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2000명'의 주술에 빠지지 않았다면...

[최보식의언론=최보식 편집인]

SBS 화면 캡처
SBS 화면 캡처

한덕수 총리의 '의대 정원 자율 조정' 특별브리핑을 보면서,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 '바보'가 되는가를 생각했다. 약간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다 보이는데, 왜 그는 스스로 더 바보가 되는 코스를 택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협상과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며 진두지휘했던 '의대증원 2000명'을 한덕수 총리· 이주호 교육부장관, 조규홍 복지부장관이 총알받이로 나와 대신 거둬들였다. 혼자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대통령은 불리한 상황에서는 으례 몸을 숨기는 겁 많은 지도자로 국민들은 여기지 않을까. 

이번 의료사태가 '외통수'로 빠진 것은 순전히 윤 대통령의 책임이었다. '2000명'이라는 숫자를 의료개혁과 동일시하면서 이렇게 정권의 명운을 걸 이유가 없었다. 정부 정책을 '국민의 뜻'으로 포장해 저항하는 의사들을 두들겨패대는 것은 '쌍팔년도 수법'으로 비쳤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자제해야 할 때는 나서서 마구 내지르고, 막상 자신이 책임지고 수습해야 할 때는 각료나 참모 뒤로 숨어버린 것이다.   

불행하게도 정부의 '퇴각'은 타이밍을 너무 놓쳤다. 두달반이나 질질 끌면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불안에 빠뜨린 뒤다. 의사들의 자존심과 사명감에 너무 상처를 주고 난  뒤다.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의사들을 "직역 카르텔"이라며 피니쉬 블로우를 날리고 난 뒤다.  

윤 대통령의 독선과 고집만 아니었으면,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2000명'의 주술에 빠지지 않았다면, 훨씬 일찍 의료사테에서 빠져나오고 의사들과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 참패의 원인이 되지않았을 것이다. '바보'는 자기가 어떤 평지풍파를 일으켰는지 모르고, 그런 뒤 혼란한 현장을 남겨두고 혼자 슬며시 사라지면 해결되는 줄 아는 이를 말한다.  

한덕수 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금년에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말했다. 

증원 규모가 큰 거점국립대 위주로 '증원 50% 감축'이 이뤄지고, 건의안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3개 국립대(전북대, 전남대, 부산대)와 사립대들까지 동참하면  의대 증원분은 1500명~1000명 선으로 줄어들 수 있다.

바로 전 날 강원대, 경북대, 경상국립대, 충남대, 충북대, 제주대 등 6개 비수도권 국립대 총장의 '의대 신입생 증원 규모를 일부 조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건의안을 전격 수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런 식으로 '모양새'를 갖췄다고 해서 정부의 구차함이 감춰지지 않는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가 명분과 실리를 얻었다'고 평가했지만, 오히려 당당해야 할 정부가 명분과 실리 양쪽에서 모두 잃은 것이다. 

 당초 1500명~1000명 선이었으면 의료계와 부드럽게 타협이 가능했을 것이다. 두달반 동안 의사들과 극한 대결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의 조정안이 의사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전공의 커뮤니티나 단체방에서는 '2000명은 과학적 추계 타령하더니, 총장 자율로 50100% 룰렛 돌리기?' '정부에서 줄이자고 하면 모양 빠지니까 총장들 이용해서 조정하기?' 등 조롱글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의료계 안에서는 "원점 재검토(의대 증원의 전면 백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결국 이 게임에서 정부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솔직하고 당당하게 백기를 드는 게 덜 '바보'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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