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집에 불이 붙고 얼마 안 지나 다다닥거리는 굉음과 함께 화염이 날름거리며 치솟자, 인파들은 놀라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화염으로 추위는 다 날아갔다

어젯밤 강원도 양양군 후진항(港)에서 ‘달집태우기’ 행사가 있었다. 나는 양양에 머물고 있었기에 지나가다 읍내에 매달아 놓은 현수막을 보고 알았다.
명색이 지방 출신이지만 이 나이 되도록 ‘달집태우기’는 본 적이 없었다. 옛날 옛적에 외갓집이 있는 촌의 들판에서 깡통 돌리는 ‘쥐불놀이’는 구경했고, 직접 돌려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저녁이 되니 찬바람이 불어 망설였지만, 서울도 아니고 양양에 머물면서 안 가보는 것은 업무 태만(?) 같았다. 후진항 근처로 접근하자 도로에 차량이 밀렸다. 평소 한적한 이 항구에서 그런 행사를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면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인파가 몰려든 것이다. 엄청나게 넓은 해안 공터가 차량으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그럴 듯한 구경거리나 맛집이 있으면 어디서든 다 알아서 찾아오는 세상이 됐다.
달집태우기 본행사에 앞서, 해안 백사장에서 30분간 농악 놀이와 제례(祭禮) 절차가 있었다. 구경 온 사람들은 주로 젊은 세대였고, 이들에게는 “향” “배” 같이 무슨 말인지 모를 제례는 딴나라 세계였을 것이다. 정월대보름 제사를 ‘유도회(儒道會)’가 주관했다는 사회자의 설명에는, 아마도 무술 ‘유도(柔道)’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구경꾼들은 달집태우기를 보기 위헤 사전 행사 30분을 참고 기다렸다. 마침내 6시30분 본행사 시작을 알렸다.
그런데...축사가 있었다. 후진항이 속한 행정구역인 강현면장(長)이 먼저 단상에서 인삿말을 했다. 주인을 대표해 면장은 충분히 발언할 자격이 있었다. 구경꾼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면장의 인사말만 끝나면 달집태우기를 할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으로 김진하 양양군수가 축사를 하러 단상에 올랐다. 그도 행사 예산을 대줬으니 발언할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구경꾼들은 술렁댔다. 내 옆에 있는 젊은 주부들의 입에서 “에이, 뭐야”라고 투덜대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들은 팔짝팔짝 뛰었다. 날이 추워서 기다리는 게 더 힘들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양양군수의 축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입법부 수장인 양양군의회 의장이 단상에 올라왔다. 따져보면 그도 행사 예산을 통과시켜줬으니 그럴 자격이 있었다. 젊은 주부들은 노골적으로 “양양이 왜 이래”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군의회 의장의 축사가 끝나면 다 끝날 줄 알았을 것이다. 천만에, 이번에는 사회자가 여기 지역구 국회의원(이양수)이 보내온 축사를 대독했다. 사람들의 입에서 욕 같은 단어가 나왔다. 이양수 의원이 여기에 와봤으면 뻔한 축사 따위를 보내 대독시키는 게 얼마나 군중의 분노를 부르는지 알았을텐데.

그런 축사 절차가 끝나고, 드디어 ‘달집태우기’에 들어갔다. 이미 대나무와 잔솔가지, 볏짚 등으로 만든 달집에 기름까지 충분히 부어놓았기에, 햇불을 대는 순간 금방 불이 붙었다.
달집태우기 전까지만 해도 구경인파에게 “더 뒤로 물러서라”고 해도 다들 인색하게 한두걸음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달집에 불이 붙고 얼마 안 지나 다다닥거리는 굉음과 함께 화염이 날름거리며 치솟자, 인파들은 놀라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화염으로 추위는 다 날아갔다. 독자 여러분의 액운까지 태워버렸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