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시설을 보니까 감옥보다 날 게 없네. 나 여기서 살기 싫은데요."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억울한 죽음을 다루겠다던 ‘그알’ 제작진, ‘쇼’를 요구했다

선고기일이 돌아왔다. 법정의 벽에 달린 시계가 오전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진도가 피고인석에 서 있었다. 나는 변호인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이윽고 재판장이 법정에 나와 앉았다. 재판장은 초안도 없이 대화하듯 판결이유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조진도의 석방을 탄원하고 있습니다. 또 국내 정치계부터 비롯해서 언론계 등 각계에서 피고인에게 관대한 처분을 해 줄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특히 담당 변호사가 정 있을 곳이 없으면 자기 집에 데리고 있겠다고까지 말하는 사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재판부로서는 굳이 더 이상 조진도를 잡아 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조진도에 대한 보호감호처분을 취소합니다."

자유를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승리였다. 힘들었던 고시에 합격했던 순간 같이 짜릿했다.

잠시 후 핸드폰의 벨이 울렸다. SBS의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작가였다.

"저희가 조진도를 다루고 싶습니다."

언론이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어떤 내용을 방영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대중의 오락물로 삼는 것은 싫었다.

"우리 프로는 가볍지 않습니다."

나는 그 프로를 여러 번 보았다.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영향력도 강했다.

"교도소 내의 인권 문제와 한 재소자의 억울한 죽음을 다루실 수 있겠습니까?"

"하겠습니다."

기회가 왔다. 조진도가 내게 요구한 것은 자신의 석방보다 박영두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그게 변호사의 사회정의라고 내게 알려 주었다.

그날 오후 나는 개량 한복 한 벌을 사가지고 구치소로 갔다. 석방이 되면 그는 당장 입을 것도 잘 곳도 없었다. 구치소 정문 앞에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카메라들이 검고 둥그런 눈을 뜨고 조진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아했다. 전에는 언론이 왜 그렇게 냉담했을까. 비웃고 조롱까지 했었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촬영팀도 와 있었다. 촬영감독이 내게 말했다.

"제가 변호사님 차에 숨어서 구치소 안을 몰래 촬영했으면 좋겠는데 도와 주시겠습니까?"

"그러시죠."

법에 위반 되지만 정의를 위해서라면 각오를 했다. 그를 차 뒷자리 바닥에 눕히고 정문을 통과해 구치소 깊숙한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사동이 나왔다. 그 벽에 붙어있는 작은 철문 안으로 들어가 교도관에게 내가 사온 개량 한복을 건네주고 나왔다. 철문 앞 화단가에 앉아 조진도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화단에 피어 있던 국화의 노란 빛깔이 한층 더 밝아져 있었다. 가슴까지 스며드는 상큼한 느낌이었다. 기뻐서 그런가.

이윽고 철문이 열리고 조진도가 나타났다. 그가 눈이 부신 듯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하얗게 바랜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가 내게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는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의 첫 꿈이 이루어졌다. 변호사를 시작할 때 나는 빠삐용 같은 존재들을 자유의 땅으로 옮겨주는 뱃사공이 됐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었다. 조진도는 내가 건네준 손님이었다.

천천히 구치소 언덕을 내려가면서 물었다.

"어때요?"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좋아요, 정말"

정문 쪽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이 우리가 나타나자 플래시를 터뜨렸다. 그곳에 내려와 대기하고 있던 나의 차에 조진도를 태우는 순간이었다. 차 안에 숨어 있던 방송국의 카메라 감독이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자기가 필요한 것은 다 찍었다는 태도였다. 그를 본 교도관들이 소리쳤다.

"이거 뭐야, 방송국에서 몰래 촬영을 했잖아? 변호사가 차에 숨겨서 침투했네. 큰일 났네"

그날 저녁 나는 조진도를 데리고 서울 변두리에 있는 선교회로 갔다. 그곳은 오랜 세월 감옥에 있다 나온 출소자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가구점 사장, 재래시장의 옷 장사, 재단사등 몇 명의 서민이 한 달에 얼마씩 갹출해서 운영했다. 나는 법률고문이었고, 조진도의 변호도 그곳 목사가 소개한 것이다. 방송국 팀이 촬영하기 위해 와 있었다.

