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에 같이 책임지고 가자'는 건 레토릭에 불과한 거다. 설훈이 평소와는 전혀 반대되는 멘트를 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영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5선의 설훈은 이재명과는 앙숙을 넘어 견원지간이다. 동교동계인 설훈은 싸움닭처럼 이재명을 끝없이 괴롭혔다.
PK(경남 창원) 출신의 설훈은 마산고 고려대를 나와 DJ 품에 안겼다. 김태랑과 함께 PK 출신으로 ‘DJ 가신’이 된 흔치 않은 케이스로 꼽힌다.
역시 DJ의 동교동 저택 지하실을 무시로 출입한 몇 안 되는 언론인 이낙연. 같은 동교동계라 설훈은 이낙연 캠프의 맹장으로 경선에서 그를 도왔다. 화력 좋은 입심으로 대장동을 겨냥해 이재명의 급소를 거칠게 파고들었다. 경선 막판에 "구속될 사람을 여당 후보로 뽑으려느냐"고 직격탄을 퍼부었다.
그런 설훈이 21일 열린 민주당 의총에서 체포동의안 부결 쪽에 섰다. 의총이 비공개로 접어든 뒤 '3월 정국'의 향배를 읽게 할 단초가 나왔다.
"(자유토론자 2명) 모두 부결시키자는 입장이었다"(박홍근)고 브리핑했다.
그러나 액면이 아닌 ’행간‘을 살펴야 할 의미심장한 말들을 둘은 뱉아냈다.
친명계에게, 곡예를 하는 듯한 처신으로 미운털이 박힌 전재수 의원도 부결 쪽에 섰다그러나 토를 달았다.
"향후 어떤 로드맵으로 갈지, 검찰이 ‘2차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어떻게 할지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고 했다.
비명계 대표주자인 설훈도 '이번에는' 반드시 부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명계인 설 의원도 체포동의안에 대한 본인의 소신을 말했는데 크게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초선 의원)
그러나 '어려운 시기에 같이 책임지고 가자'는 건 레토릭에 불과한 거다. 설훈이 평소와는 전혀 반대되는 멘트를 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재수 의원의 로드맵 발언 직후 설훈이 한 말은 꽃 피고 새 우는 봄은 왔건만 이재명에겐 시련과 고난의 '잔인한 3월 정국'이 닥친다는 걸 시사한다.
설훈의 워딩을 찬찬히 뜯어보자.
"전재수 의원처럼 걱정할 필요 없다. 오늘 이 대표와 점심을 먹었는데 부결하고 나면 이 대표가 뭔가 '액션'을 취할 것'이라고 매듭지었다"라고 했다.
자유토론 뒤 '정진상·김용 접견 논란'이 불거졌던 친명계 정성호와 '취업 청탁'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받은 이학영이 하나마나한 신상 발언을 했다.
박범계도 “당론은 아니지만 부결하기로 총의를 모았다”고 했다.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투표로 재적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으로 가결된다. 169석인 민주당에서 이탈표가 나오지 않으면 가결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24일 한동훈이 공소장을 읽듯 가결을 촉구해본들 별 무 소용이다.
27일 본회의와 무기명 투표 결과는 아예 쳐다볼 필요조차 없다.
부결이 100% 확실하니까 말이다.
검찰이 2차, 3차로 연이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어떻게 할지가 문제다. 전재수의 로드맵 발언이나 설훈의 '뭔가 액션' 운운의 발언에 답이 있다.
이재명에게는 1차 영장에서 빼놓은 428억 약정 건과 백현동 비리 건, 김성태가 좔좔 분 방북용 대북송금 및 변호사비 대납 건 등이 줄줄이 기다린다. 다른 건들로 계속 체포동의안을 내면 민주당이 전부 부결시킬 수 있을까? 전재수의 로드맵 발언은 재명과 비명계에게는 참으로 아픈 대목이다.
‘비명계 주포‘ 설훈을 다독이려고 점심까지 먹는 이재명의 처지가 눈길을 끈다. 3월에는 선거법 재판 출석도 예정돼 있다. 거야(巨野) 대표로선 참으로 스타일 구길 일이다.게다가 2, 3차 구속영장까지 착착 기다린다.
박범계 같은 친명계는 헛소리를 하며 비명계를 안심시키려 안간힘이다.
“검사들이 정무적 판단을 한다. 특수통들은 정치를 안다고 생각한다. 건건이 몰아붙이면 균열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고마 해’라는 민심도...”(박범계)
장관 자격도 없었고, 검사의 속을 모르는 자의 망상이요 정신승리일 뿐다. 박범계는 후임 법무장관 한동훈에게 뭐라 충고까지 하며 주접을 떤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필요한 것 이상을 굳이 하지 말라. 본인도 국회에 들어올 건지 모르겠으나 다 나중에 그게 업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 술 더 떠 "본인 생각과 감정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검사처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러한 점잖은 권유를...” 운운했다.
이런 장면에서 박지원이 가만 있을 리가 없다.
'민주당이 사법리스크 방어에만 매달려 국민 지지를 못 얻는다'(21일 페북)
그는 정청래의 반대에도 이재명이 고집해 복당을 승인받은 바 있다. 힘이 쏠리는 쪽으로 오락가락해온 박지원이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도 상승과 민주당의 하락에 대한 소고’ 라는 박지원의 글은 이렇다.
“...대통령께서 그동안 전념하셨던 두 가지. 야당 탄압‧ 이재명 죽이기, 전당대회 개입‧김기현 살리기는 중단하고 협치와 민생경제, 외교안보, 대북 문제에 집중하면 국민 지지는 더 상승할 것이다."
은행 및 금융권 과다 이익 지적, 공공요금 인상 억제 등이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의 이유로 꼽힌다. 아울러 노조 연금 교육 3대 개혁 드라이브, 북 도발에 강경 대응도 반영됐을 것이다.
“관치 경제가 아닌 국민‧당사자‧전문가 등과 합의하는 개혁만이 성공한다. 반민주적, 독선적 개혁은 필히 저항에 부딪친다”고 제법 쓸만한 충고도 했다.
이런 것보다는 민주당을 겨냥한 박지원의 쓴소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
“이재명 검찰리스크, 언론의 관련 보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 늪에 빠져있다. 민주당은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도 일하는 실사구시의 DJ 민주당이라기보다는 싸움만 하고 대통령 발목 잡기만 하는 당으로 비치고 있다.”
하나마나한 얘기들 중 제법 귀를 기울이게 하는 말이 한 둘은 있을 거다.
이재명에겐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3월 하순이 잔인한 계절이다.
두번째 구속영장이 청구돼 체포동의안이 나오면 ‘꼼짝 마라’다.
방탄 조끼를 벗고 당당하게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만 할 거다. 덜컥 구속돼 영어의 몸이 돼더라도 그 길만이 당이라도 살린다. 그렇지 않으면 당도 죽고, 스스로도 골로 가는 죽음의 골짜기다.
지금 30~40명 비명계는 2차 구속영장 때는 60~70명으로 늘어날 거다. 총선 시간표가 째각째각 다가오는 데 ‘이재명 당’에 남아있을 리가 없다. 다당제를 염두에 둔 중대선거구제, 정계개편 바람이 거셀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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