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도에 관련된 칼럼 하나만 써줘."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법조계 원로인 김성기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고시 수석 합격자인 그는 법관 생활도 하고 변호사협회장도 지냈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한 학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가 독재정권에 밉보여 쫓겨난 사람이었다.
성경에 '지혜롭기는 뱀같이 하라'는 말이 있다. 나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재판부가 깔아뭉개지 못할 인물을 앞세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뭡니까?"
그가 나를 살폈다.
"조진도 사건 아시죠?"
"엄 변호사가 그 사건을 하는 거 신문에서 봤죠."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공명심에 들떠서 까분다는 욕을 먹고 있습니다. 김 변호사님에게는 감히 그런 말들을 못할 겁니다.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많이 힘듭니다. 공짜 변호를 같이 하자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합시다."
그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따뜻했다. 손과 손을 통해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 역할을 나누겠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언론에 호소하기도 하고 탄원서도 받고 투쟁가가 되겠습니다. 김 변호사님은 재판정에서 방패가 되어 주십시오."
말을 듣는 그의 눈빛에서 결기가 보였다.
나는 동아일보사를 찾아갔다. 고등학교 선배 이도성 기자가 '주간동아'의 편집장이었다. 정치부 기자 출신인 그는 강직한 성격이었다.
"형님 고정 지면을 하나 주세요."
"뭘 쓸라고?"
"서러운 일이 많아서 세상에 대고 호소하려고"
"알았어, 마음대로 써."
호쾌하게 승낙했다.
나는 밤잠을 자지 않고 글을 썼다. 피곤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감옥의 거대한 높은 벽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가 없다. 기사를 써도 간접적이다. 그 안에 들어가 어둠 속을 직접 목격한 변호사인 내가 기자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매주 원고를 써서 '주간동아'에 연재했다. 나의 글쓰는 행위를 '변호사 저널리즘'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를 찾아갔다. 그의 글, 말 한마디가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지니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1년 후배였다.
"조진도에 관련된 칼럼 하나만 써줘."
"알았어요."
그가 승낙했다. 마음의 결이 같으면 말하지 않아도 통했다.
이틀 후 바로 한겨레신문에 그의 칼럼이 나왔다. 감사했다. 핵심은 이랬다.
'권세가의 '곳간'을 엿본 죄 값 독방 15년. 그러나 그에겐 앞으로 10년의 덤으로 사는 보호감호란 징역이 더 있다. 군사독재의 마지막 상징인 보호감호. 조진도라는 도둑을 10년간 더 감옥에서 썩게 둘 것인지의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는 단순한 도둑일 뿐이다.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15년 동안 그가 받은 조치는 분명히 불법이며 비인간적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가 죄 지은 값 이상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보호감호는 군사독재의 마지막 상징물이다. 독재자들의 오판이 낳은 낡은 유물인 것이다.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새로운 시대의 행형 개혁, 그것은 바로 조진도의 석방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 등 신문사 논설위원들을 찾아다녔다. 조진도를 통해 내가 발견한 인권 문제를 얘기했다. 내 얘기에 동조하는 사설과 칼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울컥했다.
주간지와 월간지도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방지 기자 중에는 국회의원들의 탄원서를 받아오면 특종을 주겠느냐고 흥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 측에서 찬물을 끼얹었던 언론의 불씨가 살아났다. 한겨레신문의 사설은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조진도 사건은 수수께끼다. 해답은 사실 간단하다. 권력가나 재벌들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숨거나 피해액을 줄이는 데 급급했다. 왜일까? 떳떳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 변호사의 말대로 조진도는 이 사회가 얼마나 썩었는가를 알려주는 '인간 몰래 카메라'였다.'
사설은 형량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난했다.
'죄 값을 치렀는데 다시 덤으로 감옥 10년을 살라는 것이 정당한 법 정신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다.'
권력과 정면으로 한판 붙어 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살려고 하니까 문제지 죽으려는 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때려죽일 용의보다 맞아 죽을 각오 쪽을 선택했다. 처음에 마지못해 맡았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얻어맞으면서 변호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비로소 알았다. 인도의 변호사였던 간디가 마부에게 얻어맞고 기차에서 쫓겨나면서 철저히 서민이 됐듯 나도 안일의 껍데기를 벗기로 했다.
단체에서의 강연 초청이 있었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인권유린과 보호감호제도의 허구성을 역설했다. 곳곳에 나를 도와줄 천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에서 나와 담요를 쓴 것처럼 포근했다. 싸움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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