"이봐 이 건물 시설 촬영해서 그림들을 만들고 말이야 조진도가 석방된 첫날 밤 창을 통해 밖을 보는 광경을 찍어."

피디가 데리고 온 스태프들에게 명령했다. 카메라맨과 조명 기사들이 시설들을 들쑤셨다. 조진도가 주위를 살펴보다가 갑자기 내뱉었다.

"여기 시설을 보니까 감옥보다 날 게 없네. 나 여기서 살기 싫은데요."

갑자기 주위가 얼어붙었다. 전혀 뜻밖의 말이었다. 깜짝 놀랐다. 감옥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말을 할 자리도 아니었다. 감옥에 있던 조진도는 자기를 희생해서 한 억울한 죽음을 알리겠다던 성자였다. 그런데 석방된 조진도는 다른 사람이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혼란이 왔다 조진도를 환영하러 왔던 한 남자가 조용히 내게 말했다.

"변호사님 저도 서울역 앞에서 저 친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거지 노릇을 했어요. 도둑질도 하고 싸움도 했죠. 그러다가 지금은 이 시설에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조진도 저 친구나 나나 똑같은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점은 저 친구는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 하나로 마치 자기가 스타라도 되는 듯, 이 시설에서 생활할 수 없다는 걸 보니 화가 치밉니다. 저 친구를 놔 두고 가시면 한 번 손 봐주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죠."

나이를 먹어도 그 세계는 주먹이 법이었다. 그가 거기서 있게 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자 첫 장면은 여기 와서 방에 앉아 창을 통해 밖을 쳐다 보는 거야."

피디가 대본을 보고 있었다. 조진도는 피디가 시키는 대로 반복했다.

"그다음은 석방된 첫날 자는 장면이야, 조진도를 바닥에 눕히고 그걸 찍어."

피디가 명령했다. 스태프 중 한 명이 요와 이불을 방바닥에 깔고 조진도가 그 위에 앉게 했다.

"야 어디서 성경 좀 가져 와라."

스태프가 얼른 가서 낡은 성경책 한 권을 가져다 조진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걸 몇 페이지 읽다가 잠자리에 들어가요."

방 구석의 의자에 앉은 피디가 소리쳤다. 조진도가 어설프게 시키는 대로 했다.

"참 돋보기를 쓰고 보게 해야 나이가 실감나겠네."

피디 머릿속의 장면대로 우리가 움직여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스태프가 돋보기를 구해왔다. 밤이 늦어지고 있었다. 조진도는 감독이 시키는 대로 돋보기를 쓰고 성경을 몇 장 들추다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연기를 했다. 조진도가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카메라의 빨간불이 깜박거리면 조진도의 첫날 밤 모습을 찍고 있었다.

"컷, 엔지."

감독이 소리쳤다. 조진도가 이불 속에서 눈을 떴다. 감독이 그를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눈꺼풀이 움직이면 안 되잖아, 다시."

피디는 완전히 배우에게 하듯 명령조였다. 나의 속에서 은은히 분노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조용히 피디에게 말했다.

"15년 동안 징역 살고 오늘 나온 사람입니다. 다음에 하면 안 되겠습니까?"

"안 돼요. 방송 일정이 있고 또 편집을 해야 하니까."

누르고 있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무엇을 위한 촬영일까. 조진도는 배우가 아니다. 대중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게 아니다. 프로그램도 그걸 만든 피디의 인격이 아닐까. 교만한 피디가 억울한 죽음에 공감할까.

"조진도 씨 내일은 구치소 쪽으로 나오쇼, 거기서 다시 그림 몇 장을 만들 게----."

피디가 명령했다. 그를 보면서 내가 말했다.

"촬영을 거부합니다."

"아니, 왜요? 인권 문제를 다루어 준다고 했잖아요? 나중에 편집에서 넣으면 돼요"

"필요없습니다."

조진도는 그들의 상품이 아니었다. 내게 비아냥이 돌아왔다. 방송의 이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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