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매화숲을 돌보던 박정열 씨는 투병 끝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부인 배덕임 씨와 가족들이 그 뜻을 이어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4일, 진주에 있는 매화숲에 다녀왔다. 무릉도원이 아니라 '무릉매원'이었다.
여태껏 내가 보고 만난 매화 정원이나 농원 가운데 이처럼 다양한 매화가 어우러져 하나의 눈부신 숲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싶다.
꿈속의 무릉도원이 아니라, 이른 봄 속을 걷는 꿈길 같은 무릉매원이었다.
이 매화숲은 경남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에 있는 개인 사유지로 조경가 일간(一看) 박정열 씨와 부인 배덕임 씨가 오랜 세월 정성으로 가꾸어 온 곳이다.
이 숲의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주 혁신도시가 조성되던 당시 버려지게 된 매화나무들을 안타깝게 여겨 서른 그루 남짓 옮겨 심은 것이 그 출발이었다고 한다. 그 후 약 14~15년 동안 전국의 희귀 수종을 모아 조성되었으며, 버려지던 나무들을 살려낸 그 작은 손길이 씨앗이 되어 세월을 지나 지금은 약 1만 5천 평 부지에 1만 그루가 넘는 매화나무가 어우러진 숲이 되었다.
홍매, 청매, 백매, 분홍매, 수양매, 운룡매 등 쉰 종이 넘는 매화들이 서로 다른 빛깔과 향기로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어울려 하나의 눈부신 숲을 이루고 있었다.
대개 정원이나 공원이 아닌 곳에 심어진 매화나무들은 대부분 꽃을 보기 위해라기보다는 그 과실인 매실(梅實)을 얻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매화꽃으로 이름난 섬진강변의 광양이나 하동의 대규모 매화나무들도 매화밭이 아니라 매실밭이고 매실농원인 것은 이런 까닭이다.
그런데 이곳을 매화숲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곳의 만여 그루가 넘는 매화나무가 모두 매실이 아니라 꽃과 그 향기만을 위해 심고 가꾸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매화원, 매화 동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매화숲을 걷으며 삭막했던 겨울 끝에서 수십 종의 매화가 저마다의 자태와 색깔과 향기를 다투며 피어내는 그 신기루 같고 꿈결 같은 아름다움에 감탄하다가, 이어 드는 한 생각은 이렇게 눈부신 매화숲을 일구어 온 그 마음과 손길에 대한 감사였다.
이 숲이 놀라운 것은 그 넓은 규모와 다양한 매화로 빚어내는 황홀한 풍경 때문만이 아니라, 오히려 이 매화숲을 만든 사람의 마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숲을 일군 박정열 씨와 배덕임 씨. 박정열 씨 부부는 매화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 아린 향기에 매료되어 평생의 재산을 들여 이 숲을 가꾸었다고 한다.
매화숲을 인생 정원으로 삼았던 이 부부는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그저 매화로 열어가는 봄의 아름다움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숲을 가꾸고 사람들에게 개방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 평생 매화숲을 돌보던 박정열 씨는 투병 끝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부인 배덕임 씨와 가족들이 그 뜻을 이어 숲을 가꾸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방문객들의 훼손 문제로 한동안 문을 닫았던 매화숲을 다시 정성껏 가꾸어 올해(2026년) 이른 봄 다시 사람들에게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제 내가 본 그 매화숲은 단지 아름다운 꽃밭이 아니라 한 사람의 꿈과 한 가족의 사랑이 세월 속에서 자라 이루어진 봄의 숲이었다.
분재나 정원이 아닌 드넓은 동산에서 다양한 종류의 매화가 서로 어울려 숱한 색깔과 자태와 향기를 빚어내는 그 황홀감에 빠져 있다가, 이런 아름다움을 이리 거저 나누어 주신 이 숲을 만든 사람의 마음이 가슴 깊이 느껴졌다.
버려지던 나무들을 살려 수천 그루의 숲으로 키워낸 마음. 아마도 그 마음은 가장 추운 겨울을 견디고 가장 먼저 봄을 여는 매화의 마음과 닮아 있었을 것이라 싶었다.
이른 봄 진주의 야트막한 동산 언덕 위에 무릉도원보다 더 설레는 매화숲을 열어 주신 배덕임 여사와 가족들에게 다시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어쩌면 봄은 계절이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봄을 품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먼저 피어 마침내 숲이 되고 꽃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매화 한 그루를 사랑한 마음이 세월을 지나 숲이 되고, 그 숲이 다시 사람들의 가슴에 봄을 피워 올리고 있는 것이라 싶었다.
내 마음 속으로 무릉매원이라 이름 지은 이 매화숲은 아마도 십수 년의 세월이 지나면 이곳 진주만이 아니라 매화원으로서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리라 싶다.
매화를 사랑하고 그 사랑에 헌신한 그 마음과 손길이 이 지상에 빚은 보시, 그 크신 공덕 앞에 두 손을 모은다.
이른 봄마다 내 마음 속 무릉매원(武陵梅源)의 꽃과 향기는 더 짙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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