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돈을 주고 배운 대치동 지식이 대학입시 외에는 평생 다시 쓸 일이 없다
[최보식의언론=김진안 전 삼성전자 중동구지역장 전무]

삼성은 3월부터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3개사부터 국내와 해외법인이 주고 받는 모든 문서를 '영어'로만 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3개사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해보고 전 계열사로 확대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해외사업장이 많은 데다 전 직원 약 26만 명 중 해외 직원이 14만 명 정도 되고 국내 직원이 12만 명 좀 넘는다. 국내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상당수가 외국인들이다. 외국인 직원이 한국인 직원보다 많은 상황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실 내가 근무하던 20년 전부터 해외영업 부문은 본-지사 간의 소통 언어는 영어였다. 모든 공문을 주재원과 법인 현지인들에게 영어로 발송했고 본사 직원들이 영어로 직접 소통했으니 새로운 일이 아니다.
단지 그 당시는 관리와 R&D와 기타 부서에서 아직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 한글로 주재원에게 보내 주재원이 현지인에게 번역해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이제 20여 년이 흘렀고 이제 관리와 R&D직원들도 영어 소통이 가능해졌을 테니 이제 삼성전자 전 부서가 해외 법인과 영어로 소통하도록 방침을 내린 것이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은 진작부터 영어로만 소통했고 쿠팡조차도 영어로만 소통한다. 외국계 기업은 그 정도의 영어 실력이 없으면 아예 채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입사할 때만 해도 영어와 제2외국어 사용은 특기였지만 이제 신입사원들이 입사 때부터 영어에 능통해 영어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도 더이상 특기가 아니다. 해외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외국어 2개 정도는 대부분 구사한다.
삼성의 힘은 기술력이 최우선이지만 수많은 인재가 가장 큰 역량 중의 하나다. 내가 입사하던 1980년대부터 이미 많은 해외 유학파들이 근무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매년 간부들 중에서 몇 십 명 씩 선발하여 해외 유명대학에 MBA 정규과정에 파견하여 글로벌 경험을 가진 인재들을 육성해왔다. 일반 직원들은 지역 전문가라 해서 매년 수백 명씩 특정지역에 1년간 파견하여 현지 언어를 익히게 했다.
과거에는 일정 비율의 본사 직원들을 해외 법인에 파견시켜 글로벌 경험을 쌓게 했지만 1990년 말부터는 해외법인에 근무하는 현지 직원들을 본사에 파견시켜 몇 년간 근무한 후 현지로 돌려보내는 제도도 시행했다. 그런 직원들이 회사에 충성심을 갖고 있으니 본사 임원으로 승진시켜 한국 파견직원 대신 현지법인장으로 임명하곤 했다.
밖에서 보면 삼성전자가 매년 그 많은 돈을 벌어 어디에 쓰나 하고 궁금해 할지 모르지만 대부분 첨단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 재투자한다. 이런 제도를 시행한 지 벌써 수십 년 되었으니 누적된 인력과 그 힘이 오늘날 글로벌 삼성전자를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돌이켜 보니 내가 법인장이 되고 어느 날부터(1990년 후반) 해외전략대회에 현지인 간부들을 참석시켰다. 현지인 간부들이 참석하다 보니 회의와 발표가 당연히 영어로만 진행되었다. 나중에는 한국인들끼리 하는 회의에도 영어로만 소통하게 만들었다.
본사에서 회장이나 CEO가 출장 오면 법인장이 영어로 보고하게 했다. 한국인 보스에게 영어로 보고하고 소통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좀 지나니 익숙해졌다. 어차피 우리야 현지인들과 영어로 소통하고 회의를 하니 영어로 회의하는 것에 익숙했다.
이렇게 회사 전체가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CEO 같은 최고위층이 솔선수범하면 금방 바뀐다. CEO가 영어로 보고 받겠다 선언하면 아래에서는 죽어라고 공부해서 영어로 보고하고 소통한다. 삼성전자가 처음 시작할 때도 CEO가 현지인 참석시켜 영어로 회의하자고 하니 금방 바뀌었다.
지금은 웬만한 대기업은 유학 다녀온 직원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유학은 안 다녀왔어도 영어 사용 지역 영어연수 정도는 대부분 다녀왔다. 대부분이 영어에 정통하니 회사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처음에 조금 불편해서 그렇지 시작하면 금방 적응이 된다.
이제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영어를 회사 공용어로 바꾸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내에도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해외법인에도 대부분 현지인들인데 언제까지 한국어로만 소통이 가능하겠는가? 업무효율성이 떨어져서 안 된다.
삼성이 대한민국에서 여러 선한 영향력을 끼쳐 왔다. 삼성전자가 연봉 및 인사제도를 바꾸며 파격적인 성과급제가 도입되면서 임직원들의 급여가 대폭 인상되었다. 특히 임원들의 연봉이 미국기업 수준으로 올랐다. 그리고 곧 모든 대기업에 파급되었다.
장례문화도 삼성병원이 선도하며 깨끗하며 투명하게 바뀌었다. 이제 회사 내 언어를 영어로 바꾸는 것도 삼성이 시작했으니 조만간 대부분 기업들에게 파급될 것으로 본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현 중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학입시 방법이 아주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게 구시대적이다. 대학 졸업생들의 대부분이 기업에 취업할 텐데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과 중고교 교육과정이나 대학입시방법이 전혀 맞지 않는다. 기업에서는 입사 때부터 글로벌 매너와 에티켓을 갖춘 능통한 영어 구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면 교육과정도 이에 맞춰 바꿔야 하는데 여전히 사회생활에 전혀 필요하지 않는 교육 내용들이다.
나는 지금도 고교 과정에서 고급 수준의 미적분을 가르치고 대학입시 문제로 나오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 한다. 고교를 졸업하면 이과를 제외하고는 평생 다시 미적분을 사용할 일이 없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계 학교에 다녔지만 미적분은 입문 수준으로 가볍게 터치하고 지나간다. 미적분이 필요한 사람은 대학에서 깊숙히 배우라는 것이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최소한 중고교 과정부터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 대학입시도 사회생활에 필요 없는 국어, 수학 등 과목은 과감히 없애고 영어회화, 영어 에세이, 영어 면접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대학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실무에 투입될 수 있다. 최소 신입사원 2-3년간의 공백을 없앨 수 있다. 해외법인장 할 때 보니 현지의 인력들은 모두가 영어에 능통해 대학 갓 졸업한 신입사원도 입사 즉시 실무에 투입해서 좋았다.
대한민국의 대학입시는 마치 대치동 학원가와 교육당국, 그리고 고등학교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판 같다. 수능에서 일부러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고 정식 교육 과정에서는 가르칠 역량이 안 되니 학생들은 매달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씩 내고 대치동 학원을 찾게 된다. 그리고 수능출제 위원들은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거액을 받고 슬쩍 문제를 흘리고 소위 족집게 강사들은 돈을 주고 산 문제로 매달 수백억 원씩 돈을 번다. 이것이 교육당국과 학원가의 검은 커넥션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많은 돈을 주고 배운 대치동 지식이 대학입시 외에는 평생 다시 쓸 일이 없다. 국가적 낭비다.
#삼성영어공용어 #글로벌기업전환 #교육개혁논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