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뚝이며 만난 능수홍매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발목을 다친 지 오늘로 열흘이 넘었다. 그 사이 정형외과와 한방의원을 번갈아 다니고 있다. 내 발목 하나를 두고 양방과 한방의 협진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인데, 거기에 더해 대체의학과 민간요법까지 총동원된 형국이다.
페이스북과 카톡으로 내 발목 부상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들이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치료에 좋다며 죽염홍화환이나 연고, 어혈을 푸는 약 등을 보내오기도 했다. 눈 쌓인 산에서 받은 고로쇠라며 뼈에 좋다고 보내준 이도 있고, 서해안 키조개 관자를 보양식이라며 보내준 이도 있었다. 바깥 나들이가 어려울 테니 당분간 집에 있을 동안에 차분히 읽으라며 두꺼운 책을 보내오기도 했는데, 이 모든 분들에게 다시 감사를 전한다.
생각해 보면 고작 발목을 삔 일을 두고 이리 부산을 떠는 것이 겸연쩍기도 하다. 그러나 온 사방에서 다투어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데, 그 꽃들을 마중하러 나가지 못하고 이리 꼼짝없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내게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이렇게 봄을 맞아본 적이 처음이지 싶다.
다행히 발목뼈에는 별 이상이 없는 것 같고 통증도 많이 사라졌지만, 부기와 멍은 여전히여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필자도 한때 몸과 건강법에 대해 나름의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스스로의 몸을 돌보는 일이 몸으로 살아가는 이번 생에서 가장 우선하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건강법을 사회운동의 과제로 삼기도 했고, 녹색대학을 만들 때 대학원 과정에 자연의학과를 개설하기도 했다.
그런 이력 때문인지 병원 진료, 이른바 서양의학에 대한 신뢰는 늘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웬만하면 병원이나 약을 멀리하며 지내왔다. 그러나 발목 부상을 당하고 보니 어쩔 수 없이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일주일에 두 번씩 진료를 받으며 처방약을 먹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거의 날마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사혈요법도 병행한다. 그러나 아직도 양방에선 한방치료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다.
이번에 한의원을 자주 찾게 된 것은 양방에서는 물리치료 외에 별다른 방도가 없지만, 한방에서는 침과 사혈요법 등 직접적인 시술을 하기 때문이다. 마침 숲마루재 공부 모임 도반들과 함께 읽고 있는 책《파동의학》에서 경락 체계와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등 우리 몸의 미세에너지체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던 중이라 침술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가 발목 치료에 유난히 마음을 쓰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4월로 예정된 돌로미티 트레킹 때문이다. 마감 이후 뒤늦게 신청한 터라 여행 비용을 돌려받기도 어렵게 되었고, 아내 정원 님은 여행에 문제가 없으니 트레킹을 하지 못하더라도 보행만 가능하면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는 여행학교의 권유를 따르기로 한 까닭이다. 그래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안에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도록 치료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정원님은 필자가 엄살이 심하다고 한다. 남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면서도 혼자 있을 때는 끙끙 앓는다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이런 모습을 ‘허들(호들갑)’이 심하다고 말한다. 작은 일을 괜히 크게 만들어 소란스럽게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아픔을 잘 참지 못하는 편이다. 그것은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뿐 아니라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나 찢긴 나뭇가지를 보아도 마음 한구석이 욱신거리곤 한다. 어쩌면 그래서 작은 통증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발목 부상의 경험은 남은 삶에서 내 몸을 어떻게 대하고 돌보아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몸은 늘 내 곁에 있었지만, 이렇게 잠시 멈추어 서야 비로소 그 고마움을 깨닫게 된다.
오늘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돌아와 앞마당에 피어 있는 능수홍매 앞에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 그 꽃과 마주했다. 겨울 끝자락의 찬 기운 속에서도 붉게 피어난 그 꽃이 마치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선다는 것.
두 발로 걸어가 꽃을 마중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일인지 새삼 마음 깊이 스며든다.
지금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도, 병상에서 아픔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도 이 봄의 생기와 신명이 함께 닿기를 빈다.
언젠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꽃과 마주할 수 있기를 마음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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