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국민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길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YTN 화면 캡처
YTN 화면 캡처

세 번째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또 말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을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나는 종종 이 말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해한다.

권력이 국민으로 나온다는 소리는 듣기에는 좋지만 역사적으로 사실인 적은 별로 없다. 시민들은 종종 국가 권력에 의해 탄압받고, 시민과 동떨어진 국가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웠다. 지금도 시민의 자유에 대한 최대의 적은 국가다.

언제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왔나? 아니다. 국민이 권력자를 선택하는 민주주의가 성립되어도 권력은 선거와 별개다. 선거로 당선되는 순간 권력자들은 권력을 누리고 행사한다. 다음 선거까지 그 권력에 대해 시민과 무관하게 움직인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때, 국민이라는 말을 피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있다. 국민이란 국적만 있으면 다 국민이다. 독재자도 권력자도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으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할 때, 국민은 부패하고 부정한 권력자를 포함하는 말이다. 따라서 권력자와 구분해서 말할 때는 시민이라고 칭해야 옳다.

권력이 시민을 위해 행사하게 하려면 행정부 권력만 잘 해서는 안된다. 사법부, 입법부가 그리고 언론과 시민들이 다 함께 견제하고 기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민주주의는 매우 취약한 제도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도 권력자의 부패를 가정하고 추방제도 등을 운영했지만 부패하고 타락했고 무너졌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다고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되지도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에는 501명의 배심원이 참여했다. 현재 그 어떤 국가의 재판 배심원보다 메머드 급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소크라테스라는 철학자를 시기하는 정치인들의 선동에 의해 살해했다. 다수결 민주주의가 선동의 폭력집단이 되는 데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탄핵을 주장하며 광장으로 뛰쳐나왔던 거대한 군중이 이 나라에서 정당성이 지극히 의심스러운 탄핵이라는 정변을 만들었다. 지금도 이런 정변을 꿈꾸는 많은 세력들이 있다. 사건 사고마다 군중의 싸움으로 전환하려는 세력들이 바로 그런 세력들이다. 그들은 세월호 사건때도, 미순 효순의 미군 장갑차 사고 때도, 한미FTA 때의 광우병 선동 때도, 지금 핼러윈 사고 때도 시민을 군중화하고 있다. 바로 시민이 폭도(mob)’가 되고, 언론의 선정 선동에 놀아나는 모습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국가라는 조직이 어떤 국민에게든 권력이다. 그 권력이 시민을 위해 쓰여지는 것은 국가권력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런 권력자를 갖는 것은 예외적으로 행운일 때이다. 대부분은 시민이 권력을 감시하고 제어할 때만이 권력이 괴수(怪獸)’가 되지 않는다.

권력은 국민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길들여야 하는 것이다. 김재동 수준의 수사(修辭)로 권력의 정체를 호도하면 안된다. 우리 시민의 많은 수가 이재명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가 권력을 괴수화할 수 있는 선동가이자 권력을 위해서는 어떤 편법도 피하지 않을 권력의 화신이라는 의심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인이 자아성찰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김제동 수준의 헌법학 강의를 오늘도 듣는 괴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권력은 권력자의 전유물이다.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 되는 길은 이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할 때이다. 이 나라에는 국민과 시민을 구분하지 않는 미몽이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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