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50대 중반이 넘은 지금까지 도둑이 몇이나 있어요?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청송에 사는 김신웅 장로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도소의 깊은 감방을 드나들며 재소자들을 돕는 성자로 알려진 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엄 변호사님"
온화한 목소리가 송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저를 증인으로 신청하셨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좀 곤란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전화 저편에서 그가 주저하는 게 느껴졌다.
"뭡니까?"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는 선교사업이 더 중요하다. 한 마리의 양보다 아흔 아홉 마리가 중요했다. 나는 그래서 증인 신청을 하기 전에 그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그들이 나의 일방적 요구로 마지못해 불려 나오는 모습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교도소 선교사업을 자유롭게 해 왔습니다. 그런데 교도소 측에서 제가 증언을 하면 앞으로 선교사업을 못하게 하겠다고 그럽니다. 제 입장을 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소환장을 받고 나서 여기 교도소장 눈치를 봤더니 강경하더라구요, 아무래도 교도소장이랑 간부들을 모시고 제가 식사 대접이라도 하면서 그분들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증인 출석 여부는 그다음에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증인에게 출석을 명한 것은 내가 아니라 국가였다. 부탁이 아니었다. 검사나 변호사가 증인을 신청하면 판사가 심사했다. 그리고 진실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국가가 출두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응하지 않으면 공권력을 동원해 구인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다음날 또 전화가 왔다. 교도관으로 있는 박효진 장로였다.
"엄 변호사님!"
목소리에 화가 잔뜩 묻어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가 소리쳤다.
"무슨 말씀입니까?"
"어떻게 사전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나를 증인으로 신청했느냐 이 말입니다."
"모르시고 계시다가 끌려 나오는 모습이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교도관 신분을 고려한 것이다.
"이보세요, 엄 변호사님."
그가 흥분했다.
"말씀하시죠."
"교정 조직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은 다 나쁜 놈을 만들고 저 혼자만 좋은 사람이 되면 제 입장이 뭐가 되겠습니까? 어떻게 자기 변호하는 것만 생각하고 교정 공무원으로 일하는 제 입장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는 내가 교도소 내의 인권유린을 말해달라는 걸로 오해하는 것 같았다.
"저 그게 아닌데요----"
나는 그냥 조진도가 믿음을 가지고 있더라, 그를 위해 기도해줬다는 두 마디 정도를 바랐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조직을 앞세우면 감방 앞에서 무릎 꿇고 한 그의 기도는 무엇이었을까.
"저는 지금 엄 변호사를 선임한 걸 엄청 후회하고 있어요, 일이 잘만 풀려 나간다면 제가 얼마든지 나가서 증언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재판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왜 세상에 쓸데없는 얘기들을 해서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까?"
내가 하는 것들이 쓸데없는 얘기일까.
"미안합니다. 그래도 조진도에게 기도해 줬다는 걸 말해 줄 수 있는 분은 박효진 장로님 밖에 없습니다. 간절히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여튼 지금 회의 시간이 되서 올라가야 합니다."
몇 시간 후 왕년의 홍 형사라는 사람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왜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증인으로 신청합니까?"
나는 화가 치밀었다.
"증인으로 누굴 신청하느냐는 변호사의 자유재량입니다. 내가 당신한테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내가 쏘아 붙였다.
"저 하여튼 안 나갑니다."
"그건 알아서 하십시오. 그렇지만 안 나오시면 당신에 대해 구인 신청을 할 겁니다."
내가 강하게 나갔다.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해 달라는 거요?"
그가 한풀 꺾였다.
"알고 있는 걸 말해주면 됩니다."
"난 아는 게 없다니까요."
"그러면 법정에서 그렇게 말씀하세요, 아는 게 없다고."
정말 힘들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의무였다. 왜 내가 사정하고 그들을 납득시켜야 하는 것일까.
마지막 공판이었다. 공허했다. 누가 따뜻한 한 마디라도 해 줄 수 있을까. 증인으로 된 박효진 교도관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감옥 안의 왕인 그는 무릎을 꿇고 죄인을 위해 기도했었다. 나는 그 신앙이 제복을 초월하기를 바랐다. 무리였다.
첫 번째 증인으로 회색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증언석에 올라와 앉았다. 15년 전 조진도를 검거했던 홍 형사였다. 내가 물었다.
"조진도의 침투 형태나 범행 수법을 담당 형사로서 잘 알죠?"
"그렇습니다."
"조진도는 어떤 도둑입니까?"
"강한 체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으로 대담한 범행을 하는 도둑이었죠. 부잣집만 노린 철저한 단독 범행이었습니다."
