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게 자금을 조달해서 더 높은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해주는 것이 본업인데, 본업을 하고 있다고 질타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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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금융 문제로 정부에서 직접 관여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데, 가만 놔두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한다."

"금융사들의 영업행태를 보면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땅이나 집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먹는 게 주축이다."

최근 쏟아진 우리 금융에 대한 대통령의 준엄하신 비판이다. 

이재명 대통령만이 아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은행이 공공재라면서 거의 똑같은 비판을 쏟아내고 실제로 은행들 팔을 비틀어서 벌어 들인 이익의 사회환원을 시켰다.

언론도 툭 하면 앉아서 "이자 놀이"를 하는 금융을 질타한다.

웃기는 비판들이다. 은행의 본질은 '이자 놀이'다. 값싸게 자금을 조달해서 더 높은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해주는 것이 본업인데, 본업을 하고 있다고 질타를 한다.

‘따뜻한 금융’이라는 위선,  은행은 자선단체가 아니다.

정치권과 언론의 은행을 향해 거친 비난을 쏟아낸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이자 장사만 한다", "피도 눈물도 없이 서민을 수탈한다",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 부패 집단이다"라는 레토릭은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금융론'은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선동이다. 은행이 '피와 눈물'이라는 정서적 기준, 즉 온정주의로 대출을 집행하는 순간, 그 피해는 은행가가 아니라 예금자인 국민 전체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정치적 수사에 가려진 금융의 본질과 한국 금융 시장의 구조적 모순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1. 은행은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장사한다 (Fiduciary Duty)

금융(Financial Intermediation)의 본질은 자금의 중개다. 은행이 대출해 주는 돈은 은행장의 개인 자금이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수많은 예금주들의 돈, 즉 '부채'다.

은행은 예금주들에게 약속한 이자와 원금을 지급할 법적 의무가 있다. 대출자가 돈을 갚지 못해 부도가 나더라도 은행은 예금주에게 "저 대출자가 사정이 딱해서 못 갚았으니, 당신 예금도 돌려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이 금융의 냉혹한 본질이다.

따라서 은행이 담보를 요구하고 상환 능력을 깐깐하게 따지는 것은 '탐욕' 때문이 아니라, 예금자의 돈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다. '피와 눈물'을 담보로 대출을 내주는 것은 예금주에 대한 배임 행위이자,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자초하는 길이다.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금융이 아니라 '복지'의 영역이며, 이는 은행의 예대마진이 아니라 정부의 세금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2. 부동산 담보 대출 위주는 한국 경제에 돈 빌려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은행은 떼이지 않고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을 때 돈을 번다. 그런데 안전한 장사만 한다는 것은 다른 곳은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대기업은 과거와 달리 은행에서 돈 빌릴 일이 많지 않다. 이제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은 은행들보다도 신용이 높고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다. 그들에게 함부로 신용대출을 못 해주는 이유는 너무 위험해서다. 이는 은행들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취약점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의 신용 보증은 일본과 한국이 OECD 중에서 예외적으로 높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좀비경제화를 만들고 있고 저성장으로 가는 큰 원인 중에 하나다. 그들이 금융의 냉혹한 원리에 의해 빨리 퇴출되고 구조 조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함부로 기업 대출했다가 부실화된 은행으로 나라가 흔들린 것이 IMF 외환 위기다. 그 이후 한국 대기업은 투자와 대출에 훨씬 소극적으로 변화했고 이익 창출 능력도 늘었다. 대기업의 대출이 주니까 부동산 대출 비중이 높은 것이다.

3. 대출은 필요에 따라 가지 않는다.

돈이 더 필요한 곳은 서민이라고 질타를 한다. 자금은 필요에 따라 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금융은 자본을 가져다가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곳으로 배분되는 것이고 그런 수요처가 대출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곳이다.

모든 경제적 자원들은 그것이 자본이든, 인재든, 토지든 투입해서 가장 성과가 많이 나는 곳에 투입되는 것이 정답이지 절실함이 기준이 되면 안 된다.

4.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 것은 누구인가: 관치 금융의 역설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비판은 한국 금융 시장의 과점 체제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견고한 카르텔을 만든 주범은 은행 자체가 아니라 바로 정부(관치)다.

