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이 아니라 ‘그물망’이 된 중동 전쟁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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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을 '이스라엘 대 이란'이라는 단순한 구도로만 이해하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지금 벌어지는 충돌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공격하는 전통적인 전쟁이 아니다.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들이 서로 얽힌 '전략 네트워크' 형태의 전쟁이다.

이란 혁명(1979년, 팔레비 왕조 붕괴) 이후 구축된 헤즈볼라와 하마스, 그리고 이라크와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들은 하나의 연결된 고리를 형성해 왔다. 여기에 예멘의 후티 반군까지 연결되면서 이 네트워크는 더욱 확장되었다.

이 네트워크는 단일 전선을 여러 개의 전선으로 분해하며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지금 이 다중 전선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쟁의 형태는 이미 ‘전선’이 아니라 ‘그물망’이 되었다.

나에게 중동 정치는 낯선 지역 연구가 아니었다. 1980년대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정치학과에 입학해 2학년이 되었을때, 미국 정치와 세계 질서를 이해하려면 중동 정치의 중요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약 1년 동안 중동의 정치와 역사, 그리고 국제정치 속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위치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여러 차례의 이스라엘-아랍 전쟁을 분석하며 이 지역의 갈등 구조가 단순한 종교 분쟁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핵심 축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당시 스토니브룩대 정치학과에는 약 150명의 동기생이 있었다. 그 시절 미국 대학에서 정치학과는 로스쿨 예비학과로 여겨졌고, 사회과학 전공 가운데서도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선택하는 분야였다. 우리 학과에서도 졸업생 상위 20%에 해당하는 약 30명 정도가 로스쿨로 진학해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내 정치학과 동기들 가운데는 유대인 학생들이 유난히 많았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사회 구조를 이해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뉴욕에 거주하는 유대인 가정 가운데 부유하고 학업 성취도가 뛰어난 자녀들은 보통 컬럼비아대로 진학했고, 실력은 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유대인 학생들은 뉴욕주립대 시스템에 속한 64개 대학 가운데 플래그십 대학이었던 스토니브룩대로 많이 모였다.

이들 유대인 학생들의 학업 열정은 대단했다. 많은 학생들이 신분 상승(social mobility)이라는 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주요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고, 결국 미국 주류 사회로 진입하겠다는 분명한 목표였다. 그래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유대 사회와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흥미로운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유대인 학생들은 친해지기 전까지는 자신의 유대 혈통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충분히 가까워진 뒤에야 “사실 나는 유대인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1980년대 미국 사회에는 여전히 유대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오늘날 미국에서 유대인 사회는 법조계와 의료계, 학계와 과학기술계, 언론계, 금융계, 재계, 그리고 방위산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매우 강한 영향력을 가진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스라엘 문제를 이해하려면 미국 정치 구조 속에서 형성된 이러한 네트워크의 존재를 함께 보아야 한다.

당시 정치학과 동기 중에는 1979년 호메이니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이란 학생도 있었다. 그는 혁명 이후 이란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 팔레비 왕정 시절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이론과는 다른 현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이란 정치의 복잡한 내부 구조와 혁명의 충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중동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가 운영하는 '서울스마트도시상' 프로그램의 운영위원 겸 세계 대학생을 위한 챔피언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으로 일하는 스위스 제네바대 교수와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그의 부모는 과거 팔레비 왕정 시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로 혁명 이후 망명길에 올랐다. 그 가족의 망명과 해외에서의 성장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란 현대사의 또 다른 인간적 단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인연으로 뉴욕 유엔본부 대테러국 국장을 통해 현재 이스라엘의 현실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건국된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텔아비브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변호사로 이스라엘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했다. 그와의 교류를 통해 나는 건국 이후 이스라엘 국가가 형성되어 온 과정과 유대교가 이스라엘 사회와 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오늘날 이스라엘이 직면하고 있는 안보 현실과 중동 정세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중동 현장을 직접 경험한 일도 있다. 지난해 10월 두바이에서 열린 두바이 엑스포 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초청되어 두바이 시장과 만났고, 아부다비에서는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집행위원회를 개최하며 아부다비 정보통신부 차관과 아부다비 시장과 교류했고, 카타르 도하에서는 지방행정부 장관과 도시 행정과 미래 전략을 논의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중동이 단순한 분쟁 지역이 아니라 세계 정치와 경제, 기술, 에너지 흐름의 중심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과 연구의 배경 위에서 오늘의 중동 전쟁을 바라보면 지금 벌어지는 충돌의 역사적 뿌리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 그 출발점은 1953년 이란에서 일어난 '모사데크 정부 전복 사건'이다. 중동 정치의 구조를 뒤틀어 놓은 이 사건은 이후 70년 동안 이어지는 갈등의 출발점이 되었다.

