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가 박근혜 탄핵에 사용될 수 있다”

[최보식의언론=한민호 전 문체부 국장]

YTN 화면 캡처

중국공산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섭하기 위해 15년 이상 오랜 기간에 걸쳐 집요하게 정성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공작은 2016년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과 뒤이은 박근혜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실패로 귀결되었다. 이에 중국공산당은 발작적으로 보복을 하면서 박근혜 탄핵에 나섰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대한민국은 온통 '친중'으로 기울었다.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 재계, 학계, 언론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까지 “미국은 지는 해, 중국은 떠오르는 해”라며 중국의 발전상을 찬미했다. KBS, 조선일보, 매일경제 등 모든 언론이 중국의 발전상을 소개하느라 바빴다.

 근거가 없는 게 아니었다. 1992년만 빼고 1993년부터 2022년까지 30년 간 우리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대중 무역수지 흑자가 무려 628억 달러였다. 그해 전체 무역수지 흑자가 629억 달러였는데, 중국과의 무역에서 거둔 흑자가 거의 전부였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서방의 모든 나라도 중국과 밀착했다. 중국에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고, 시장을 열어 주었다. 서방의 자본은 중국의 광대한 시장과 저임금의 풍부하고 분규 없는 노동력을 활용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세계적 조류에 편승했던 것이다. 

박근혜도 그랬다. 중국공산당의 '박근혜 포섭 공작'은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후술하듯이, 2015년에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자리잡은 시진핑 자료실도 그 전(前)해 시진핑의 방한을 기념해서 박근혜가 준 선물이었다.    

2008년 방중 당시 후진타오를 만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KBS 캡처
2008년 방중 당시 후진타오를 만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KBS 캡처

“새마을운동을 배우고 싶다”  

박근혜의 중국 인맥으로 꼽혔던 구상찬 전 의원은 2012년 “중국에서는 1998년 박근혜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직후부터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갖고 박 후보와 접촉을 시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구 전 의원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2004년쯤에 박근혜 당시 의원에게 “박정희와 새마을운동에 관련한 자료를 좀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박근혜는 새마을운동 관련 자료를 직접 정리해 라면상자 3개에 담아서 중국 측에 건넸다. 

중국공산당은 2005년 5월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를 초청, 후진타오 주석과 탕자쉬안 외교담당 국무위원,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나서서 극진하게 대우했다. 박근혜는 이 때도 새마을운동 관련 자료를 잔뜩 챙겨 갔다. 

박근혜는 후진타오에게 “북한과 미국 사이의 신뢰 회복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후진타오는 “한반도의 비핵화,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한반도 문제 해결 등 중국정부는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다”는 판에 박힌 답변을 진지하게 늘어놨다. 

박근혜는 그 답변을 듣고 이렇게 낙관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부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말을 들으니, 6자회담 당사자들이 힘을 합치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와 같은 낙관적 전망 위에서 박근혜는 '한반도 횡단철도'를 통해 한국을 중국과 러시아, 유럽으로 연결하는 자신의 ‘오랜 구상’을 다시 한 번 가다듬었다. 

박근혜는 후진타오를 만나기 전인 2002년 5월 미래한국연합 대표 자격으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한반도 횡단철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동해선을 연결하기로 약속했지만, 북핵문제로 전혀 진척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박근혜의 당시 방중 일정에 베이징대 특강이 있었다. 박근혜는 ‘동북아시대의 동반자 역할’을 제안하고 한중관계의 중요성, 특히 한국과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여 학생들의 열정적인 박수를 받았다. 왕자루이 부장은 박근혜가 심한 감기몸살에 걸린 걸 알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을 모두 끄도록 배려하고 만찬 후에는 별도의 감기약까지 건네줘서 박근혜를 감동시켰다.

