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부탁은 위증교사의 불법과 통상적 확인 및 부탁의 경계선상에 걸쳐 있을 것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얼마 전 이재명 대표의 유죄 판결에 이재명 지지자들은 육두문자를 쓰며 사법부를 매도했다.  이재명 반대 쪽은 사필귀정이자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했다.

이번 무죄판결이 나자 정반대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정의가 실현되었으며 진실을 밝혀준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는 이재명 지지측에 맞선 이재명 반대편은 "이게 나라냐, 위증 학생은 유죄고 교사는 무죄냐"고 개탄한다.

재판부가 그렇게 한심한 판결을 했나? 위증이 유죄면 위증 교사 혐의는 자동유죄인가? 이재명은 변호사다. 위증 교사의 의도가 있었어도 행위는 법망을 피할 수  있도록 전문가답게 기술적으로 했다고 봐야 한다. 

판사의 형사재판은 심증이나 예단으로 판결하는 게 정상이 아니다. '합리적 의심을 넘는' 부인할 수없는 증거주의가 원칙이다. 따라서 이재명의 모호한 부탁은 위증교사의 합리적 의심을 넘는 확고한 형식 요건을 교모히 피했다고 볼 수 있고 그가 법조인이자 유력  정치인이면 당연히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추측이 된다. 판결문은 이 점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위증은 위증교사 없이 스스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변호사인 그가 위증교사를 바보처럼 명시적으로 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그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지난번 이재명의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 공표의 유죄 판결의 법리적 논리와 근거가 판결문에 뚜렷이 제시되어 있다(이 법이 바람직한 법이 아니고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내 의견은 반복해서 제시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법리 속에서 판결이 크게 비상식적이고 비논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내 정치적 주관과 지지 진영에 부합하도록 법원이 판결해주지 않으면 판사들이 타락한 것이고 권력에 아부했고 상식이 모자란다고 한다. 상식 밖의 사람은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법치주의 가치와 원칙을 함부로 매도하는 그대들이다.

미워하고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투표를 통해 지지와 응징하면 된다. 검찰이나 사법부가 법리를 떠나 그 일을 대신 해주길 기대하는 게 후진국 증상이다.

이번 판결들이 재삼 확인해주는 것은 이것이다. "법대로 하자"는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두 판결을 지금과 정반대로 판결해도 잘못되었다고 단언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인간이 만든 법조문의 글은 불완전하고 회색 영역이 크다. 이재명의 부탁은 위증교사의 불법과 통상적 확인 및 부탁의 경계선상에 걸쳐 있을 것이다. 그래서 판사가 있다. 모든 게 분명하면 재판을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법대로 엄벌의 법가주의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든 역사는 없다. 정치와 사법의 영역이 분리될수록 선진국이다. 정치적 사안을 고소고발로 사법화하는 것은 아주 비겁한 정치다.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의 무기화를 가져온다.

털면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는 검찰공화국의 모습은 온갖 쓰레기 법들이 첩첩히 쌓여 있고 검찰이 아무나 털 수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재명사법리스크, #이재명위증교사혐의, #검찰공화국, #법대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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