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광고를 찍기 위해 남편이 중국을 돌아다닐 때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연재 형식이니 글 맨 아래 관련기사 '국가의 비밀공작에 희생된 한 광고인의 인생'를 먼저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편집자)

박민영 씨 부부를 데리고 사무실 근처의 국수집으로 갔다.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왔지만, 맞은 편에 앉은 박민영씨 부부의 얼굴은 어두웠다.

왼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처져 있었다. 안면마비라고 했다. 말을 할 때마다 한쪽 입술만 움직였다.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일생을 걸었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후의 스트레스일 것이다.

"남편은 연극영화과를 나왔어요."

부인이 입을 열었다.

"남편의 재능도 꿈도 저는 알아요. 그래서 저는 남편의 소망을 꺾지 않기 위해 전세 보증금까지 빼서 북한으로 가는 남편 손에 쥐어줬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그 순간을 상상했다. 젊은 아내가 빈 통장을 들고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 눈빛을. 남편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 그것은 함께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의미라는 걸, 그때 그녀가 알았을까.

부인의 눈에 물기가 고였다.

"북한에서 광고를 찍기 위해 남편이 중국을 돌아다닐 때 수 많은 사기꾼들을 만났어요. 마지막에는 국가가 우리 부부에게 사기를 친 거예요."

식당 종업원이 국수를 가지고 와서 앞에 놓았다. 하얀 도기 안에서 국수가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국수를 막 먹으려는 찰나였다.

"다른 국수에는 고명이 얹혀 있는데 왜 우리 남편 국수에만 없죠?"

다른 국수에는 고기가루와 채를 썬 계란이 올려져 있었다. 박민영 씨의 국수에만 아무것도 없었다. 부인의 눈빛이 예민해져 있었다. 종업원이 국수그릇을 들고 주방에 가서 확인한 후 국수를 다시 가져다 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경우가 없는데 주방장이 이상하게 고명을 놓는 걸 빠뜨렸답니다."

마치 그의 불운을 대변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한 것이 그에게만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부인이 말을 계속했다.

"국가가 사기를 쳤어요. 사기꾼은 피할 수 있어요. 조심하면 돼요. 하지만 국가가 사기꾼이면 국민으로 살아가는 약한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건가요?"

옆에 있던 박민영 씨가 잘 들리지 않고 반쪽만 움직이는 입으로 말했다.

"이웃집 남자가 안전기획부 공작원인 줄은 상상도 못했죠."

그의 목소리에 배신감이 묻어 있었다.

"남북합작 광고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북한 땅을 합법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결정적인 통로를 만들었던 거죠. 북한 광고사업에 꿈과 열정을 가진 저의 광고사업에 대북 공작 활동을 한 거예요."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제가 북한을 가보니까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었어요. 체제유지를 위한 외화벌이에 대한 절박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컸던 것 같았어요. 그들이 오히려 저를 붙잡으려고 애를 쓰는 게 보였어요."

박민영 씨가 쓴 웃음을 지었다. 아이러니였다. 남한의 정보기관은 그를 이용해 북한에 침투했고, 북한은 그를 이용해 외화를 벌려 했다. 그 사이에서 한 사람의 꿈이 갈기갈기 찢겼다.

"안전기획부 간부들이 자기네 공작을 폭로만 하지 않았으면 제 사업은 성공했을 겁니다."

식사가 끝나고 그 부부가 돌아갈 무렵이었다. 남편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동안 부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변호사님 저는 우리를 이용한 국가와 싸우기 싫어요. 남편의 깊은 속에 응어리가 남을 것 같아 변호사님과 의논하는 모습이라도 보이기 위해서 온 거예요."

부인은 마음속으로 이미 싸움을 포기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 앞에 서 한참을 생각했다.

변호사 30년. 나는 수많은 억울함을 보았다. 하지만 국가권력 앞에서 변호사란 무엇인가? 법이란 또 무엇인가?

책상 위의 법전이 눈에 들어왔다. 국가가 국민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가는 박민영씨의 파산을, 안면마비를, 부인의 눈물을 외면하고 있다.

보통 사람은 국가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면 소리쳐야 한다. 저항해야 한다. 언론은 그런 국가의 불법을 보도해야 한다. 변호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법률문제로 만들어 법대 위에 올려 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소송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길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기록을 남겨야 했다. 한 국민이 국가권력에 의해 파산했다는 기록을.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기록을.

