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오랫동안 첩의 자식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오래전 사십대 쯤의 남자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적이 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 재벌 회장의 손자였다. 미녀 배우와 회장 아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첩의 자식인 셈이었다.
회장은 손자와 배우를 미국으로 보냈었다. 어른이 된 손자는 성장을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커가는데 호적에 아버지의 이름을 적는 난이 비어 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했다. 재벌가는 그런 존재들을 파충류보다 더 싫어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조차 자기 자식을 그렇게 취급하는 것 같았다. 첩의 자식은 서러운 것 같았다.
미혼인 여배우가 임신했다는 기사를 신문의 연예란에서 본 적이 있었다. 세월이 흐른 후 그 여배우가 열댓 살의 꼬마를 데리고 나의 법률사무소로 찾아왔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아이의 아빠는 영화사업의 중심 역할을 했던 사업가 집의 아들이었다. 유부남이었던 그는 여배우가 임신한 걸 알고 내팽개친 것 같았다. 여배우는 스캔들로 일도 끊기고 모녀가 고생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 아이도 속칭 첩의 자식인 것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그 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빠 나쁜 놈이예요. 혼을 내주세요."
아이의 한과 아픔이 배어있는 말이었다.
한 청년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와 이런 말을 했었다.
"저는 젊은 의사의 무책임한 사랑의 부산물이죠. 아버지가 총각 시절 심심하면 들르던 다방의 마담과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니까요. 아버지는 잠시 데리고 놀던 어머니를 버리고 배경 좋은 집안의 여자와 결혼했어요. 저는 졸지에 첩의 자식이 된 셈이죠. 그래서 성장한 후에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했어요.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과학이 내가 아들이라고 증명을 해주더라구요. 그런데도 판사는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고 판결을 선고했어요. 의사인 아버지가 장관 출신 힘 있는 변호사를 선임했거든요.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요? 큰 병원장인 아버지를 찾아갔죠. 보안요원들이 나를 강제로 끌어내더라구요."
일부일처제에서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이 아니면 첩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그 자식들은 똑같은 지위에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도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돈이 피보다 진하다고 착각을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변호사인 나는 투쟁을 해서 그런 사람들을 호적에 올리곤 했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자신이 그룹 회장인 아버지와 여비서 사이에서 난 자식이라고 했다. 다행히 그 아버지는 여비서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호적에 올려주었다. 어려서부터 이복형들에게 주눅이 들었던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엄마가 첩이라는 사실을 몰랐어. 그냥 아버지가 일주일이면 한두 번 집에 오는 걸로 알았을 뿐이지. 그래도 아버지는 나를 입적시켜 주고 경영에도 참여시켰지. 회사에서 일할 때 천대가 심했어. 본부인에게서 난 이복형들이 노골적으로 나를 싫어하고 견제하는 거야. 회장인 아버지가 내게 유언한 게 있어. 너는 형들을 절대로 형제로 알면 안 된다고 말이야. 형들을 왕같이 모셔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지."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카스트 제도가 아직도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건 본처의 자식과 첩의 자식의 차별이었다.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니까 그런 재벌가가 한두 집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트럭에 현찰을 실어 와서 첩의 자식에게 건네면서 호적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식의 존재를 돈으로 지워버리는 행태였다.
바람을 피워 난 자식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의 역사를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반이면 여자 노비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아이가 생기면 자식이 아니라 아버지의 노비로 삼았다. 그 억울함이 조선시대의 소설 ‘홍길동전’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렇게 자식을 노예로 삼는 나라가 몇이나 됐을까. 전쟁포로나 채무자를 노예로 삼는 나라는 있어도 제 자식을 노비로 삼는 경우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이 나라는 오랫동안 첩의 자식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아버지의 책임을 엉뚱하게 죄 없는 자식이 진 셈이다.
어제 우연히 김대중 대통령의 심복이던 박지원 의원의 인터뷰를 화면을 통해 보았다. 그중 이런 말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서전을 쓸 때 자신이 첩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혔어요. 어머니가 진도에 있는 주막집을 했다는 거죠. 아버지가 본처와 어머니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살다가 김대중 대통령을 낳았다는 거예요. 김대중 대통령은 어머니가 목포로 나와 여관을 했다는 것도 얘기했어요. 저는 왜 그런 사실을 굳이 쓰시냐고 반대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그걸 써야겠다고 하셨어요."
김대중 대통령도 성장하면서 깊은 내면에는 첩의 자식이라는 게 상처로 있었을 것 같다. 그 상처를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맑은 강물에 씻는 것과 같은 행위다.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땅의 수많은 첩의 자식들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체로서 소중하다. 김대중은 자서전을 통해 또 다른 평등을 이룬 대통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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