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과 예술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Samuel Beckett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시도해 봤나? 실패해 봤나?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최악을 향해 가라》(원제: Worstward Ho),1983년의 작품에 나오는 말이다.

이 작품은 베케트가 77세의 고령에 쓴 후기 산문으로, 문법을 파괴하고 극도로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여 '언어의 한계'와 '존재의 실패'를 탐구한 난해한 텍스트다.

이 문장은 현대에 와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이나 자기계발서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면 결국 성공한다"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슬로건으로 널리 소비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세대간 간격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이 바로 젊은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산업개발의 성공 과정에서 나아지는 삶을 경험해 본 세대는 노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세대의 기대만큼 기회가 없다고 인식하는 청년들은 "노오---오력"의 강요의 꼰대짓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이글의 베케트의 원래 의도는 성공을 향해 불굴의 노력을 촉구한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원래의 의미 (실존적 비관주의)는 베케트에게 인간의 삶과 예술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언어는 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고, 인간은 존재의 허무를 메울 수 없다.

'더 낫게 실패하라'의 뜻은 성공하기 위해 실패하라는 뜻이 아니다. 성공은 불가능하다. 다만, 지난번의 실패보다 조금 더 본질에 가깝게, 군더더기 없이, 더 정교하고 순수하게 실패하라는 예술적, 실존적 태도를 의미한다.

즉, "실패는 피할 수 없으니, 그 실패의 질(Quality)을 높이라"는 심오한 허무주의의 표현이다.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 1906~1989)는 아일랜드 출신 (주 활동지는 프랑스 파리)으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극작가 중 한 명이자 소설가다. 1969년 노벨 문학상 수상했다.

부조리극(Theatre of the Absurd)의 거장으로 대표작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를 통해 의미 없는 대화, 반복되는 상황, 오지 않는 구원을 기다리는 인간의 부조리함을 그렸다.

미니멀리즘으로 말년으로 갈수록 언어와 동작을 극도로 줄여, 침묵과 어둠 속에서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응시하는 작품을 썼다.

영어로 글을 쓰다가 프랑스어로 전향했고, 다시 본인이 영어로 번역하는 등 언어의 한계를 넘기 위해 평생 투쟁했다.

이글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1942년에 발표한 에세이 《시지프 신화(The Myth of Sisyphus)》에서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시지프스)를 통해 인간 실존의 부조리(The Absurd)를 설명했던 철학의 문학적 고백이라고 볼 수 있다.

카뮈는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형벌을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의 운명을,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허무에 굴복하여 자살하거나 종교적 희망에 도피하는 대신, 그 부조리한 운명을 직시하고 반항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간의 존엄이자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베게트는 다음에 무거운 바위를 밀어 올릴 때 지난번 보다 조금 더 멋있게 하는 것에 의미를 두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생의 끝은 모두 실패다. 인생의 끝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든 것의 해체와 실패의 클라이막스다. 그 과정에 우리는 조금 더 예쁜 짓을 해보고 싶을 뿐이다. 고도는 오지 않는다.

막무가내의 성공을 외치는 것에 우리는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가?

 

#샤무엘 베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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