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간이나 내장을 날로 또는 덜 익혀 먹어 감염
[최보식의언론=채종일 메디피스 이사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돼지 간이나 내장을 날로 또는 덜 익혀 먹어 감염되는 아시아조충은 1993년 고려의대 고 임한종 명예교수, 충북의대 엄기선 명예교수 등 한국 학자들에 의해 신종으로 제창되었다.
그런데 사실상 1993년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진단된 무구조충은 상당 부분이 아시아조충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시아조충이 형태학적으로 무구조충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사람에서 나온 조충이 대부분 무구조충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제주도의 소(牛)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낭미충(무구낭미충) 감염을 거의 볼 수 없어 서로 맞지 않는데 이는 커다란 수수께끼였다. 제주도에서는 돼지에게 사람의 분변을 먹여 키우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구조충 감염자는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가 명확해진 것이다. 감염자들이 대부분 돼지 근육뿐만 아니라 간과 내장을 먹었고 아시아조충에 감염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조충(Taenia asiatica)은 성충과 충란 모두가 감별할 수 없을 정도로 같다. 성충의 두절(頭節; scolex) 중앙부에 약간 돌출되어 나온 부리 또는 액취(rostellum)가 있으면 아시아조충, 없으면 무구조충으로 가까스로 감별한다. 유전자 검사로는 명백히 다르게 나타난다.
필자는 1982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주민들의 장내 기생충 감염에 대해 조사한 일이 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간흡충 충란 양성이었고 상당수는 테니아조충 충란 양성이었다. 얼마 후 서울대 의대 연구팀이 소록도에 가서 테니아조충 감염자들에게 비치오놀(bithionol)을 투여한 후 성충을 얻었고 이들을 모두 무구조충으로 진단하였다.
이때는 아시아조충이 나오기 전이어서 당연한 진단이었고, 다른 진단명을 붙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충체들은 모두가 아시아조충이었음이 틀림없다. 더구나 소록도 마을에는 소가 전혀 없었고 돼지만 키우고 있었다. 충체들이 아시아조충이었음을 강력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대만에서는 아시아조충의 존재가 오래전부터 의심되고 있었다. 특히, 대만의 고산족(원주민) 마을에서는 돼지 간을 날로 먹는 관습이 오래 계속되어왔는데(고산족 마을에서 소는 키우지 않았다고 함) 배출된 테니아 충체를 보면 무구조충으로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커다란 수수께끼였다고 한다.
대만 국립양명의학원의 고(故) Fan P.C. 교수는 이런 수수께끼에 착안하여 1982-1986년에 이 충체들이 무구조충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일 가능성을 강력히 제기하였다. 그래서 1987년부터 '타이완 테니아'라는 이름으로 이 충체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음이 알려졌고, 인도네시아에서도 같은 현상이 관찰되어 이름을 다시 '아시안 테니아'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한편, 자신의 논문 몇 편에서는 충체 이름을 Taenia saginata-like tapeworm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Fan 교수는 여러 이름 사용으로 혼란만 주고 있었고 과감히 신종으로 발표할 용기까지는 갖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대 의대의 고(故) 임한종 명예교수 등 한국 기생충학자들은 Fan 교수에게 이 기생충을 완전히 신종으로 하여 함께 발표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고민을 거듭하던 임한종 명예교수와 엄기선 명예교수는 이렇게만 계속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점차 굳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시아조충(Taenia asiatica Eom and Rim, 1993)이라는 이름으로 과감히 신종으로 보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리 Fan 교수에게 이 신종 논문에 대해 공동 저자로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으나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대신 Fan 교수는 2년 후(1995년) 이 기생충의 이름을 또 다시 Taenia saginata asiatica, 즉 무구조충의 아종(亞種)으로 발표함으로써 학명 논란에 또 다시 불을 지피게 되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Taenia asiatica로 결론 나게 되었다는 점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하였다.
결국 1993년부터 아시아조충은 인체 기생 3대 테니아조충(Taenia spp.)의 하나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기생충학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게 된 쾌거 중의 쾌거였다.
현재 아시아조충의 존재가 확인된 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라오스,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이다.
아시아조충이 신종으로 제창된 후에도 처음 10~15년 동안은 무구조충(Taenia saginata)의 아종(亞種; subspecies) 정도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다양한 유전자 분석법 등을 통해 완전한 독립종임이 확인되었다(엄기선 등, 2020). 특히, 조충 분류학의 대가인 미국의 Hoberg E.P. 박사는 2006년에 발표한 종설 논문에서 아시아조충은 명백한 독립종이며 무구조충과는 가까운 근연관계이고 사촌 간 정도(sister species)에 해당한다는 점을 밝혔다.
인체 기생 테니아조충 3가지는 중간숙주와 기생부위가 각각 특이하다. 아시아조충은 돼지를 중간숙주로 하되 주로 간과 대망(omentum), 장간막 등 내장 조직에 유충인 낭미충(cysticercus)이 분포하며, 무구조충은 소가 중간숙주 역할을 하고 근육에 낭미충이 주로 분포한다. 유구조충(Taenia solium)은 돼지가 중간숙주 역할을 하며 근육에서 낭미충이 발견된다. 그러나 1993년 이전에는 무구조충과 유구조충 두 종만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유행지 역학조사 자료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현상들이 비일비재하였다.
아시아조충을 신종으로 발표한 후 신바람이 난 엄기선 교수는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우선, 돼지에서 아시아조충 낭미충의 기생 부위가 간뿐만 아니라 대망, 폐, 장벽 등 내장 조직에 다양하게 분포하나 근육에는 전혀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하였다. 두 번째는 돼지 간 및 내장에서 얻은 낭미충을 자신이 스스로 삼킨 다음 성충으로 발육하는지에 대해 인체실험을 진행하였다.
감염 2년 후 니클로사마이드(niclosamide)를 복용한 후 감염을 종료했는데 회수된 충체는 아시아조충의 성충이 확실하였다. 감염 후 메스꺼움, 설사, 복통 등 소화기 증상이 나타났지만 다행히 그 외에 특별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엄기선 교수는 이 인체실험을 견딜 만했다고 회고하였다. 만일 뇌에 감염을 일으키는 유구조충이었다면 이런 실험을 결코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아시아조충의 유전자 분석, 항원 단백 분석, 혈청검사법 개발, 계통 분류 연구,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의 역학조사 등등 많은 연구를 수행하였고 이런 업적들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유명 종설 학술지 Advances in Parasitology에 논문 초빙을 받았고, 아시아조충에 대해 집대성한 종설 논문을 2020년에 발표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기생충학 연구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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