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를 막겠다는 결기는 사라지고, 내부 리더십 위기를 덮기 위한 '이벤트성 강행군'이라는 인상
[최보식의언론=이양승 객원논설위원(군산대 교수)]

장동혁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사법 3법’(법왜곡죄 신설·재판소원 도입·대법관 증원)을 규탄하기 위해 국회에서 신촌, 서대문,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까지 '국민대장정'이라고 이름 붙인 도보행진을 했다. (편집자)
‘바보들의 행진’ 또는 '관제 소풍'...
“독재를 막겠다”는 비장한 구호로 시작한 국민의힘의 9.3㎞ 도보 행진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독재와의 투쟁이 아니라 ‘윤 어게인’ 구호와 함께 한 '관제 소풍'이었다. 헌정 수호를 외쳤지만, 화면에 잡힌 것은 사법개혁 비판 메시지보다 '윤어게인'이었다.
거리로 나설 수는 있다. 의회에서 수적 열세에 몰린 야당이 여론전에 기대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왜 걷는가’보다 ‘누구와 걷는가’였다.
당 지도부는 사법 3법을 ‘독재의 징후’라 규정했지만, 현장에서는 극우 유튜버들의 구호가 확성기를 장악했다. 지도부는 “하나의 구호로 힘을 모아 달라”고 했지만, 이미 장면은 통제 불능이었다.
결국 연출은 메시지를 삼켜버렸다. 사전 신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당 깃발과 피켓도 없이 행진하는 모습은, 치밀한 전략이라기보다 급히 꾸려 오합지졸로 걷는 '관제 소풍'처럼 보였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어리둥절했고, 일부 의원들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자조를 내뱉었다. 독재를 막겠다는 결기는 사라지고, 내부 리더십 위기를 덮기 위한 '이벤트성 강행군'이라는 인상만 남았다.
정치는 상징의 예술이다. 상징은 정교해야 힘을 갖는다. 이번 도보 행진은 상징의 초점을 잃었다. ‘사법 독립’이라는 공적 의제는 희미해지고, 바보스럽고 꼰대스러운 '지도자 추종주의'만 부각됐다. 중도층과 무당층의 공감을 얻어야 할 야당이 오히려 극우주의자들에게 인질로 잡힌 모습이다.
이쯤 되면 국민은 묻는다. 도대체 누구와 함께 누구를 향해 걷고 있는가.
정치적 퍼포먼스는 타이밍과 맥락, 그리고 연출의 완성도가 생명이다. 하지만 이번 행진은 세 가지 모두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여당의 입법 강행을 비판하려다 오히려 스스로의 전략 부재를 드러냈고, 헌정 수호를 외치려다 특정 구호의 그림자에 갇혔다.
‘국민대장정’이라 이름 붙였지만, 국민의 체감도는 너무 낮다. 대장정은 고난과 결의를 상징하지만, 이번 행진은 오히려 목적지를 잃은 채 걷는 ‘바보들의 행진’처럼 비쳤다. 정치가 '관제 소풍'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명분은 진지해야 하고, 전략은 치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걷는 발걸음이 아무리 길어도 남는 것은 피로감뿐이다.
야당이 진정으로 헌정 질서를 걱정한다면, 거리의 구호보다 설득의 언어를 먼저 다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한 번의 행진은 동원령에 따라 행해지는 관제 소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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