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거벗은 산은 사실 어렸을 때 내 마음에 이 나라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안겨준 지표

[최보식의언론=주동식 전 제3의길 편집인]

한국이 정말 엄청나게 변화하고 발전했다는 걸 실감하는 현상이 몇 개 있는데, 개인적으로 첫번째로 꼽고 싶은 게 울창해진 산림이다. 이건 사실 전혀 깨닫지 못하다가 어느 날 문득 '발견'한 현상이었다. 아니, 우리나라 숲이 이렇게 무성했었나? 언제부터 이랬지? 이 지역만 그런 건가?

알고 봤더니 숲이 무성해진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이렇게 수풀이 질적으로 변화한, 이른바 양질전화 현상이 가시화됐는지는 잘 모른다. 그냥 어느 순간 이렇게 변화가 확 다가왔다고 표현할 수밖에.

헐거벗은 산은 사실 어렸을 때 내 마음에 이 나라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안겨준 지표 가운데 하나였다. 외국 영화나 사진 등에서 보여지는 울창한 산과 너무 적나라한 대조였던 것이다. 처참했다.

학교 등에서 강요(?)하는 나무 심기나 식목일 행사 등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요식 행위 이상일 수 없었다. 저 헐벗은 붉은 산을 푸르게 만든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심지어 김동인의 작품에도 <붉은 산>이라는 게 있지 않나?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내 고향 전라도에 대해 느끼는 안타까운 심정도 헐벗은 산에 기인하는 바 컸다. 경상도 출신인 대학 동기도 호남지방을 여행한 뒤 느낀 소감을 한 마디로 "너무 헐벗었습디다"라고 표현했다. 바싹 마른 것 같은 호남의 산야를 볼 때마다 차라리 눈을 감고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고향에 갔다가 야외로 드라이브 나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놀랍게 무성해지고 푸르러진 숲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순서가 바뀌었다. 나는 문득 내 고향의 산과 들판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하고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의 원인을 찾다가 무성해진 전원 풍경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경상도의 산세가 험하고 남성적인 데 비해 호남의 그것은 부드럽고 여성적이다. 산등성이도 부드러운 곡선 위주이며 그 형상이 짙은 푸른색의 들판과 어우러져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달까.

나는 반성했다. 이 나라가 이렇게 아름답게 변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 나라의 변화에 나는 도대체 무슨 기여를 했는지. 오히려 이런 변화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주로 하지 않았는지.

이야기를 풀다 보니 너무 길어졌다. 이 나라의 변화 발전을 실감하는 지표를 몇 개 더 들고 싶었는데 다음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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