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이식할 수 없다(Democracy cannot be transplanted)

[최보식의언론=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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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본지의 입장이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게재합니다. (편집자)

차베스와 마두로로 이어지는 베네수엘라의 좌파 독재는 석유부국의 국민들을 아사(餓死)로 내몰았다.

하지만 트럼프의 마두로 제거는 베네수엘라의 민주화의 싹을 틔우기는 커녕 마두로 일당의 지배 체제가 너무도 평온하게 유지되고 있다.

신정일치 독재의 이란은 수뇌부의 참수를 통해 체제 변혁으로 민주주의 이란의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는 트럼프의 기대와 호소가 있었지만, 이란은 체제 변혁을 거부하고 이 억압적 체제는 항전을 계속하고 있고, 민주주의를 쟁취할 이란의 내부 역량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트럼프에게 마두로와 이란에서 한 것처럼 김정은 독재도 제거해달라고 요구하는 우리 보수 쪽 SNS 글들이 종종 올라온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회담을 학수 고대하고 있는데도 이런 희망이 표출된다. 김정은 제거하면 북한에 민주주의가 이식되고 평화로운 한반도가 가능할까?

2000-2004년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조언했던 "민주주의는 이식할 수 없다(Democracy cannot be transplanted)"라는 말이 진실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중동의 독재 정권들을 무너뜨리고 투표권을 부여하면 중동 사회가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반면, 평생을 거친 중동의 전쟁터에서 보낸 '현실주의자' 샤론은 이를 매우 위험한 환상으로 보았다.

미국의 입장은 "자유는 모든 인간의 갈망이며,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평화가 올 것이다"이었고, 샤론의 반론은 "민주주의는 단순히 투표함을 갖다 놓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적, 교육적 토양이 마련되어야 하는 장기적인 프로세스다"라는 것이었다.

샤론은 부시에게 민주주의를 식물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은 논조로 경고했다.

"민주주의는 한 기후에서 다른 기후로 쉽게 옮겨 심을 수 있는 식물이 아니다. 토양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이식하려 하면, 결국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괴물 같은 결과(극단주의 세력의 집권)를 초래할 것이다."

이 말은 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의 민주적 선거 요구와 이라크의 전후 복구 과정에 대해 미국이 가하던 압박에 대한 답변이었다.

샤론의 경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드러났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로 2006년 실시된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테러 단체로 규정된 하마스(Hamas)가 압승을 거두며 가자 지구를 장악했다. 사담 후세인 사후 급격하게 도입된 민주적 절차는 종파 간의 갈등을 폭발시켰고, 이는 훗날 ISIS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혼란의 씨앗이 되었다.

특정 국가의 정치 체제를 외부 세력이 강제로 주입하거나 단기간에 모방하게 만드는 것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원리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투표 제도'나 '의회 건물'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다. 현대의 독재치고 의회와 선거없이 하는 왕정 체제는 없다. 북한도 선거를 하고 의회가 있다. 민주주의는 한 사회의 역사, 문화, 관습, 신뢰라는 토양에서 수백 년에 걸쳐 자라난 유기적인 결과물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제도 이전에 다음과 같은 사회적 기초가 필요하다.

- 시민 사회의 성숙: 개인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시민들의 자각.

- 법치주의 전통: 권력자가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

- 경제적 중산층: 생존 문제를 넘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계층.

- 교육: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이라크 전쟁 당시, 이러한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투표권만 부여하자 오히려 부족 간의 갈등과 종파 분쟁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내부의 구성원들이 투쟁하고 합의하여 쟁취할 때만 생명력을 얻는다. 외부 세력(예: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 정부를 세우더라도, 국민들이 그 체제를 우리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외세의 꼭두각시 정부로 전락하거나 외세가 철수하는 즉시 붕괴한다 (예: 아프가니스탄 사례).

본문에서 샤론이 이 조언을 건넨 이유는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초가 없는 이라크의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라크는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으로 나뉘어 수천 년간 갈등해온 지역이다. 강력한 독재자(사담 후세인)를 제거하고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민주적 화합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수결 원칙에 따라 종파 간의 처절한 보복전과 내전이 벌어질 것임을 예견한 것이다.

이 문구는 오늘날 중국의 민족 동화 정책이나 중동 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적용된다. 미국은 중국이 경제 개발을 하면 민주주의가 따라 올 것이라는 망상을 가졌었지만 중국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자국의 토양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고수한다.

미국이든 그 어떤 나라든 다른 나라에 무력으로 개입해서 민주주의 이식을 성공한 사례는 없다. 그리고 그들의 전쟁의 목적은 민주주의를 이식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제국주의적 욕심으로 아니면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저지른 것들이다.

우리 역사를 중동과 비교하면 최빈국에서 산업혁명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것이 기적에 가까운지 알 수 있다.

한국은 외부 세력이 민주주의를 이식해 준 것이 아니라, 내부의 토양에서 민주주의가 자라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물론 어느 사회나 자신의 사회가 민주주의가 성숙한 단계인지에 대해 비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평화적 정권교체와 개인의 인권 보호라는 차원에서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 사회적 토양: 경제 개발을 통해 형성된 두터운 중산층과 높은 교육 수준이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키웠다. 중동,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문맹을 유지하고 교육을 기피하는 것에 비해 우리는 경제 여건이나 정권과 무관하게 교육에 투자했다.

* 내부적 투쟁: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시민들이 스스로 피 흘려 쟁취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정치적 반대자들은 상대 정권에 대해 늘상 독재라는 비난을 하지만 한국의 역사는 국민들이 독재에 저항하고 그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 저항의 역사임을 증명해 왔다.

* 결과: 시민들 스스로가 체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도 민주주의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고 자정 작용을 거치며 공고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러한 내부 민주화 역사의 의미와 우리 사회의 역량을 크게 오판했다고 생각한다.

2011년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은 독재자를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는 대부분 실패했다.

* 오랜 독재로 인해 민주주의를 지탱할 시민 사회와 법치 시스템이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이란과 이라크는 신을 앞세운 독재라서 더더욱 맹목적 국민들이 두텁다. 컬트적 종교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독재자가 사라진 자리에 민주적 합의가 들어선 것이 아니라, 조직력이 강한 종교 극단주의 세력이나 군부가 들어선다. 아랍의 봅 이후 이집트는 다시 군부 독재로 회귀했고, 리비아와 시리아는 내전의 늪에 빠졌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만 급하게 가져오려다 사회 전체가 붕괴한 사례다.

결국 "민주주의는 이식할 수 없다"는 말은, 밖에서 아무리 좋은 씨앗(제도)을 가져와도 땅(시민 의식과 사회 구조)이 준비되지 않으면 꽃을 피울 수 없다는 뜻이다. 이라크 전쟁을 지켜본 샤론 전 총리는 중동의 토양이 민주주의라는 씨앗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셈이다.

북한에 대해 김일성이 죽으면 민주적 변혁이 있을 것으로 우리는 기대했었다. 김정일의 죽음도 김정은의 더한 독재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지금의 이란처럼 민주주의를 이식한 내부 역량이나 토대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가 북한의 민주화와 핵과 독제 제거의 구세주가 될 것 같은 망상은 버려야 한다. 그는 그럴 의도도 없다. 북한에는 트럼프가 탐내는 석유나 천연 자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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