1951년 이란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크는 석유 국유화를 선언했다. 당시 이란의 석유 산업은 사실상 영국 회사인 앵글로-이란 석유회사가 장악하고 있었다. 모사데크의 정책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국가 주권을 회복하려는 민족주의적 시도였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였고 서방은 중동 석유를 전략 자산으로 보았다. 결국 1953년 미국 중앙정보국과 영국 정보기관이 협력해 모사데크 정부를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사건 이후 팔레비 왕정은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로 변했다. 국왕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는 서방의 지지를 받으며 권력을 강화했고 이란은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이란은 지금과 달리 이스라엘과도 협력 관계에 있었다. 정보 협력과 군사 협력, 심지어 석유 거래까지 이루어졌다. 오늘날의 적대 관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급격히 방향을 바꾼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 세력은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혁명 지도자들은 팔레비 왕정을 미국이 만든 정권으로 규정했고 1953년 쿠데타를 이란 민주주의가 파괴된 순간으로 기억했다. 그 기억은 강한 반미 정서로 이어졌고 이란은 곧바로 반이스라엘 노선을 선언했다.

이란 혁명 이후 중동 정치의 구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가자지구의 하마스, 그리고 시리아와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를 지원하며 이스라엘을 포위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여기에 예멘의 후티 반군까지 연결되면서 이른바 '저항 축(axis of resistance)'이라 불리는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이 네트워크는 오늘날 중동 전쟁의 핵심 축이 되었다.

하지만 중동의 권력 구조를 이해하려면 이란과 이스라엘만 바라봐서는 부족하다. 이 지역의 정치 질서는 훨씬 오래된 세력 균형 위에 서 있다. 그것은 바로 페르시아, 튀르키예, 아랍이라는 세 문명권이 형성하는 삼각 구조다.

이란은 페르시아 문명의 후계 국가로서 강한 국가 정체성과 전략적 자율성을 가진 지역 강국이다. 튀르키예는 오스만 제국의 후계 국가로 유럽과 중동 사이의 지정학적 중심에 서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아랍 세계는 종교적 정통성과 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또 하나의 축을 형성한다. 중동의 정치 질서는 이 세 세력의 긴장과 균형 속에서 움직여 왔다.

이러한 역사와 구조 위에서 오늘의 전쟁을 바라보면 지금 벌어지는 충돌의 성격이 더 분명해진다. 현재 중동의 전쟁은 사실상 두 개의 축으로 정리된다. 한 축에는 이란과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반군, 그리고 이라크와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들이 있다. 다른 축에는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일부 걸프 국가들이 서 있다.

이 전쟁의 구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동에는 또 하나의 잠재적 변수로 남아 있는 거대한 민족 집단이 있다. 바로 쿠르드족이다. 쿠르드족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걸쳐 약 3천만 명 이상이 분포하는 중동 최대의 비국가 민족 집단이다.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 무장 세력은 오랫동안 미국과 군사 협력을 유지해 왔다. 중동 전쟁이 다중전선이 되면서 지상군 투입을 꺼리는 미국이 쿠르드 세력을 새로운 전략 변수로 활용하고 있다. 이 경우 중동 전쟁의 그물망은 또 하나의 새로운 축을 추가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왜 미국은 장기 소모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고 때로는 직접 군사 행동까지 고려하는가 하는 점이다.

첫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의 안전이다. 

미국 정치와 전략 구조 속에서 이스라엘은 단순한 동맹국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미국 사회와 정치 구조에는 강력한 유대계 네트워크가 존재하며, 이스라엘은 그들의 역사적 조국이자 정체성의 중심으로 인식된다. 이스라엘의 안보는 미국 국내 정치와 전략 계산에서 매우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두 번째 이유는 에너지와 해상 통로다.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 공급의 핵심 관문이다. 이 지역의 안정은 세계 경제 질서와 직결된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중국이다. 

최근 중국은 이란산 석유의 주요 수입국으로 자리 잡았다. 서방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 석유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란이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며 중국과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는 상황을 방치하기 어렵다. 

결국 미국의 대이란 전략은 이스라엘의 안보, 세계 에너지 질서, 그리고 중국 견제라는 세 가지 계산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지금 국면에서 가장 위험한 신호는 전쟁이 나토 방공 체계와 실제로 접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튀르키예는 이란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자국 영공으로 접근했고 나토 방공망이 이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미사일 파편이 하타이 인근에 떨어졌고 인지르릭 기지 주변까지 언급되면서 중동의 충돌은 이제 유럽-대서양 안보 체계의 문턱을 두드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 하나의 위험 신호는 레바논 전선이다. 헤즈볼라는 이란의 포위 전략에서 가장 강력한 고리다. 이 전선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면 전쟁은 단순한 교환 타격이 아니라 장기 소모전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위험 신호는 해상 교통로다.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 같은 전략 해상로가 흔들리면 전쟁은 군사 충돌을 넘어 세계 경제로 확산된다. 특히 예멘의 후티 반군은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국제 상선을 공격하며 이미 전쟁의 범위를 해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결국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하나의 전선이 아니라 여러 전선이 동시에 움직이는 네트워크 전쟁이다. 그리고 그 긴 역사적 흐름의 출발점에는 여전히 1953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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