짜리 갈비에 기름덩이만 넣는 짓, 야경꾼 삥뜯기, 자기만 편한 주차, 줄서기, 쓰레기 버리기, 고성방가, 침뱉기...민주주의에선 이런것들이 중요하다. 타인에게 피해 입히고 자기 욕심만 차리는 그런 전근대적 의식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룰 수가 없다.

'깨어있는 시민'은 투쟁을 위해 조직된 시민이 아니라 개인주의로 무장된 주체적으로 독립된 시민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다른 생각에 대한 관용,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개방성, 의무와 책임에 충실한 팔로우십, 타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 등등 이런 것들이 민주주의를 일구고 지속하는 조건이자 바탕들이다.

지 새끼만 소중하다 룰을 어기고,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책임과 의무 방기하고, 나만 편하고자 아무렇거나 주차하고 일탈 부리면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이런 사적 이기심으론 기꺼이 지갑을 열 수가 없다.

민주화와 민주주의는 전혀 다르다. 민주화 땐 차떼기에 분노했지만, 민주주의는 다 가진 자들의 대물림 위한 가짜 표창장과 인턴십, 국회의원 코인팔이에 분노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지속되면 민주주의는 오지 않는다.

 

 
저작권자 © 최보식의언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