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왜 "하인에게는 영웅이 없다"고 설파했나
[최보식의언론=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준장)]

선거철이 돌아오기는 확실한 듯하다. 너도 나도 얼굴 알리기 위한 출판기념회 개최 소식이 들려오고 여야 가릴 것 없이 내부에서 폭로전이 점입가경이다.
여의도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 두껍게 처신한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공사의 구분이 전혀 없이 처신했고 탈법 위법은 예사다.
이혜훈과 김병기 사태는 여와 야를 막론하고 정치를 오래 할수록 한국의 정치인은 교도소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안고 있는 듯하다.
특히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논란은 개인의 인성 문제나 도덕성 결함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를 보좌하는 보좌진에 대한 폭언과 갑질, 결혼한 아들을 이용한 부동산 투기 의혹, 제도 악용 의혹이 연이어 드러나는 과정은 한국 정치가 어떤 사람을 선별하고, 어떻게 키워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혜훈 후보는 하루라도 빨리 물러나는 게 그동안의 이미지를 덜 망가뜨릴 것이다. 아니 여지껏 드러난 것만으로도 이미 망가졌다. 이 후보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기를 가장 잘 알고 "윗사람은 속여도 아랫사람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듯하다.
오늘의 아군은 등을 지면 그 "아군이 가장 무서운 적군이 된다"는 사실도 간과했을 것이다. 이혜훈을 발탁한 이 대통령을 보고 노회한 한 수를 두었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있다. 진내사격과 이전투구를 계산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36계 중 제3계에 나오는 남의 칼을 빌려 적의 목을 친다는 '차도살인(借刀殺人)'으로 야당의 자중지란을 유도하는 한 수였다는 것이다. 잘 되면 탕평화합이고 잘못되면 보수의 민낯을 까발리는 한 수다.
보수는 그동안 자기 식구였던 옛 동료의 비리를 까발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까발릴수록 자기 진영에 수류탄 던지는 줄도 모르고 보수의 대표로 몇 번을 공천했던 자기 당의 과거 동지의 후보 얼굴에 침뱉기 폭로를 이어간다.
일찍이 나폴레옹이 "하인에게는 영웅이 없다"고 설파했다. 거룩하게 보이는 사람이 온갖 치장을 하고 거룩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자기를 측근에서 도와주는 사람에게는 영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자기의 치부를 측근에 있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진면목과 온갖 지저분한 일을 모두 안다는 뜻이다. 나폴레옹은 이 사실을 간파하고 이미지 조작에 거금을 들였다.
알프스 산을 하인이 고삐를 잡은 당나귀를 타고 쫄레쫄레 넘은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다비드에게 거금 10만 프랑을 주고 궁정 전속화가로 채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그림이 알프스를 넘으면서 망토를 휘날리는 나폴레옹의 기마상 그림이다.
이 돈이 오늘날 가치로 수십억 원에 이른다는 평가도 있다. 치부를 가리기 위해 수십억 원을 기꺼이 지출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인간의 됨됨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장 힘 없고 권력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본성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평소에는 고용인이 '갑'이고 피고용인이 '을'이다. 고용인은 피고용인을 하인 부리듯이 함부로 대했다간 큰 코 다친다. 특히 얼굴이 안 보일 때 전화로 하는 대화가 지금은 고스란히 녹음이 된다는 사실이다.
헤어질 때 좋은 모습으로 섭섭하지 않게 잘해 주어야 한다. 원한이나 앙심을 품고 헤어지면 그게 폭탄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고용계약이 종료되거나 헤어지면 갑을의 관계가 역전이 되는 이 평범한 진리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간과한다.
보좌관이나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설사 섭섭하게 했더라도 업무상 불가피했던 사정을 설명하고 자신의 과오에 대하여 이해를 구하고 그 보좌진이 앙심을 품지 않도록 뒷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위로금이나 보로금을 쥐어주고 자기를 도와주고 업무를 잘할 수 있도록 해준데 대하여 감사와 고마움을 반드시 표해야 한다.
헤어질 때는 식사를 같이 하면서 위로해야 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육군대장 공관병 갑질 사건'도 이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왜 이런 인물이 정치판에서 반복해서 살아남았는가"다. 이혜훈 후보자는 하루아침에 등장한 인물이 아니다. 수차례 공천을 받았고, 지역 기반을 다졌으며, 정치적 생존력을 증명했다.
보좌진에게는 함부로 대하면서도 권력에는 철저히 순응하고 언론에 비추어지는 것만 관리하는 태도, 공천과 당선에는 능숙하지만 공적 책임에는 둔감한 모습은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의 공통된 병폐다.
더 큰 문제는 여야 모두의 위선이다. 여당은 '통합과 실용'이라는 말을 꺼내 들었지만, 정치적 반대편을 '내란 세력'이라 규정해 왔다. 논리도, 기준도 없다.
이현령비현령으로 필요하면 적이 동지가 되고, 부담이 되면 동지는 하루 아침에 버려진다. 배신자 프레임에 걸려들면 어느 집단이든 다르지 않다. 수십 년간 공천을 주며 키운 인물에게 문제가 드러나자, 모든 책임을 현 정권의 인사 검증 실패로 돌린다. 자기들이 만든 결과에 대해서는 끝내 침묵한다.
이런 정치 구조에서는 도덕성도, 책임성도 작동하지 않는다. 공천은 능력과 공공성의 결과가 아니라 충성 경쟁의 산물이고, 정치는 봉사의 영역이 아니라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당적을 바꾸는 순간 과거는 지워지고, 원칙은 필요에 따라 재단된다. 국민은 늘 마지막에야 알게 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답은 분명하다. 정치 개혁은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의 손에서 시작돼야 한다.
첫째, 공천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밀실 공천, 전략 공천이라는 이름의 사천(私薦)을 끝내고, 완전 개방형 경선과 국민 검증을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정치인의 사익 추구에 대한 실질적 제재가 필요하다. 불법·편법이 드러날 경우 정치적 생명이 끝난다는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한다.
셋째, 유권자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 편이면 괜찮다'는 관용이 부패를 키웠다. 도덕성에 대한 기준은 진영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누가 말을 잘하는가보다 누가 더 성실하게 봉사할 사람인가를 식별해야 한다.
'이혜훈 사태'는 특정 인물을 넘어선 경고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이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다음 논란의 주인공은 또 나올 것이다. 정치를 바꾸는 마지막 힘은 제도보다, 권력보다, 결국 깨어 있는 시민의 선택에 있다. 지금이 그 선택을 다시 물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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