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 적폐 처벌의 악순환도 공무원들이 녹음으로 미래에 닥칠 '사화'에 대비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

정치적 진영 싸움에 몰두하거나 그것으로 먹고사는 유튜버나 언론들은 신나는 상황 전개일 것이다.
한국은 사적 통화 내용들의 녹음 파일 폭로전으로 날이 새고 날이 가고 있다. 정치인, 연예인, 경영자를 가리지 않는다.
나는 무섭다.
믿고 했던 대화가 이후에 수시로 '협박' 수단으로 등장하는 이 현상이 한국에서 사람 사이의 신뢰를 어느 수준까지 붕괴시킬지, 아니 남아 있는 신뢰가 있을지 의문이 된다.
정치에 몰두하면 상대방의 몰락을 보며 신나는 일이지만 신뢰라는 선진 사회의 사회적 자본의 속절없는 파산을 언제까지 환호할 것인가?
왜 다른 나라는 이런 일이 잘 없을까?
우리는 이것이 '한국적 현상'임을 인식하지 모르지만 미국, 유럽, 일본에서 이런 일들이 보도된 적을 본적이 있는가?
미국과 한국의 정치적 스캔들이 터지는 양상(이메일 vs 녹음 파일)이 다른 것은 법적 환경, 기술적 환경(스마트폰), 그리고 의사소통 문화라는 세 가지 핵심적인 차이에서 기인한다.
1. 법적 환경의 차이: 동의 여부 (가장 결정적 이유)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대화 당사자가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해도 되는가?"에 대한 법적 허용 범위다.
* 한국 (원사이드 동의, One-party consent):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당사자(나)가 포함된 대화라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해도 합법이다. 제3자가 몰래 듣는 도청만 불법이다.
따라서 정치인이나 보좌진이 통화 중 "혹시 모르니 일단 녹음해두자"는 행위가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이것이 나중에 폭로의 수단(스모킹 건)이 된다.
미국 (주마다 다름, Two-party consent의 장벽)의 연방법은 한국처럼 한쪽 동의만 있으면 합법이지만,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일리노이 등 주요 11~12개 주는 "양방향 동의(Two-party or All-party consent)"법을 채택하고 있다. 즉,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은 불법이며 법정 증거로도 못 쓰고, 오히려 형사 처벌이나 소송을 당할 수 있다.
*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이 모인 워싱턴 D.C.나 뉴욕은 '원사이드 동의' 지역이지만,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주법이 어떻게 적용될지 모르는 위험 부담 때문에 통화 녹음을 꺼리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2. 기술적 환경: 아이폰 vs 갤럭시
스마트폰 제조사의 정책 차이가 녹음의 '용이성'을 결정지었다.
* 한국 (갤럭시의 자동 녹음):
한국 정치권과 관료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삼성 갤럭시 폰은 "통화 자동 녹음" 기능이 기본 탑재되어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거나 설정만 해두면 모든 통화가 파일로 남는다. 즉, 녹음이 '일상적 습관'이 되기 쉽다. 통신사의 통화앱들도 자동녹화 기능을 자랑한다.
* 미국 (아이폰의 녹음 차단):
미국 시장 점유율이 높은 애플(아이폰)은 프라이버시 정책과 미국의 주법(양방향 동의)을 고려하여 통화 녹음 기능을 원천 차단해왔다.
최근 iOS 업데이트로 기능이 생겼으나 상대방에게 "녹음이 시작됩니다"라고 고지된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몰카를 방지한다고 카메라 셧터음을 의무화 하면서 몰래 녹음은 이보다 경미한 사생활 침해라서 고지를 안해도 되나?
* 미국에서 통화를 몰래 녹음하려면 별도의 장비를 쓰거나 복잡한 앱을 써야 하므로, 한국처럼 '무심코' 혹은 '습관적으로' 녹음하는 일이 드물다.
3. 업무 및 의사소통 문화: 'Paper Trail' vs '구두 지시'
정치적, 행정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의 차이다.
* 미국 (Email Culture & Paper Trail):
미국은 소송의 나라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모든 업무 지시와 보고를 "문서화(Put it in writing)"하는 문화가 강하다. 이로 인해 정치적 음모나 비리도 이메일이나 메신저 같은 텍스트로 오가는 경우가 많다.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이나 각종 위키리크스 폭로가 텍스트 기반인 이유다.
* 한국 (밀실 문화 & 보험용 녹음):
한국 정치는 보안을 이유로 민감한 사안을 전화나 대면 보고(구두 지시)로 처리하는 경향이 짙다.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한다.
이때 을(乙)의 위치에 있는 부하 직원이나 관계자는 훗날 자신이 덤터기를 쓸 것을 우려하여 "생존용 보험"으로 몰래 통화를 녹음한다. 결국 상사는 기록을 피하려고 전화를 걸지만, 부하는 살기 위해 그 전화를 녹음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녹음 파일 스캔들'이 탄생한다.
전 정권 적폐 처벌의 악순환도 공무원들이 녹음으로 미래에 닥칠 '사화'에 대비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 이 사람간의 신뢰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야만의 모습 계속 가져갈 것인가?
정말 이대로 정글에 살아야 하나?
P.S. 물론 이글은 녹음된 불법과 갑질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btlee@kaist.ac.kr
#불법녹음, #이혜훈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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