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일 기생충썰] 단일 질환으로는 사망 원인 1위, 말라리아의 역사
[최보식의언론=채종일 메디피스 이사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김선래 기자]

A씨가 한겨울에 갑작스러운 고열로 쓰러졌다. 독감 검사는 음성이었고, 해열제를 복용했지만 열 증상은 반복됐다.
의사가 물었다. “올해 해외에 다녀오신 적 있나요?” 그는 지난 여름이 끝나 갈 무렵 동남아 출장을 다녀왔다고 답했다. 당시 출장지의 야외 식당에서 모기에 몇 번 물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가을 내내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 잊고 지냈다.
그런데 그때 모기를 통해 말라리아가 몸 속으로 들어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잠복기를 거쳐 면역력이 떨어진 겨울에 말라리아가 나타난 이유였다.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말라리아는 삼일열 말라리아(vivax malaria), 사일열 말라리아(malariae malaria), 열대열 말라리아(falciparum malaria), 난형열 말라리아(ovale malaria), 그리고 원숭이열 말라리아(knowlesi malaria)로 모두 5종이다. 세계적으로는 치사율이 매우 높은 열대열 말라리아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열대열 말라리아는 없고 삼일열 말라리아만 휴전선 부근에서 작은 유행을 보이고 있다.
인류에 병을 일으키는 수많은 병원체 중 상당수가 멸종의 길을 갔지만 말라리아 원충은 지독히 오래 살아남아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지금도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를 중심으로 매년 2억 명이 넘는 인구를 감염시키고 있으며 매년 6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단일 질환으로는 사망 원인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좀체 그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말라리아 예방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에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태국 등의 수많은 젊은 학자들이 줄지어 말라리아 백신 연구대열에 참여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말라리아 백신 개발은 결코 쉽지 않은 인류의 소망 중 하나다.
말라리아는 인류(人類, human 또는 hominid)의 오랜 질환으로 20만~30만 년의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다. 아니, 인류가 발생하기 훨씬 전인 전인류(前人類; prehominid) 시절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인류는 사람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250-400만 년 전)에서 시작하여 호모하빌리스, 호모이렉투스, 호모하이델베르겐시스 등으로 진화했고, 드디어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와 인간(호모사피엔스)으로 분화하였다.
네안데르탈인은 인간과 가장 닮은 사촌 간으로 보고 있고, 인간과 교배하여 혼혈종이 태어나기도 했다. 매개체인 모기는 인류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물었을 것이며 그때부터 이미 말라리아(지금의 인체 감염 말라리아와는 다른 종)가 전파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의 말라리아 5종 중 4종은 아프리카의 영장류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열대열 말라리아는 아프리카 고릴라에서 약 5만 년 전에 분화한 것으로 추정하며, 삼일열 말라리아는 아프리카 또는 아시아의 침팬지, 피그미침팬지 또는 고릴라에서 22만~46만 년 전에 인류로 넘어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삼일열 말라리아가 열대열 말라리아에 비해 임상적 경과가 순한 편이고 인간에게 잘 적응하여 심한 병을 일으키지 않는 반면, 열대열 말라리아는 훨씬 늦게 인체 감염 종으로 분화한 것이라 아직 인간에게 덜 적응되었다는 이유로 사람의 치사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한다. 사일열 말라리아와 난형열 말라리아도 아프리카의 침팬지, 피그미침팬지 또는 고릴라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원숭이열 말라리아는 동남아시아(말레이시아 등)의 짧은꼬리원숭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인류의 질환으로 자리 잡게 된 말라리아는 인류 이동과 함께 아프리카를 벗어나 가장 먼저 지중해와 중동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터키), 이집트 등 여러 지역에 커다란 유행지를 형성하였고 곧이어 유럽 전역과 인도 등지로 전파되었다.
인도로 전파된 말라리아는 동쪽 및 동남쪽으로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로 전파되었고, 이와는 반대로 서쪽으로도 이동하여 유럽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있다. 특히, 열대열 말라리아는 약 5,000년 전까지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그 후 서서히 유럽을 중심으로 급격한 유행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기원전 753년 로마가 건국된 후 멸망할 때까지(동로마 멸망 1453년) 엄청난 유행을 보였고(로마 멸망이 말라리아 유행과 관련 있다는 설도 있음), 그 후에도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대단한 유행을 보였다.
