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 반계리 은행나무의 독수공방 800년
[최보식의언론=윤일원 논설위원]

몇 년 전부터 가을만 되면 SNS를 달군 사진 한 장.
딴에는 전국 구석구석 발품을 팔지 않은 곳이 없는 내게 이건 치명적인 약점이자 모욕에 가까웠다. 무슨 말이냐고? 좀 뻥을 치자면 오지 중 오지 '3둔 4가리(강원도 심산유곡)'는 물론 웬만한 풍경 사진은 딱 보면 알아 맞추는 경지가 여반장(如反掌) 수준이었는데, 이렇게 가까이 두고도 모르다니, 늘 이맘때면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또 달궈지는 페이스북 사진들, 먼 사람의 사진이야 가볍게 물리치는 경지에 이르러 초연해질 수 있지만, 매우 가까운 지인의 사진이 떡하니 페북을 장식하면서, 내 아무리 시기심을 다루는 솜씨가 부처님 경지에 이르렀다 하여도 이건 참을 수가 없어 드디어 '반계리'로 향했다.
오오, 반계리 은행나무, 딱 봐도 참으로 자랑할 만했다. 나무가 나를 압도하면서 '억!' 하고 무너진 딱 두 번째였다. 첫 번째가 삼척 준경묘 금강송이었으나 그건 군락이었고, 단일 나무로서는 처음이었다.
뭐랄까? 용문사 은행나무가 오래 산 것으로 한몫했다면, 반계리는 수명뿐만 아니라 수형도 참으로 예쁘면서도 우람하고 또 접근성도 매우 뛰어났다.
은행나무는 암컷과 수컷이 태어날 때부터 달라 '음양'의 미덕을 갖춘 것은 물론, 열매를 맺기까지 한 세대의 시간이 필요하니 '배려'의 미덕에다, 씨가 여러 개로 나뉘지 않고 단 하나인 '지조'의 미덕에다, 또 그 어떤 해충도 달라붙지 못하니 '탐관오리가 되지 말라'는 미덕에다, 무엇보다도 공자가 행단(杏壇)의 그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근거로, 무엇에서든지 성리학의 이치를 깨닫고자 했던 사대부들이 향교 앞에 많이 심은 이유를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내가 주목하는 은행의 미덕은 그것이 아니라 고생대 식물이라는 점이다. 지구는 무슨 이유로 스스로 다섯 번 대멸종을 했다. 대멸종이란 마치 폐지를 분쇄기로 파쇄하는 것처럼, 지구가 무슨 이유로 지구상에 살아 있는 생명들을 무차별 파쇄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중 가장 악독한 연대기가 고생대 말 "페름기 대종말"로 전 지구 종 96%가 절멸했다.
지질학 연대기에 "석탄 틈새"라는 용어가 있다. 무려 1000만 년 동안 화석기록에 나무가 사라진 시대, 바로 직전이 나무가 울울창창한 석탄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대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은행나무는 도도하게 살아 남아 "너, 까불고 있어" 하면서 우리를 비웃고 있다.
내가 비웃고 있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인류세(약 100년 전에서 현재)가 환경의 파괴로 지구 종의 70%를 멸종시킬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가을의 전설' 반계리 은행나무, 단 2주 동안만 펼치는 향연을 보기 위해 갓길 주차로만 보면 6·25 피난 행렬에 버금갈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저마다 이 방대한 은행나무를 어떻게 다룰지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멀리서 한 프레임에 다 담으면 초라하고, 가까이서 일부만 담으면 뭔가 아쉬운 듯, 전체와 부분을 다 가지려는 이 딜레마, ‘임은 뭍같이 까딱 하지 않는데’, 아, 반계리 은행나무여, 날 어쩌란 말이냐?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반계리 은행나무는 분명 숫놈이야. 은행이 은행은 없고 낙엽만 있었거든. 만약 암놈이라면 어디 사방 십 리 안에 숫놈이 있었을테고 분명 열매를 맺어야 해, 그러니 숫놈이야. 800년 동안 밤마다 얼마나 외로웠겠어. 빈 터도 많던데, 용문사 은행나무는 암놈이니 신방을 차려줘? 아니지. 200살이나 더 많은 할매한테 신방 차렸다고 혼날 거야. 그럴 바엔 800살이나 어린 숫처녀가 좋지 않을까?"
말없이 째려보는 마누라를 애써 외면한 채 분명 후계목을 키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은행나무는 진화 과정에서 씨앗을 전파하는 매개 동물이 멸종당해, 인간만이 유일한 매개 동물이 되어, 야생종이 절멸한 위기 식물이기 때문이다.
#반계리은행나무, #용문은행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