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입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의 숨어있는 인품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 장면.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 장면.

민사 소송의 대리를 맡았던 인연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사람을 알게 된 적이 있었다. 그는 정승화 참모총장을 체포한 12.12군사 반란의 주역이었다. 합동수사본부의 국장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구속하기도 했었다.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권력의 실세였다. 그런데 그를 통해 역설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숨어있는 선한 인품을 알게 됐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불안했어요. 저뿐 아니라 국보위입법회의에서 일했거나 전두환 정권의 핵심들은 다 겁을 먹었죠. 국보위에서 일하던 한 검사 출신은 김대중을 죽여야 한다고 제안했던 사람이었죠. 전임인 김영삼 대통령은 보복에 철저했어요. 자기 편까지 다치게 한 사람이니까요. 저만 해도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세 번을 감옥을 갔습니다."

김영삼 정권 시절 전두환의 군사반란 재판 당시 그가 죄수복을 입고 재판을 받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통해 성격이 무난한 정대철 씨에게 부탁했죠. 정대철 씨는 그 선대부터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으니까요. 정대철 씨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두환의 심복이었던 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대요. 그랬더니 김대중 대통령이 저에 대해서 하는 말이 '그 사람 참 괜찮았어. 수사를 할 때 모질게 하지도 않았고 그 무렵 나온 신문들을 감옥에 가지고 와서 보여주기도 했지. 힘들어 하면 도와줘'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보복을 하지 않는 분이었어요. 원수를 사랑하는 게 최대의 보복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어요."

적의 입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의 숨어있는 인품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무렵 나는 퇴직한 중앙정보부의 수사관을 만난 적도 있었다. 그는 공안 분야의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육이오전쟁 무렵 농사를 짓다가 소년병으로 군에 끌려간 그는 전쟁이 끝날 무렵 특무대로 차출이 됐다고 했다. 그때부터 평생을 공안기관의 지하실에서 일을 해왔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을 계획할 때 그가 특무대에서 김종필을 조사했다고 했다. 

중앙정보부가 만들어지자 그는 정보부로 자리를 옮겼다. 남산의 지하실에서 그의 조사를 받지 않은 정치인은 거의 없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수사했었다. 그 과정에서 2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다는 말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대중 대통령은 그에게는 꼭 응징할 것 같았다.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만났을 때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퇴직을 하고 70대 중반이 됐습니다. 다리가 약해져서 제대로 걷지를 못해요. 저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부터 모시기 시작했어요. 제가 담당한 사건 중에는 인혁당 사건도 있고 민청련 사건도 있었어요. 제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해 식견이 없이 행동한 것도 많아요. 김대중 대통령을 조사할 때도 나는 고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저도 2주일 동안 같이 잠을 자지 않았거든요. 같이 고통을 받으면 괴롭힌 게 아니라고 생각했었죠. 이제 그분이 대통령이 되셨으니 이번 정권은 보복을 할 것이고 저는 조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 되겠죠."

그는 각오를 한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를 용서한 것 같았다.

내가 칠십 년이 넘게 살아온 이 사회를 보면 항상 증오가 인화성 높은 물질처럼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 증오의 대상이 특정계급일 때도 있었고 한 지도자에게 쏠린 적도 있었다.

지금도 정치에 휘둘린 국민들이 패가 갈리어 상대방을 증오하고 있다. 북한을 미워해야 하고 친일파를 저주해야 하는 의무감이 주입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증오가 아니라 용서로 국민들의 영혼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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