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라 할지라도 파묘를 해서라도 진실을 밝히자'는 태도로 앞장서던 사람들
[최보식의언론=곽대중 작가(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실 팀장)]

고등학교 때 동급생 가운데 정말 나쁜 놈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어느 잡지 칼럼에도 잠깐 언급한 적 있는데, 세상 나쁜 짓은 다 저지르고 다니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녀석은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고 법적인 처벌 또한 피했는데, 녀석의 아버지가 인근 학교 교사였고, 당시 시대상으로는 웬만한 건 돈이나 인맥, 권력으로 무마할 수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끔찍한 성범죄도 저질렀던 것으로 아는데(윤간이라 들었다), 그것도 적당히 합의하고 정리했을 것이다. 그때는 시대가 그랬다.
필자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풍경이 하나 있다. 녀석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친구를 피범벅이 되도록 두들겨 팼던 날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조용히 자습하던 시간에 녀석은 벌떡 일어나더니, 밀걸레 자루를 부러뜨려, 그걸 몽둥이 삼아, 교실 뒤 너른 공간에서 급우를 두들겨 팼다. 한참 두들겨 팼다.
까마득히 35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날 밤공기의 무게와 창밖 어둠의 밀도, 교실 안에 퍼지던 경악스런 침묵과 비릿한 피 냄새의 흔적까지 생생히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필자는 그때, 친구가 무뢰한에게 짐승처럼 얻어맞을 때(짐승도 그렇게 맞아서는 안 된다), 반경 3미터 안에 있었는데, 왜 그 현장을 막지 못했을까. 왜 우리 반 누구도, 일방적 폭행의 현장을 저지하지 않았을까. 무엇이 우리를 침묵하게 만들었을까. 그런 것들을 '그때는 시대가 그랬으니까'라고 그저 뒤돌아 용인할 수 있는 것일까.
그날 이후로, 영화가 되었든 현실이 되었든, 폭력의 현장을 볼 때마다 필자는 고교 시절 그날 일이 떠올랐고, 필자가 살다가 폭력의 가해자가 되었던 날에도, '내가 그 녀석처럼 된 것만 같아' 필자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죽고만 싶었다.
누군가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되돌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냐" 묻는다면, 필자는 35년 전 그날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돌아가, 그날 밤으로 돌아가, 몽둥이를 낚아채고,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새X야!"라고 외치고 싶다. 그런 꿈을 여러 번 꾸었다. 내가 그것밖엔 바랄 것 없는 한가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간절한 소원이다. 어쩌면 한심한 소원이다.
당신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아니냐고 탓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는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흘려보낸 기억이, 어떤 누군가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고, 필자에겐 그날 밤 그 일이 그런 종류의 기억이다.
언젠가 고향에 갔다가 동창생을 만나 녀석의 근황을 물은 적이 있다. 자영업을 하면서 그럭저럭 잘살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 그토록 말썽꾸러기가 지금은 잘살고 있으면 됐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때 그 일이 그냥 '말썽꾸러기' 수준의 일이었는가 하는 대목에서 다시 생각이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정말 맞나?'라는 갈등과 괴로움은 아직도 어쩔 수 없다.
정확한 진상을 몰라 말하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배우 조진웅 씨와 관련한 최근 언론보도와 여론 동향을 보면서 고교 시절 그 녀석이 겹쳐 떠올랐다.
누군가는 "30년 전 일인데, 뭘"이라고 옹호하고, 다른 누군가는 "죗값을 이미 치렀지 않은가"라고 짐짓 점잖게 말하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일까. '어린 날의 치기'라고 치부할 수 있는 일과, '어떤 시대의 잣대로 보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의 경계라는 건 엄연히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내가 그 무슨 정의의 투사랍시고 "용서할 수 없는 놈!"이라 유난히 화를 내고, 그걸 지금 나 자신의 부도덕함이나 지리멸렬함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싶지는 않다. 또 "피해자의 입장에 서 보라"거나,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라"라고 지고지순한 인본주의자 행세를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든 일에 '그럴 수도 있는' 일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라는 건 역시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최근 어느 여고생이 무인 점포에서 아이스크림 몇 개를 훔쳐먹었다가 난처한 상황에 몰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물론 모든 청소년들이 난처한 상황을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굉장히 엄격하게 적용되는 도덕적 법률적 잣대가, 그럴 수밖에 없게 된 작금의 환경이, 기성세대들에게는 '그때는 그랬으니까'라고 허용 혹은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왜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100년, 1000년 전 사례까지 끄집어내 반례 없이 고결한 정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유독 다른 어떤 문제에는 침묵하거나 판단 유보를 강조하는 것일까.