한국 정부는 역사적으로 금융 산업의 안정을 이유로 신규 진입을 철저히 막아 왔다. 특히 금산분리 원칙 등을 내세워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을 제한하고, 까다로운 인허가권으로 소수 은행의 기득권을 보호해 왔다. 즉, 은행들은 정부가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경쟁 없는 평화를 누려온 '관제 카르텔'의 수혜자들이다.

진정으로 이자 장사의 폭리를 막고 싶다면, 은행을 악마화하여 팔을 비트는 것이 아니라 진입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핀테크 기업, 인터넷 은행, 외국계 금융 회사, 나아가 산업자본의 진입을 허용하여 시장 경쟁을 촉진시키면 금리는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서비스는 개선된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독과점 구조는 그대로 둔 채, 플레이어들을 욕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는 기만이다.

필자가 학장할 때 경영대 자문위원으로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금융회사 최고 경영자들을 모셨다. 그들은 한국에서 정부가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시장을 포기하고 철수한다고 했다.

지금도 부동산 대출 막고 은행을 금감위의 심부름꾼으로 만든 것이 누구인가? 보험료를 표준표에 따라 담합 가격을 유지하게 만든 것이 누구인가? 주식 하나도 없는 정부가 툭하면 은행장, 회장 인사에 개입하는 것이 누구인가?

5.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이자율 규제의 실패

역사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며 이자율을 강제로 낮추거나 규제했을 때, 그 결과는 언제나 참담했다.

- 가격 통제의 경제학: 이자는 '돈의 가격'이다. 시장경제론자들(하이에크, 프리드먼 등)은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반드시 공급 부족(Shortage)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대출 금리를 억누르면 은행은 리스크가 높은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수지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 풍선 효과: 결과적으로 제1금융권에서 밀려난 서민들은 법정 최고금리 규제조차 받지 않는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게 된다. '약자를 위한다'는 규제가 약자의 자금줄을 끊어버리는 역설이다.

이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 역사적 교훈: 로마 제국부터 현대의 베네수엘라에 이르기까지, 이자율 통제는 항상 자본 도피와 암시장의 형성을 초래했다. 밀턴 프리드먼은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고 했다. 고위험군에게는 고금리가 적용되는 것이 시장의 원리이며, 이를 부정하면 금융 자원은 왜곡 배분된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1691년에 발표한 《이자를 낮추고 화폐 가치를 높이는 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고찰 (Some Considerations of the Consequences of the Lowering of Interest and Raising the Value of Money)》글에서 당시 영국 의회가 법정 이자율 상한선을 강제로 낮추려 하자, 로크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다음과 같은 논리를 폈다.

"이 조치(이자율 인하)는 자신의 재산이 현금으로 되어 있는 과부와 고아들에게서 돈을 빼앗아, 이미 그들보다 더 부유한 채무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It will be a loss to widows, orphans, and all those who have their estates in money...)

6.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금융을 보라

한국의 권력자들의 금융권에 대한 비판은 대중의 반기업 정서에 기댄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은행이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소방서는 왜 빵을 구워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금융은 차가워야 한다. 냉철한 신용 평가와 리스크 관리가 작동해야만 경제의 혈관이 터지지 않고 순환할 수 있다.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정부의 재정 정책(복지)이 할 일이지, 예금자의 돈을 운용하는 은행에게 강요할 덕목이 아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은행의 탐욕을 탓하기 전에, 경쟁을 가로막고 있는 낡은 규제를 철폐하고, 금융 포퓰리즘이 초래할 신용 경색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감성팔이로 금융 시스템을 망가뜨리면, 그 잔해에 깔리는 것은 결국 보호하려 했던 서민들이다.

금융에 대한 인식이 왜 이렇게 후진적인지 보수, 진보 정권 할 것 없이 매번 똑 같다.

이런 관치의 변명은 AI 투자가 갈 곳이 없게 만든다. 위험을 평가해서 위험에 따라 이자와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을 때 금융 AI 시장이 생긴다. 의료도 원가 기반의 가격 통제하에서는 AI의 의료 투자가 일어날 수가 없다.

내가 관치와 규제 혁파없이는 AI 3대 강국의 구호가 망상이라고 늘 주장하는 이유다.

이런 반시장 논리하에서는 대한민국의 금융은 제대로된 산업이 될 수가 없다.

권력이 바뀌어도 한심한 금융 포퓰리즘과 관치 금융의 논리는 조금의 변함이 없다. 이번에도 금융 선진화는 없다는 이야기다.


#관치금융, #이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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