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이기는 방법을 잃어버린 정당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한동훈 전 대표는 지난달 27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서 보겠다”고 했다. 오는 7일에는 부산 구포시장을 찾는다. (편집자)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한동훈 전 대표가 ‘보수 재건’을 말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 재등장과 함께 던져진 가장 큰 화두다.
그러나 재건은 '구호'로 시작되지 않는다. 재건은 '고통'에서 시작된다.
자리를 얻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어디에 설 것인가의 선택에서 출발한다. 대구인가 인천 계양인가, 그 선택이 정치인의 무게를 가른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단순히 선거에서 진 정당이 아니었다. 수도권에서 이기는 방법을 잃어버린 정당이었다. 기존 지지층은 투표장으로 끌어냈지만 한 표도 더 만들어내지 못했다. 영남에서는 절대적 지지를 받았지만 서울·경기·인천에서는 완전히 패배했다. 20·30은 등을 돌렸고, 중도층은 움직이지 않았다.
총선 참패는 메시지 부족이 아니라 전략 부재의 결과였다. 영남 결집만으로는 과반을 만들 수 없다는 현실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 선거의 얼굴은 한동훈이었다. 전략의 중심 역시 그였다. 결과는 거대 야당에 190석 가까운 의석을 허용한 정치적 패배였다.
그럼에도 패배 이후 충분한 성찰의 시간은 보이지 않았다. 재등장의 메시지가 반성보다 앞섰다. 정치는 순서의 문제다. 책임이 먼저이고 비전은 그 다음이다. 이 순서를 건너뛰는 순간 리더십은 가벼워진다.
문제는 선거 운영 능력이었다. ‘586 청산’은 선명했지만 단일 구호에 의존했다. 상대가 '공천 전략'으로 판을 바꾸자 즉각적인 2차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이재명이 586의 상징으로 불리던 임종석을 공천에서 배제하자 프레임은 힘을 잃었다. 상대는 수(手)를 바꿨고 한동훈은 대비하지 못했다. 구호는 공중에 떴고, 이슈 주도권은 넘어갔다. 정치는 상대의 다음 수까지 계산하는 게임이다. 준비되지 않은 전략은 한 번 흔들리면 무너진다.
확장 전략도 약했다. 정치는 51%의 게임이다. 그러나 전략은 기존 지지층 결집에 집중됐다. 강성 지지층의 열광은 있었지만 부동층은 움직이지 않았다. 선명성은 강화됐지만 수도권 의석은 늘지 않았다. 선거는 정의를 입증하는 장이 아니라 '표를 모으는 장'이다.
조직 관리에서도 한계가 드러났다. 공천 갈등은 완전히 봉합되지 못했고, 당내 이견은 언론을 통해 증폭됐다. 정당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공간이다. 이를 조정해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내는 능력이 지도자의 시험대다. 통합의 장면은 충분하지 않았다.
통치 방식의 전환도 보이지 않았다. 수사는 흑백을 가른다. 정치는 회색을 다룬다. 수사는 상대를 압박하지만, 정치는 반대자를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보여준 장면은 여전히 전선형이었다. 비판은 강했지만 타협은 드물었다.
이 지점에서 윤석열 정부와 한동훈 정치의 공통 취약점이 겹친다. 도덕적 확신은 분명했지만 수도권 중도 1%를 움직이는 언어는 부족했다. 정권 초기 여러 국면에서 협치의 장면보다 대치의 장면이 더 부각되었고, 이는 수도권 확장에 장애가 되었다. 선명성은 있었지만 확장은 약했다. 고립이 반복되면 표는 줄고, 말만 커진다.
한국 정치사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노무현은 부산에서 세 차례 낙선했다. 승산이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역주의의 벽에 도전했다. 결과는 패배였지만, 그 선택은 전국적 신뢰를 축적했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치적 자산이 되었고, 그 축적이 2002년 대선 승리의 토대가 됐다. 그는 곧장 권력으로 가지 않았다. 낙선의 패배를 견디며 정치적 근육을 키웠다.
김영삼은 제명과 고립을 견뎠고, 김대중은 망명과 사형선고까지 겪었다. 승리보다 패배의 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정치적 무게를 만들었다.
오세훈은 사퇴 이후 재도전을 통해 복귀했고, 김문수와 홍준표 역시 불리한 지역을 피해 다니지 않았다. 공통점은 하나다. 불리한 싸움을 통과했다는 점이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한동훈은 어디에 설 것인가. 대구와 같은 안전지대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천 계양과 같은 상징적 경쟁 지역에서 정면 승부를 벌일 것인가.
계양에서 민주당 중량급과 맞붙어 이긴다면 그것은 의석 1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보수가 수도권에서 다시 이길 수 있다는 증명이 된다. 설령 지더라도 남는 것이 있다. 패배를 겪은 기록은 정치인을 낮추고, 낮아진 정치인만이 중도의 언어를 배운다.
정치는 '연단(鍊鍛)'이다. 연단은 불 속에서 만들어진다. 험지를 피해 곧장 대권을 말하는 것은 조급하다. 대통령은 선언으로 되는 자리가 아니다. 반대 성향 유권자 1%를 실제로 이동시켜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보수 재건은 얼굴 교체가 아니다. 수도권에서 다시 이기는 전략의 복원이다. 그 전략은 험지에서만 검증된다. 재건을 말하려면 먼저 험지에 서야 한다. 그 기록이 없으면 재건도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구호가 아니다. 패배를 감수하겠다는 선택이다. 책임을 완성하지 않은 재건은 공허하다. 정치는 냉정하다. 국가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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