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개혁이 만든 전투력 공백
[최보식의언론=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준장)]

국방은 정책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국방정책은 이념이나 상징, 속도가 아니라 현장 검증과 작전 현실을 통해 완성된다.
최근 대한민국 국방정책의 방향은 점점 현장과 괴리된 탁상개혁의 전형을 띠고 있다. 제도는 빠르게 바뀌는데, 전투력은 오히려 비어가고 있다. 이것이 오늘 국방 현장에서 체감되는 가장 큰 위기다.
지금 야전부대의 현실은 단순한 인력 부족을 넘어선다. 병력 충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보유 장비의 절반 이상이 가동되지 못한 채 세워져 있는 부대가 적지 않다.
이는 단순한 효율 문제도, 일시적 현상도 아니다. 전투부대의 기본 원칙은 '장비-인원-훈련'의 삼위일체인데, 이 가운데 인원이 붕괴되면 나머지 두 축은 자동으로 무력화된다.
그럼에도 국방정책은 장비도입, 조직 개편, 구조조정 중심으로만 움직인다. 병력 구조가 붕괴된 상태에서 장비만 늘리는 것은, 실제 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전투력의 전시(展示)에 불과하다.
정책 결정자들이 단 한 차례라도 야전부대의 장비 가동률, 인원 충원율, 경계근무 실태를 직접 확인했다면 이런 정책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방정책의 첫 단추는 문서가 아니라 현장 확인이어야 한다. 현장을 보지 않는 국방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위험한 실험이다.
사관학교 통합안, 간부 충원체계 변경, 조직 개편 논의는 모두 군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들 정책은 공청회, 야전 검증, 단계적 시범 운영 없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 국방정책이 이렇게 진행되는 순간,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행정 편의적 구조 조정으로 전락한다.
특히 사관학교 통합은 단순한 교육기관 개편이 아니다. 사관학교는 군의 전문직업성을 재생산하는 핵심 제도이며, 합동성 강화라는 명분이 실질적 합동군 체계 없이 추진될 경우 오히려 전문화 붕괴와 정체성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정책결정은 구조적 목적과 단계적 로드맵이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중대한 정책이 자칭 전문가 중심의 폐쇄적 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국방개혁은 보고서가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는 조직의 재설계라는 점에서, 현장 지휘관과 실무자의 참여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국방개혁 제시안이 싸우는 방법과 얼마나 연계되었는지 검토가 이루어진 후에 결정된 사안인지를 묻고 있다.
오늘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초급 간부 붕괴다. 병력 감소 속에서도 간부 처우와 지휘 부담은 개선되지 않았고, 급여체계와 복무여건은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고 있다.
병 복무 개선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간부 이탈을 가속화하는 구조로 설계된다면 군의 지휘체계는 지속될 수 없다. 초급 간부들이 부모들의 전화 간섭으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하소연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군대는 '사람'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현재 정책은 사람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 결과 장비는 있으되 운용할 인원이 없고, 부대는 있으되 전투력이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여기에 작전 효율성과 연계되지 않은 해병대 개편 등 조직 확대 논의가 더해지며, 국방은 비용만 증가하는 비효율 구조로 향하고 있다.
국방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전 무관단을 어떤 형태로든 파견하여 현대전의 실상과 교훈을 확인해야 한다.
과거 10월 중동전쟁에서는 이스라엘에 시찰단을 보내 국방개혁에 반영한 적이 있다. 많이 보낼 필요도 없다. 몇 명이라고 팀을 보내어 책임자가 확인한 것을 공유하면 되는데 이것을 파병이니 뭐니 헛소리하며 세월만 보내고 있다.
제발 야전 현장 지휘관들의 말을 들어보고 경청하기 바란다. 지금 해군은 인력이 부족하여 배를 띄울 수 없는 상태고, 전차는 승무원의 60%도 안 되어 절반에 가까운 장비가 세워져 있다. 과거에는 일반 행정요원들도 비상시에 대비하여 장비 작동 교육을 시켰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한계를 넘었다. 현장을 모르고 탁상공론하여 내놓은 제안은 참고할 가치가 없다.
해병대는 준 4군체제를 할 때가 아니다. 우리 해병대를 대만에 파견할 것도 아닌데 왜 2만 9,000명으로 4성장군 자리를 만드려고 하는가?
대통령 공약이라도 현실과 맞지 않으면 조정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해병대를 위해 존재하는가, 해병대가 군의 존재 목적에 맞게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책임 있는 답변을 요한다.
해병대 인원 중 2,000명 정도는 해군에 보내어 함정을 운영하는 인원을 보충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게 군의 균형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대한민국 국방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개편안이 아니라 정책결정 구조의 전면적 재검토다. 국방정책은 속도보다 검증이 우선이며, 정치적 상징보다 작전 현실이 우선이다. 현장을 보지 않는 개혁은 군을 약화시키고, 절차 없는 개편은 전투력을 해체한다.
국방부는 지금이라도 야전 확인, 단계적 검증, 공개토론이라는 기본 원칙으로 돌아와야 한다. 국방은 실험실이 아니다. 한 번 무너지면 복구하는 데 10년이 걸리는 것이 군이다. 정책결정자들의 각성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rokpanz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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