얼마나 말라리아가 심각했으면 “말라리아가 창궐하면 르네상스 문명이 쇠퇴하고 말라리아가 소강상태에 이르면 르네상스 문명은 꽃이 핀다’고 했겠는가? 유럽에 말라리아 유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1930~1940년대 이후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미대륙을 발견하기까지는 미대륙에 말라리아가 없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특히, 열대열 말라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에 의해 주로 전파되었고, 스페인의 정복자들, 그리고 일부 유럽인들에 의해 전파되기도 했다. 다만, 삼일열 말라리아 중 일부는 콜럼버스 이전에(예를 들어 서기 1000년경) 멜라네시아 군도 등 동남아시아에서 태평양을 횡단하여 남미 지역에 도착한 일부 뱃사람들에 의해 처음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지금도 말라리아 약제로 쓰고 있는 키니네(quinine)는 페루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 이야기가 흥미롭다. 당시 페루에 파견된 스페인 총통의 부인 Cinchon이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하고 있던 중 원주민 하녀가 인근 지역에서 약초를 캐 와서 달여 먹인 결과 말라리아가 쉽게 나았던 것이다(1638년). 이 사실은 이듬해(1639년)에 스페인에 알려졌고 곧바로 유럽 전역에 파급되었다.
이 약초에는 키니네 성분(Cinchona alkaloid)이 들어 있는데 혈액 내에 있는 말라리아 충체는 물론, 뇌를 침범한 충체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약제로부터 클로로퀸(chloroquine)과 메플로퀸(mefloquine)이 화학적으로 합성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클로로퀸 내성 충주(蟲株; strain)가 등장함에 따라 이를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약제 아르테미신(artemisine)과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e)이 개발되었고, 이를 처음 연구 개발한 중국 학자가 2015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미국은 현재 해외에서 감염되어 들어오는 수입성 말라리아 환자가 조금 있긴 하지만 모기에 의한 자연계에서의 유행은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한동안 말라리아가 크게 기승을 부린 일이 있었다. 특히, 15-17세기에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로부터 병원성이 강한 말라리아가 전파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캐롤리나주와 플로리다주를 중심으로 유행이 있었으나 점차 서쪽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까지 습지(모기 발생이 쉬운 지역)를 중심으로 넓은 유행지를 형성하였다.
흑인들에서부터 백인들, 그리고 인디언들에게까지 말라리아가 전파되었고 특히, 남북전쟁(1776년) 동안에는 조지아주에서 펜실베이니아주까지 말라리아가 크게 창궐했고 서쪽으로 뉴올리언스, 루이지아나, 텍사스까지 전파되었다.
1850년에는 미국 동부 끝에서 서부 끝에 이르는 거의 모든 지역이 말라리아 유행지로 편입되었고, 1850~1899년은 미국에서 말라리아가 가장 높은 유행을 보인 시기가 되었다(Faust 1951). 그러나 1900~1920년에 들어와 말라리아 유병율과 치사율은 괄목할 만큼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 후 증가와 감소가 계속 반복되다가 1942~1945년 이후부터는 뚜렷한 감소가 관찰되기 시작했다.
영국도 말라리아로 몸살을 앓은 나라 중 하나다. 영국에 말라리아가 처음 유행한 것은 서기 1~5세기 로마의 통치를 받던 시절부터였다. 날씨가 선선한 편이라 온대 지방에 주로 유행하는 삼일열 말라리아가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말라리아 유행이 영국 전체에서 피크를 이룬 것은 중세 이후(16세기)였다. 영국에서는 심한 열병을 “ague”라고 불렀는데(우리말 ‘아이구’와 비슷하다) 이들 열병 중 상당한 부분을 말라리아가 차지했을 것이라 한다.
앵글로-색슨 시대(서기 410-1050년)에 사망한 사람들 5,802명의 골격과 뼈를 조사하여 빈혈을 일으킨 빈도를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 말라리아성 빈혈로 인해 안와 골다공증(cribra orbitalia)과 치아 에나멜 조형성(enamel hypoplasia) 등의 소견을 보였다고 한다(Gowland and Western 2012). 유행지는 주로 영국 동부 지역이었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모기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말라리아가 영국을 포함한 북쪽 지역으로 점차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기원전 1세기부터 서기 668년)에 이미 말라리아가 유행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역사적 자료를 찾기는 어렵다. 1152년 고려 의종 시절부터 말라리아 유행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며 조선시대에도 1420년 세종 시절 대비마마와 양녕대군이 학질(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필자가 1999년에 논문으로 발표한 것처럼, 1526년 선조 시절에는 경상도에서 말라리아의 고도 유행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현재는 강화도와 옹진군, 파주 등지에 삼일열 말라리아의 유행이 계속되고 있으며, 모기 밀도도 계속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요즈음 우리나라가 아열대화되어 치사율 높은 열대열 말라리아가 유행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가져본다.

cjy@snu.ac.kr
#말라리아 #겨울고열주의 #해외여행감염병 #메디피스이사장 #의료NGO #기부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