시진핑과의 첫 만남

같은 해 2005년 7월에는 당시 저장성 당서기였던 시진핑이 한국을 방문, 박근혜와 오찬을 함께 하면서 새마을운동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자세히 묻고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박근혜가 관련 서적과 자료를 시진핑에게 넉넉하게 챙겨 준 것은 물론이다. 이후 중국은 2005년 말 ‘신농촌 건설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박근혜는 2006년 11월, 중국공산당의 초청으로 재차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공산당 최고위 간부 양성 기관인 중앙당교에서 새마을운동에 대해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서였다. 중국공산당 고위 간부 등 300명이 강연장을 가득 메우고 경청하며 열심히 메모하는 가운데, 박근혜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중국공산당 중앙당교에서 강연을 했다. 

당시 방중 기간에 중국공산당 서열 5위로서 선전과 이데올로기 및 통일전선을 담당하던 리창춘 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국 외교의 핵심인사인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다이빙궈 외교부 상무부부장 등을 만나 북핵 문제에 대한 한중간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야당 대표 박근혜를 국가원수급으로 대우 

박근혜는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특사단장 자격으로 또 중국을 방문했다. 후진타오 주석,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 탕자쉬앤 국무위원, 양제츠 외교부장 등과 잇달아 면담을 갖고 새정부의 대중외교 구상을 전달하고 양국간 우호관계 증진 방안 등 현안을 논의했다. 

박근혜는 "중국에 갈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줘 감사했다"며 "한중 협력관계가 강화되기를 바라는 이 당선인의 뜻과 의지를 잘 전해드렸고, 후 주석은 양국이 모든 분야에서 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도록 하자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앞선 두 번의 방중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빈급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박근혜가 묵었던 댜오위타이는 외국 국가원수를 비롯, 국빈급 해외인사가 방문할 때 묵는 영빈관이다. 1월 17일 탕자쉬안 국무위원과의 만찬에서는 청나라 때 사용되던 순금으로 만든 식기가 나왔다. 최고위급 인사에게만 내오는 것이었다. 식사 또한 자라요리, 오리·비둘기 요리, 각종 버섯요리 등 보양식으로 준비했다.

대통령이 되어 네 번째 방중

박근혜는 2013년 6월, 대통령으로서 중국을 다시 방문, “우리의 대북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요하고 특히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상회담에서 저와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올바른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공감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발언했다. 

이어 “저는 북한이 진정한 변화의 방향으로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해 북한의 발전을 적극 지원하면서 남북 공동번영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 대화를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존의 구상을 재확인한 것이다. 

박근혜는 나흘간의 방중 기간에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제2인자인 리커창 총리, 제3인자인 장더장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핵심 3인방과 연쇄 회동했을 정도로 이번에도 특별한 환대를 받았다. 

외교부 국립외교원, 중공 중앙당교와 MOU

201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의 6월 방중에 앞서 4월에 외교부 산하기관인 국립외교원은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와 “한중 양국의 정치·안보 분야 협력 강화를 위해” ‘상호 교류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하고 서울 국립외교원에서 제1차 전략회의를 개최한다.

이어 8월에는 중국 창춘에서 제2차 전략회의를, 이듬해  2014년 7월에는 인천 송도에서 제3차 전략회의를, 11월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제4차 전략회의를 개최한다. 

2019년 7월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이 10일 베이징에서 중국공산당 중앙당교와 교류·협력 추진 협약을 체결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 6년 전에 그와 같은 ‘교류’를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전인 2005년 9월에는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국제협력위원회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가 양당 간의 교류와 협력에 관한 합의각서를 체결했다. 이렇게 중국공산당은 한국의 여와 야를 모두 공작 대상으로 삼았다.  

시진핑, 총서기가 되어 다시 방한

2014년 7월에는 시진핑이 중국공산당 총서기로서 한국을 다시 방문, 박근혜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진핑은 2005년 7월 저장성 당서기로서 방한, 박근혜를 처음 만났는데, 둘 다 권력의 정점에 올라 다시 만난 것이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됐고, 박근혜는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약 3개월 차이였다. 

시진핑의 당시 방한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취임 이후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고, 다른 나라를 겸하여 방문한 게 아니라 한국만 단독으로 방문했다는 점에서 양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사건’이었다. 

