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행동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적의 도발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모호한 지침
[최보식의언론=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준장)]
옥시모론(oxymoron), 우리말로 모순어법은 말 자체에 상충된 의미를 품은 표현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 '고속으로 천천히 기동하라', '대강 철저히 하라' 같은 말은 문학에서 비유로 쓰일 때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군사 지휘에서 이런 표현은 미학이 아니라 '미군(靡軍,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 형편없는 군대를 뜻함)'을 만드는 첩경이다. 군사 용어와 지침은 재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분명해야 하며, 행동으로 즉각 전환될 수 있어야 한다. 말이 모호하면 행동은 멈춘다.
최근 하달되는 군 지침을 보면 이러한 원칙이 무너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침범할 경우 "경고사격 전 상황평가를 면밀히 하라"는 지시는 전형적인 모순어법이다. 상황평가는 사후의 영역이거나, 최소한 경고 사격이라는 행동 이전에 요구되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다. 현장에서 수 초 안에 판단해야 하는 장병에게 '면밀한 평가'란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말라거나 적극 대응 말라는 지시와 다르지 않다.
더 심각한 것은 합참 차원의 지침이다.
"군사분계선 구획이 불분명할 경우 남쪽이 양보하는 선에서 획정하라"는 지시는 작전지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의 이적 행위다. 군사분계선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선이며, 호국영령들이 피로써 지켜 내고 확보한 영토다.
비무장지대라고 남의 땅이 아니라 충돌방지를 위한 완충공간이다.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일방적 양보를 전제로 한다면 현장 지휘관은 어떤 결심도 할 수 없게 된다. 지침이 모호할수록 현장에서는 책임 회피가 합리적 선택이 된다.
군사행동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적의 도발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모호한 지침이다.
지침이 불명확하면 지휘관은 판단을 유보하고, 병사는 행동을 주저한다. 이는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책임은 내가 진다. 강력히 대응하라"는 말조차 명확한 조건과 절차가 없으면 실행되지 않는다. 하물며 "상황을 보라", "면밀히 평가하라"는 하나마나한 지침은 현장을 묶어 두는 족쇄일 뿐이다.
이는 무책임한 관료조직에서 뭐했냐 할때 '지침을 하달했다'고 면피를 위해 내린 지시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모습이 반복될수록 한국군은 스스로 '당나라 군대'라는 오명을 키운다.
당나라 군대란 말은 오합지졸, 허울뿐인 군대를 뜻하는 관용어다. 이는 역사적 당나라 군대 전체를 지칭한다기보다, 지휘체계가 무너진 말기적 군상을 빗댄 표현이다.
唐나라를 일본어로 '가라츠'라고 읽는데 거짓 假를 '가라'라고 읽고 실속이 없는 허울뿐이라는 말이 전화되어 실속 없는 군대를 의미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사의 난(安史之亂) 하나로 당나라 전체를 오합지졸로 평할 수는 없지만, 지휘의 붕괴가 군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는 분명히 보여준다.
오늘의 한국군이 이 표현을 듣는 이유는 병사들의 자질이나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지도부의 지침으로 하달되는 지시다. 국방부와 합참의 지시가 현장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 명확해야 할 군사용어가 정치적 고려와 책임 회피 속에서 흐려졌고, 그 결과 지침은 행동을 촉발하기는커녕 행동을 억제하는 장치가 되었다.
군에서 지침은 선택지가 아니다.
지침은 곧 명령이며, 명령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조건과 행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둘째, 판단의 주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책임의 귀속을 문서로 명시해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지침은 공허한 문장이 된다.
한국군이 더 이상 '당나라 군대'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답은 간단하다. 말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모순어법적 지침을 걷어내고, 행동 중심의 명령으로 복원해야 한다.
군은 시(詩)를 쓰는 조직이 아니다. 군의 언어는 아름답기보다, 오직 명확해야 한다. 지도부의 모호한 말 한 줄이 현장의 총구를 폐쇄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아무리 첨단 무기를 들여와도 군은 허울뿐인 조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군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장비가 아니라 지침의 명확성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언제나 지침을 내리는 상급부서와 지휘자에게 있다.
자리가 버거우면 감당이 안 되니 되는 사람에게 빨리 양보하는 것도 책임을 다하고 애국하는 길이다.
손자서 구변에
故將有五危, 必死可殺也, 必生可虜也,
그러므로 장수에게는 다섯 가지의 위험한 일이 있으니, 반드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면 죽을 수 있고, 반드시 살기를 각오하면 사로잡히게 되며,
忿速可侮也, 廉潔可辱也, 愛民可煩也.
분을 이기지 못해 성급하게 행동하면 모욕을 당할 수 있고, 성품이 지나치게 깨끗하면 치욕을 당할 수 있으며, 백성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번민을 하게 된다.
凡此五者, 將之過也, 用兵之災也.
무릇 이 다섯 가지는 장수의 허물이며, 용병의 재앙이라고 했는데 장수의 지침이 모호한 경우를 손자는 예상못했다.
그러나 모공편(謀攻篇)'에서 '부지군지불가이퇴이위지퇴 시위미군(不知軍之不可以退而謂之退是謂靡軍, 군대가 물러날 수 없음을 모르고 물러나라고 명령하는 것이니, 이를 미군이라 한다고 했다.
지침이 엉성하여 기동성이 상실된 군대 즉 靡軍이 되지 않게 하는 책임은 국방부와 합참에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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