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쿼트 10개를 할 수 있는 허벅지 근육을 모으는 것이 중요
[최보식의언론=김선래 기자]

카카오톡을 통해서 퍼지던 '좋은 글'이 블로그로 확산되더니 요즘엔 SNS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핵심 메시지를 바탕으로 조금씩 편집하거나 각색된 글이 공유되기도 한다. 아래 글은 박승준 강호논객(자영업자)이 페이스북에 공유한 버전이다. (편집자)
'나는 끝까지 내 발로 걸었다.'
이 문장이 가진 무게는 젊을 때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20대, 30대에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오르고, 40대, 50대에는 여전히 등산을 다니며 “아직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70대를 넘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장실 가는 것, 현관문 여는 것,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이 모든 게 협상의 대상이 된다.
젊을 때 우리는 성취, 돈, 평판을 위해 달렸다. 승진, 연봉, 사회적 지위가 삶의 척도였다. 밤을 새워 일했고, 건강은 담보로 맡겼다.“나중에 쉬면 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나중이 왔을 때 쉬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노년에는 정작 아주 작은 것들이 삶의 질을 가른다. 스스로 양말을 신을 수 있는가? 혼자 목욕을 할 수 있는가? 손자를 보러 버스를 탈 수 있는가?
이런 질문 앞에서 과거의 직함이나 통장 잔고는 무력해진다. 걷기, 일어서기, 계단 오르기. 이런 단순한 동작이 무너지는 순간, 삶 전체가 흔들린다.
처음에는 “오늘따라 좀 힘드네”로 시작한다. 그러다 지팡이를 짚게 되고, 이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다.결국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날이 온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기본 체력은 노후의 독립성과 자존심을 지키는 최소 조건이었다는 것을~!
돈이 많아도 이 능력을 잃으면 생활의 자유 대부분을 잃게 된다. 24시간 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어도, 스스로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욕구는 돈으로 살 수 없다.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순간마다 자존감은 조금씩 깎여 나간다.
70이후의 행복은 큰 재산이나 화려한 조건이 아니라 기본 체력에서 나온다.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것. 근처 공원까지 걸어가 벤치에 앉을 수 있는 것. 친구를 만나러 동네 찻집에 갈 수 있는 것. 이런 평범한 일상이 가능할 때 노년을 여전히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아직 계단을 오를 수 있고, 버스에 뛰어 오를 수 있다 면, 그것이야 말로 축복이다. 그 축복을 지키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오늘도 걷고 움직이고 몸을 쓰는 것~! 근육은 배신하지 않는다. 50대에 쌓아둔 근력은 70대의 존엄이 되고, 60대에 유지한 유연성은 80대의 자유가 된다. 인생의 후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몸을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명품 가방을 사는 것보다, 매일 30분 걷는 습관이 더 값지다. 은퇴 자금을 모으는 것만큼 스쿼트 10개를 할 수 있는 허벅지 근육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생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쓰이는지도 모른다.
“나는 끝까지 내 발로 걸었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품위 있는 결말이 아닐까.
#노년의품위 #건강수명 #걷기의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