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떠오른 옛 풍경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사진 이병철 시인
사진 이병철 시인

3일, 정월 대보름, 내 생애 첫 대보름날의 개기월식을 보았다.

월식은 태양과 지구와 달이 일직선에 놓일 때, 지구가 태양빛을 가리면서 그 그림자가 달을 삼키는 현상이라고 한다.

보름달은 본래 풍요와 충만의 상징이지만, 정월 대보름달의 의미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 정월 대보름달이 어둠 속에 들어갔다 다시 밝아오는 것을 보며, 옛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태양과 지구와 달. 우리의 생존을 좌우하는 이 세 개의 별이 정확히 줄을 맞추는 순간에만 일어나는 월식은, 생각할수록 드문 일이라 싶다.

정월 대보름날의 월식을 본 것은 내 기억으로는 처음인 듯하다.

어쩌면 이런 광경을 이번 생에서 다시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태양과 지구와 달, 그리고 가름할 수 없는 이 우주. 그 거대한 운행 속에서 문득 한 존재와 그 한 생의 의미를 생각한다.

대보름날,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먹고 귀밝이술을 마시고 부럼은 깼지만, 지신밟기도 달집태우기도 하지 못했다.

이제 정월 대보름의 이런 세시풍속도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한 해의 풍년과 안택을 빌며 마을 집집마다를 돌며 지신밟기하고 걸립을 하던 그 풍경은 다시는 찾아보기 어려울 듯하다.

마을 들머리 얕은 언덕 숲 가운데 자리한 둥근 빈터. 동쪽을 향해 달문을 낸 달집을 지어 놓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누군가 희미하게 떠오르는 달을 먼저 보고

“달 떴다!” 하고 외치면

그 순간 달집에 불이 붙었다.

불길이 솟아오르면 모두 환호하며 입고 있던 옷의 동전깃이나 소원지 등을 불길 속에 함께 사르고 달집 주위를 돌았다.

풍물 소리에 맞추어 불길이 사그라질 때까지 춤추며 뛰놀았다.

문득 그 달집 태우는 풍경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불콰하신 얼굴로 함께 풍물의 장단에 따라 덩실 덩실 춤을 추시고

어머니는 달을 보며 두 손을 비비며 치성을 올리셨다.

어머니의 그 기원은 무엇이었을까.

집안에 우환이 없기를, 자식들이 잘 되기를. 그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기원이었으리라.

풍물소리와 함께 붉은 불꽃이 밤하늘로 치솟던 그 자리에서

잊고 있던 내 어린 시절의 정월 대보름도 함께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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