"범행 수법으로 볼 때 그당시 검거될 때부터 15년 넘게 흐른 지금 다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한창 체력이 좋을 때의 방식으로 50대 중반이 된 조진도가 다시 그렇게 하기는 힘들 걸요."
"도둑이지만 인간 조진도에 대해서 형사로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단 잡히면 순순히 자백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조진도가 있지만 저는 저 사람에게 감정 없습니다. 도둑이기는 하지만 정직하고 기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치겠습니다."
다음은 검사의 차례였다.
"몇 가지만 물읍시다."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증언석을 응시했다.
"조진도의 범죄 수법에서 반드시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부분이 어디 있다고 봅니까?"
형사는 순간 검사의 눈치를 살폈다. 검사가 다시 그를 다그쳤다.
"남의 집 방에 들어가서 보석을 들고 나오는데 강인한 체력이 왜 필요하냐구요?"
형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뭐--- 강한 체력이 필요 없죠."
"마치겠습니다."
검사의 표정에 승리감이 비쳤다.
다음은 문철기가 증언석에 올라왔다. 어린 거지 시절부터 조진도의 단짝 친구였다. 부은 것 같은 얼굴에 겁먹은 표정이었다.
"증인은 조진도와 어떤 관계입니까?"
재판장이 먼저 물었다.
"대여섯 살 때 서울역 앞 염천교에서 만났어요, 조진도나 나나 다 거지죠."
"부모나 가족은 없었습니까?"
"둘 다 고아였죠, 깡통 들고 밥 얻어먹으면서 자랐습니다."
"조진도가 어떻게 도둑질을 시작했죠?"
"당시 우리 염천교 아래 거지들은 너나없이 다 도둑질했어요. 죄의식이고 뭐고 없었어요."
재판장의 얼굴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검사, 신문하시죠"
재판장이 배턴을 검사에게 넘겼다. 검사가 일어났다. 얼굴에 찬바람이 돌았다.
"조진도는 평생 도둑질을 한 셈인데, 그렇죠?"
증인이 검사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습니다."
"당시 함께 다리 아래서 구걸을 하던 친구들 모두 지금까지 도둑은 아니죠?"
문기철이 순간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어때요? 50대 중반이 넘은 지금까지 도둑이 몇이나 있어요?"
"대부분은 아닙니다."
문기철이 대답했다.
"이상입니다."
검사가 말했다. 검사의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다음 증인은 60대쯤의 김신웅 장로였다. 농부 같은 소박한 인상이었다. 직업이 시골 수의사라고 했다. 내가 그에게 묻기 시작했다.
"증인은 청송교도소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면서 재소자들의 정신적인 아버지라고 불린다는데 맞습니까?"
"뭐 그렇다기 보다는----."
겸손한 모습이었다.
"증인은 청송교도소에서 몇 년간 조진도가 만난 유일한 분이죠?"
"그건 그렇습니다."
"감옥 안의 조진도가 어떤 인간인지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조진도의 옆방에 병자가 있었습니다. 발작을 하면서 똥을 싸서는 자기 몸은 물론이고 감방 바닥이나 벽 천정에 온통 쳐발랐던 적이 있습니다. 교도관들도 진저리를 치면서 그 사람을 그냥 놔두고 있었죠, 조진도가 자청해서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물과 걸레를 가져다가 똥을 다 치우고 그 사람 몸까지 다 닦아준 일이 있었습니다. 험하고 거친 마음을 가졌다면 그렇게 할 수 없죠."
처음으로 조진도를 위한 따뜻한 말을 해 주는 천사였다.
"증인이 본 조진도의 인품은 어땠습니까?"
"한번은 제가 조진도에게 영치금을 넣어준 적이 있습니다. 며칠 후 보니까 돈이 한푼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저는 그가 돈을 낭비하는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아니었죠, 조진도는 그 돈을 주변 사람들 물건 사는 데 몽땅 다 써 버린 거예요. 한겨울에 자기는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면양말을 사 주는 사람입니다. 교도관들도 조진도를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죠."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는 선한 사마리아인이기도 했다.
"증인은 조진도가 이런 재판을 받게 된 걸 어떻게 생각하시죠?"
"조진도가 살아서 이렇게 재판을 받는 자체가 모두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조진도가 엎드려서 양재기에 든 밥을 개같이 먹으면서도 참고 버티면서 신자가 되어 지금 재판을 받는 게 기적입니다."
피고인 석에서 듣고 있던 조진도가 기도하는 것 같이 양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애절한 표정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로님."
증인의 뒤에 대고 말하는 조진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메마르고 딱딱한 영혼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검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딱딱한 얼굴로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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