정치적 문제에는 "역사에는 시효가 없다"면서 목청 높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왜 다른 어떤 문제에는 '시효'를 따지는 것이며, 왜 어떤 문제에는 "법적인 처벌을 받았어도 정치 사회적 죗값은 영원히 남는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다른 문제에는 "감옥 갔다 왔으면 됐지"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것일까.
왜 어떤 문제에는 "개인적 사정을 봐줘선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른 어떤 문제에는 "그 시대에는 그랬어"라고 시대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심지어 "넓게 보면 가해자 역시 폭력적인 사회상의 피해자"라는 식으로 위대한 인문학자 행세까지 하는 것일까.
몇 해 전 필자는 특정 정당의 어느 정치인들이 30년 전 저질렀던 살인 방조 혐의 등을 지적했던 적이 있다, 그때 가해자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30년 전 과거 아니냐", "죗값을 치렀지 않느냐", "이미 사면 복권되었다", "학생운동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너는 얼마나 잘났냐"는 적반하장 식의 대응이었다.
실제로 필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그때 그들의 주장과 지금 일부 사람들의 목소리가 판박이처럼 똑같아 기가 질린다.
지금 저들이 조진웅의 케이스에 '30년 전 일인데'라고 옹호하는 모습은 마치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하려는 또 다른 몸부림 같다는 음모론적인 생각마저 들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해서 그들이 만들려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하는 상상에 침울해지기까지 한다.
답을 내리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지나간 시대가 폭력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의 이중잣대와 위선, 지긋지긋한 진영 논리가 본질에 있어서는 더 폭력적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30년 전에 어느 시인이 당시 시대상을 꼬집어 '시대의 우울'이라고 표현했는데, 지금은 시대의 우울 정도가 아니라, 세태가 암울하다는 생각에 내내 무겁고 적막하다.
이번에 조진웅 씨는 배우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우아한(?) 표현을 쓰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라는 표현조차 섬뜩하게 들린다. 대중이 바라는 것은 그런 '쿨한' 퇴장이 아닐 것이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는 것은 그의 자유일 테고, 그걸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당시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대중이 바라는 것은 누구를 향한 표현인지도 모를 "사죄"라는 단어 하나가 아니라, 그가 무언가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태도 아니었을까.
"배우가 배우로서 역할만 다하면 됐지 왜 공인의 책임까지 뒤집어써야 하는가?"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그가 그동안 '배우로서의 역할'만 했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큰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때는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며 배우의 영역을 벗어난 발언과 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사람들이, 또 다른 어느 때는 '나는 그냥 배우'라고 하면서 슬그머니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의 거품 속으로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것일까. 대중은 그 이중성에 침을 뱉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 이대로 넘어갈 순 없다"는 식의 진부한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다. 굳이 알 필요 없는 남의 사정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관음증적인 태도 역시 아니다.
지금 젊은 세대가 우리에게 "당신들 세대는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살았으면서 왜 우리에겐 이토록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냐"라고 따져 묻는 것에 조금이라도 당당해지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차제에 말하자면 이런 일만 발생하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죽었으니까 됐다(?)'는 식의 "최종적인 가해"에 대해서도 이제는 선을 그었으면 좋겠다.
'죽은 자라 할지라도 파묘를 해서라도 진실을 밝히자'는 태도로 앞장서던 사람들이, 왜 어떤 경우에는 죽음을 결백의 증거, 혹은 경감의 기준으로 삼으려 하는지 그 또한 지긋지긋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 관용적 태도가 부족한 것은 지극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왜 관용이 부족한지 되돌아보면, 그건 아마도 이런 종류의 거짓과 책임 회피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불신의 탑' 때문 아닌가 싶다.
30년 전 몽둥이조차 가로막지 못한 겁쟁이가 감히 할 말은 아니지만, 조진웅 씨에게도 권하고 싶다.
무얼 그리 부여잡고 싶은 것인가.
그가 꿋꿋하게 살기를 바라고, 여러 고민이 있겠지만, 최대한 솔직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하나의 '역할' 아닐까 싶다.
암울한 시대 속에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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