시진핑은 서울대학교에서 “평화를 수호하는 중국, 협력을 촉진하는 중국, 겸허하게 배우는 중국”을 강조하는 강연을 했다. 아울러, 중국을 소개하는 도서와 영상자료 1만 점을 기증하겠다며 교육과 학술 연구에 활용해 달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기증받은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 도서관 본관의 구(舊) 관장실을 리모델링했다. 이후 '시진핑 기증도서 자료실' 개관식이 2015년 10월 13일에 열렸다. 박근혜는 그동안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받은 극진한 환대를 이렇게 극진하게 갚았다. 

양국 공동성명에서는 전략적 협력동반자를 더욱 내실화하기 위해 양국 관계를 “공동발전을 실현하는 동반자, 지역평화에 기여하는 동반자, 아시아의 발전을 추진하는 동반자, 세계번영을 촉진하는 동반자”로 규정했다. 

안보 분야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유지가 6자 회담 당사국들의 공동 이익이며, 9.19 공동 성명과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의 성실한 이행과 6자 회담 프로세스의 추진을 위해 당사자들 간 양자 및 다자간 소통과 조율을 강화하자”고 합의했다. 의전은 요란했으나, 만남의 결과는 공허한 말의 성찬에 불과했다. 

박근혜의 첫사랑을 그린 대형 족자 선물

시진핑은 방한 중에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자룡을 그린 대형 족자를 박근혜에게 선물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07년 6월 출간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조자룡을 “첫사랑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그가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었다”고 한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자서전의 중국어판이 2013년 4월 출간돼 ‘세계 책의 날’인 2014년 4월 23일 ‘2013 중국 우수도서’인 호서(好書)로 선정됐다. 시진핑의 방한을 앞두고 중국공산당이 박근혜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공작을 한 것이다. 

천안문 망루에서 인민해방군 열병식 참관

2015년 9월, 박근혜는 중국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일>, 소위 전승절에 참석해 달라는 시진핑의 초청을 받고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박근혜는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데 ‘합의’하고, 국내외의 따가운 시선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참관했다. 

열병식은 3일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1만2,000여 명의 병력과 500여 점의 무기 및 장비가 동원된 대규모 행사였다. 박근혜의 자리는 시진핑의 오른편 두 번째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다음이었다. 박근혜를 크게 예우한 배치였다. 김정은을 대신해 열병식에 참관한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의 자리는 첫 줄이었으나 가장 끝 자리였다.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박근혜와 시진핑의 ‘우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2013. 2. 25.)하기 직전인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하며 도발했고, 3월 30일에는 전시상황 돌입을 선언했다. 이후 수시로 미사일과 방사포를 발사했다. 2015년에는 북한군 10여명이 군사분계선을 침범(7. 11.)했으며,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8. 4.), 서부전선 포격 사건(8. 20.)이 이어졌다. 

급기야 2016년 1월 6일에는 북한이 4차 핵실험, '자칭'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그 직후 박근혜는  시진핑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중국 측에서는 그 전화를 안 받았고, 한동안 그에 대한 해명도 없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면서 3월 16일에는 청와대 타격을 위협했고, 9월 9일에는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박근혜가 그동안 중국을 지렛대로 삼아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중국공산당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과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며 박근혜에게 접근했고, 온갖 감동적인 환대로 포섭하려 했다. 사실 박근혜는 처음부터 중국공산당에 대해 환상을 갖고 그들의 말장난에 속았다. 그러나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박근혜는 환상을 버렸다. 

박근혜, 사드 배치 결정

박근혜는 북한의 4차 핵실험(2016. 1. 6.) 일주일 뒤인 1월 13일,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 등을 감안해 가면서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따라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로부터 약 한 달 뒤 국방부는 한·미 당국이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고 밝혔고, 7월 8일에는 합의가 완료되었음을 공표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는 2월 10일,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그 직후, 정부는 남북 교류 협력은 물론, 영유아, 취약 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5차 핵실험(9. 9.) 도발 이후 국방부는 ‘핵미사일 대응태세’를 청와대에 보고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우리 군의 독자적인 ‘김정은 참수 부대 창설 계획’이 포함됐다. 그때 국가정보원은 북한의 반체제 세력을 지원해 내부 붕괴를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박근혜는 10월 13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자문위원들과 ‘통일대화’ 행사를 갖고 “북한체제가 비정상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는 생존조차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며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열어 놓고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깨달음에 따른 당연한 조치가 이어진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발작

