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서산 야서해(野鼠山 野鼠海) – 3
서명원 신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그렇다면 들쥐들을 이겨내려면 다차원에서 그들의 생활방식을 잘 이해해야만 된다.
일단 “들쥐들이 없었는데… 왜 어느새 생겼을까?” 하는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잘 생각해 보면 지난 가을에 집 후문 근처에 닭장을 한 채를 지었을 때부터인 것 같다. 초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들쥐들은 닭들이 먹는 모이와 음식 찌꺼기를 먹기 위에서 오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에서는 닭장이란 '무료 식당'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김한래라는 농부가, 필자가 닭을 키우기 시작했을 무렵 "닭장이 있는 곳에는 쥐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들을 잡아주는 고양이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걸 이제야 기억한다.
둘째 물음은 “들쥐들이 왜 한달쯤 전부터 갑자기 어느 날 패널의 단열재 안에서 스티로폼 가루를 날리면서 막 파고들기 시작했을까?”이다.
그 전까지는 벽 안에 머물면서도 그러한 피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공존하는 데에 문제가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오늘 밤만 해도 우리 산골에서 온도가 영하 25°로 떨어질 거라는 예보를 염두에 두면, 난방시설이 없더라도 더 따뜻한 거주지가 필요한 쥐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들쥐들이 털옷을 입고 월동하지만, 그 옷이 두껍긴 해도 뼈 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버티는 데에는 부족할 수도 있다.
핵심을 찔러서 말하자면 들쥐들이 우리 공동체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된 이유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생존권을 유지하려면 전부 다 해결해야만 하는 자기의 의식주(衣食住) 문제 때문일 것이다.
닭장과 집의 거리가 좀 더 멀었다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거리가 떨어지면 하루에 몇 번씩 해야 되는 닭장 관리가 부담스러워질 것이 확실하다. 또한 닭장이 집과 가까워야 족제비들이 들락날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들쥐들을 없애는 무기를 선택해야 한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정말 잔인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끈끈이’. 근처 읍내인 양동면 농협자재센터에 가서 몇 판을 구입해서, 맛있는 소시지 미끼로 덮어 놓고 난 다음에, 들고양이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영업용 고추건조기 밑에 두 판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겨울 한창이니까 혹시 끈끈이의 접착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자 지구에서 온 유학생 살레가 “그래도 해보자”고 과감하게 말했다.
그 다음날 이른 아침에 명상하기도 전에 귀찮은 들쥐들이 잡혔으리라는 희망 찬 마음으로 건조기에 가서 밑을 보니까, 끈끈이 판이 하나도 안 보여서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판들이 어디에 있을까, 하면서 건조기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아직 몸이 따뜻했지만 죽은 뱁새 한 마리가 붙어 있는 판 하나가 건조기로부터 1미터쯤 못 미친 바닥에 떨어진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게 웬일이냐? 궁금하면서 다른 판이 어디에 있을까 찾다가, 기계와 2미터쯤 떨어진 곳에 몸이 아직 미지근할 정도로 죽은 지 얼마 안 된 뱁새 두 마리가 붙은 두번째 판을 찾아냈다. 이게 웬일이지? 가슴이 찢어졌다.
천천히 생각해 보니까 밤중에 들쥐들이 끈끈이에 붙었겠지만, 냉기 때문에 접착성이 약화된 덫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버둥거리다가 판 위치를 건조기 밖으로 끌어냈을 것이다. 이른 아침에 미끼로 남아있는 소시지를 보고 추운 것만큼 배고픈 뱁새들이 쪼으러 왔을 거고. 새들도 들쥐들처럼 붙어버렸지만 그들만큼 힘이 강하지 못해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생각하기 끔찍한 것은 들고양이 한 마리나 두 마리가 와서 끈끈이에 붙은 채 자기 방어를 도저히 하지 못하는 뱁새들을 죽도록 괴롭혔을 장면이다.
철새가 아니니까 1년 내내 함께 사는 너무나 귀여운 뱁새들이 이토록 억울하게 죽은 것을 보고 가슴이 어찌나 아픈지 이루 말할 수 없다. 들쥐들과 전쟁하다가 본의 아니게 이토록 안타까운 결과를 일으킨 필자 스스로 어떻게 보속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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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쥐들 산골살이신부캐나다 출신의 예수회 신부. 본명은 베르나르 스네칼. 캐나다 퀘벡주(州)의 의사 집안 출생. 프랑스 보르도 의대 재학 중 예수회에 입문. 1984년 한국에 파견된 뒤 불교 공부에 심취.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불교 강의. 현재 '도전돌밭공동체' 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