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갖고도 못 지킨 자신을, 권력을 잃은 정치 상황에서는 말이 짧을수록 그리고 책임을 지는 지도자의 자세로...

[최보식의언론=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준장)]

SBS 화면 캡처

극히 미묘한 문제에 대한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지금 군에서는 대령에서 장군 진급자의 발표가 내란관련자 색출과 관련하여 늦어지고 있고, 국방부는 돈이 없어 연말 예산 1조 8,000억을 집행하지 못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국방부가 어디에 관심을 쏟고 있는지 알려주는 하나의 척도이다.

이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군 통수권에 대한 신뢰와 군 자체 내에서도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는 면도 있고 정부에서도 이런 기본적이고 정녕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에 업무의 중점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죄의 유무를 떠나 윤 전 대통령의 최후 진술과 관련하여 아쉬움이 크다. 그는 정치권력을 두고 패했다. 수많은 자기의 권력을 빼앗겼다. 중국 한신(韓信)의 고사에 '패장은 불어병(敗軍之將 不語兵, 패배한 장수는 병법과 용맹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음)이라고 했다.

사법적 유죄 여부는 재판관이 내리겠지만, 윤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을 계엄에 실패한 직후 대국민담화나 연설문 형식으로 했다면 '내란 프레임'에 갇히지 않았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내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러나 나의 지시를 받고 따라준 장군들에게 책임을 물으면 군통수권에 큰 문제가 생긴다. 부디 나에게 책임을 묻고 장군들은 용서해주기 바란다."

이렇게 간명하게 말했다면 국민 여론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돌릴 수 있었다. 어차피 정치적 심판이다.

권력을 갖고도 못 지킨 자신을, 권력을 잃은 정치 상황에서는 말이 짧을수록, 그리고 책임을 지는 지도자의 자세로 나갈 때 국민 여론을 업을 수 있는데 아쉬움이 크다. 

위기에 처할수록 처신은 대의에 기초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억울한 상황에서도 아무 변명하지 않았다.

진실은 언제가 밝혀진다. 보수 진영은 두 번에 걸쳐 자기 당의 대통령을 탄핵했다. 진보진영이 아무리 탄핵을 시도해도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한 것은 국힘당 동조자들이다. 

군 통수권은 특정 정권의 권한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국가 기능이다. 군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전쟁을 억제하고 유사시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군에는 다른 어떤 조직보다도 명확한 지휘체계와 책임 구조가 요구된다.

문제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군 통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통수권자의 지시가 사후적으로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되고, 정권의 이해에 따라 '정당한 명령'이 '문제적 지시'로 뒤바뀌는 장면이 반복된다. 이런 구조에서 군이 과연 결단할 수 있겠는가.

군은 명령의 정당성을 토론하는 조직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군은 명령이 내려오면 수행하고, 책임은 지휘권자가 진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군은 행동하지 못하고, 국민은 보호받지 못한다. 군 통수권의 혼선은 군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안전의 문제다.

안보 사안은 냉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안보는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계엄', '내란', '쿠데타'라는 단어들이 법적 판단 이전에 정치적 공격의 언어로 먼저 등장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실관계보다 프레임이 앞선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군이다. 군은 침묵을 강요받고, 판단을 미루며,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는 군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 자체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전쟁이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지휘관이 "이 명령이 나중에 문제 될까?"를 먼저 고민하는 군대가 과연 국민을 지킬 수 있을까. 안보를 정치적 유불리의 도구로 쓰는 순간, 그 사회는 스스로 방패를 내려 놓는 것이다. 

안보는 정권의 것이 아니다. 안보는 국민의 생존 조건이다. 정치가 이를 소모품처럼 다룰수록, 위기 상황에서 국가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동아시아 안보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변화는 현실이다. 일본은 더 이상 과거의 일본이 아니다. 방위비 증액, 반격 능력 보유, 헌법 해석 변화는 일본이 전쟁 수행이 가능한 국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여장부가 나타나 강단있는 발언을 했다. 마츠시다 정경숙을 나왔고 국가전략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하고 있다. 대만유사 관련 발언이 실언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다카이치가 앞뒤 재지 않고 무심코 한 말이 아니라 계산된 발언으로 보인다. 일본은 대만유사 대비가 우리의 북핵 문제 만큼이나 민감한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의 대응이다. 중국은 일본에 대해 경제적·외교적 압박과 제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역설적이다. 외부의 위협은 일본 사회에 군사력 강화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대일 압박은 일본을 억제하기는커녕, 일본이 "더 이상 평화주의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명분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결국 중국의 대일본 제재는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가는 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변화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충격파는 한국으로 직접 전해진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이 감정이나 이념에 갇혀 안보를 다룬다면, 우리는 전략적 공간을 잃게 된다. 일본이 변하고 있다면, 우리는 더 차분하고 단단한 군 통수 체계와 자주적 안보 판단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것은 친일도, 반일도 아닌 국민 생존의 문제다. 

안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군 통수권의 안정성, 지휘체계의 명확성, 책임의 일관성은 모두 국민을 지키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이 조건이 흔들리면, 피해는 군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아온다.

군이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국가는 안전해진다. 정치가 군을 흔들수록 국가는 위험해진다. 현역과 예비역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은 특정 진영의 주장이 아니라, 국가를 지키는 군복무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때 국민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말이 아니라, 작동하는 통수 체계와 책임 있는 지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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