2016년 7월 정부의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국은 발작적으로 반응했다.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라는 비공식적인 보복 조치와 불매운동을 퍼부었다. 한국 연예인이 등장한 영화·드라마·음악 등 K콘텐츠 상영·공연과 광고·양국 공동제작이 전면 금지됐다. 중국 내 한국 화장품 판매가 급감했고, 한국 식당 폐업이 잇따랐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은 중국공산당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중국 사업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 2017년 3월부터는 중국인의 한국 단체 관광까지 중단돼 한국 관광·면세점 업계와 서울 명동(明洞) 같은 상권이 휘청거렸다. 중국공산당의 보복은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졌다. 

한중관계의 예정된 파탄

중국공산당이 박근혜에게 거의 15년간 공을 들였고 박근혜 역시 2015년 9월 국내외의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 열병식까지 참관했지만, 한중관계의 파탄은 예정된 것이었다. 

미국은 이미 2000년 전후부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비해서 미사일방어체제(MD: Missile Defense)를 갖추고 이를 위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국정부를 설득, 압박하고 있었다.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 이후 그 논의가 더욱 구체화되었고, 관련된 보도가 국내외에서 이어졌다. 2014년 9월 1일에는 사드를 배치할 부지 조사가 끝났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9월 18일, 중국공산당은 관영언론 환추왕(環球網)을 통해 "한국은 미국에 아첨할 수 있지만 중국을 해쳐선 안 된다"며 사드 배치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형성되고, 한반도의 긴장 정세를 가중시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환추왕은 “한국 역시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려는 목적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 즉 사드 배치로 군사시설 배치 등 중국의 광대한 지역이 미국의 감시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공산당의 이런 모욕적이고 노골적인 협박에도 불구, 약 1년 후 박근혜는 중국공산당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그로부터 약 4개월 후, 북한의 4차 핵실험(2016. 1. 6.)을 계기로 박근혜는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중국공산당의 정체를 깨닫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드가 박근혜 탄핵에 사용될 수 있다”

2016년 8월 13일, 중국공산당은 산하의 각종 매체를 총동원해서 ‘박근혜 탄핵’을 거론하면서 박근혜를 압박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한국 정가가 극명한 대립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는 제목 아래 “사드 배치에 항의하는 물결이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으며, 경북 성주에서는 매일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민일보 소속 환구시보(环球时报)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사드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 김상곤의 발언을 왜곡, 인용했다.

김상곤은 “민심을 거역하면 탄핵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글로벌타임스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여론을 반대하면 탄핵될 수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차이나데일리도 비슷한 논조로 박근혜 공격에 가담했다. 그 후에도 공격은 계속되었다. 

이후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확산되었는데, 그 시위 대열에 관광객을 가장해서 입국한 중국인들이 많이 보이더라는 목격담이 있었으나, 물증은 없었다. 결국 국회는 그해 12월 9일,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탄핵을 인용하며 박근혜 파면을 결정했다. 

그 사이에, 2017년 1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앞두고 송영길 등 민주당 의원 7명이 중국을 방문해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면담했다.

이에 대해 조우석 기자가 놀라운 얘기를 기사화한 바 있다. 

“송영길과 민주당은 자기들이 권력을 잡으려 하니 도와 달라고 중국에 먼저 요청했고, 그 경우 주요 현안에서 중국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쟁점이던 사드 배치와 관련해 이른바 3불을 이면 합의했던 것도 그 맥락이다.”

3불은 사드 추가배치 안 한다, 한·미·일 3각 동맹 하지 않겠다, 미국 중심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조 기자는 기사의 근거도 제시했다. 

“당시 국내 3대 보안기관의 한 곳에서 송영길-왕이 밀약의 움직임을 탐지했다. 그걸 보고서 형태로 그 기관의 윗선에 두 차례 올렸다는 것까지만 밝히겠다.” 

조 기자의 기사에 대해 송영길 의원과 민주당은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묵살함으로써 논란의 여지를 만들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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