도전하기로 했다. 안전기획부장과 차장이 기밀을 누설한 것이니까 국가의 불법행위가 분명했다. 공작의 비밀이 기사화되어 있었다.

남북 화해 무드 속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한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에게도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계약이 이행되지 않았다면 그래야 하는 게 원칙이다. 돈키호테 같은 미친 발상일까.

법정투쟁이 시작됐다.

첫 변론기일. 내가 원고석에 앉았다. 옆의 피고석에는 정보기관을 대표하는 사람이 나와 있었다. 음지에서 정체를 숨기는 그들의 일부를 양지로 끌어낸 것이다.

정보기관의 대표로 나온 그가 재판장에게 말했다.

"원고 측이 제출한 문서에 공작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가 서류 뭉치를 들어 보였다.

"정보기관은 국가 기밀성을 판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원고 측이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기 전에 먼저 저희에게 보여주고 심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 소장을 먼저 당신들에게 검열을 받으라는 겁니까?"

"국가안보를 위한 정당한 절차입니다. 기밀에 관련된 부분은 법정에서 주장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냉철한 눈길로 나를 보면서 계속했다.

"증인을 신청할 경우도 국가 정보기관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법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국가기밀의 누설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국가기밀을 누설해 놓고 엉뚱하게 나의 입을 틀어막고 몸을 꽁꽁 묶으려고 하고 있었다.

권투 링에 싸우려고 올라갔는데 내 팔 다리를 묶고 시합을 하라는 것과 같았다. 심판인 법원은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재판을 하는 흉내만 내고 사건을 덮어버리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였다. 진실을 파악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몇 차례 변론기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이제 재판을 끝내도 될까요?"

재판장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권태가 묻어 있었다. 더 이상 끌기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분노가 일었다. 아니, 분노보다 더 깊은 무언가였다. 나만 목격하는 국가의 횡포였다.

삼십 년 법정을 드나들었다. 그래도 법을 믿었다. 정의는 더디지만 결국 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저 재판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정의를 구현하려는 판사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하는 공무원일 뿐이었다.

"정보기관의 공작에 관한 모든 서류에 대해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겠습니다."

내 목소리가 법정에 울렸다. 관련 공작서류를 내 놓으라는 법원의 명령서를 발부하라는 요구였다.

재판장의 표정이 찌그러졌다.

"에이, 거기서 공작서류를 법원에 제출해 줄 리가 있겠습니까?"

쓸데없는 시간 낭비만 한다는 힐난 투였다.

"지금 그 말이 재판장이 할 소리입니까?"

내가 정색을 하고 재판장을 쏘아보았다.

"결과야 어떻든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는 것은 변호사의 권한입니다. 법원은 서류를 제출하라는 명령을 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걸 내든 말든지는 정보기관이 알아서 할 사항입니다."

재판장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재판장이 정보기관에게 알아서 기고 그 대변자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나는 판사들의 자존심을 무참할 정도로 긁어 버렸다. 재판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판사판이다. 도발을 하지 않으면 그냥 밟혀 버린다. 쓰러져도 한 가지만은 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내 양심을.

재판부가 움직였다. 내가 신청한 대로 정보기관에 관련 공작서류를 전부 법원에 제출하라는 명령서를 보냈다.

한 달 후 정보기관의 회신이 나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나는 봉투를 뜯었다. 한 장 짜리 공문서에는 중앙에 세 글자가 박혀 있었다.

'부존재'

나는 한참을 그 글자를 바라보았다.

부존재. 존재하지 않는다.

공작서류가? 아니면 박민영 씨의 삶이? 그의 꿈이? 그의 회사가? 아니면 이 나라의 정의가?

세 글자로 모든 것을 지우려고 했다. 예상했던 답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다고 해서 덜 아픈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공작원 명왕성을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다음 기일에서 내가 말했다.

"증인이 나올까요?"

재판장이 나를 보고 물었다. 회의적인 어조였다.

"나오게 하겠습니다."

"정보기관의 허가절차가 필요할 텐데요?"

"허가 받지 않겠습니다. 불법을 자행한 정보기관은 이미 허가할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집요하게 추적해서 명왕성을 법정에 세울 각오였다. 그는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공작에 관한 모든 증거를 그들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가진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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