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무서워하는 사람은 살려야 한다"는 72세의 노 대신은 죽을 각오로 1298자 상소를 올린다
[최보식의언론=윤일원 논설위원]

두 인물이 있었다. 한 분은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에서 자랐고 다른 한 분은 낙동강에서 자랐다.
서로 떨어진 거리는 대략 30리 길,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했으나 다른 한 분은 또 다른 스승도 모셨다. 다 같은 전란을 겪었으며, 한 분은 좌의정에 올랐고 또 한 분은 영의정에 올랐으며, 한 분은 살렸고 한 분은 구했다.
누구를 살렸고 누구를 구했는가?
1597년 8월 정유재란이 발생했다. 임진왜란 6년 차 일본은 명나라와 협상이 결렬되면서 14만 병력으로 재침공을 시작하였으며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변했다.
일본도 이 전쟁이 마지막 전쟁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선군과 명군이 일본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접경지역을 소각하는 청야(淸野) 전략을 취했다. 남해안 일대는 물론이며 저 멀리 전북 남원에서 낙동강 내륙을 타고 올라와 상주지방까지 닥치는 데로 불 지르고 죽였다.
그해 정유년 2월 6일,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 조선에서 발생한다. 조선은 축복이요 일본은 불행이 된 사건.
임진왜란이 지루하게 전선을 형성하자 일본은 요시라를 통해서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극비 정보를 흘린다. 왜장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모월 모시에 기습공격을 하니 조선 수군은 기다렸다가 반격하라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간악한 '반간계(反間計)'에 조선 조정은 놀아났으니 이순신의 목숨은 이미 반쯤 죽은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선조는 충무공에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순신은 반간계임을 이미 알아차리고 선조의 명령에 불응한다.
“이순신을 잡아올 때 선전관에게 표신(標信)과 밀부(密符)를 주어 보내 잡아오도록 하고, 원균과 교대한 뒤에 잡아 오라.”
선조가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내린 전교(傳敎)이며, 그의 죄목은 다음과 같았다.
“조정을 속이고 임금을 무시한 죄, 적을 놓아주고 치지 않음으로써 나라를 저버린 죄, 심지어 남의 공로를 가로채고, 또 남을 죄에 몰아넣은 죄, 그 모두는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행동한 죄”*
국문(鞫問)이 시작되었다. 1차 국문은 간신히 잘 견뎌냈다. 조선의 국문은 참으로 가혹하여 2차 국문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죽어 나자빠졌다.
한양 땅 구중궁궐에서 전선(戰線)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관료들의 훈수는 TV로 축구를 보면서 “이강인이 좌측으로 치고 올라온 후 손흥민에게 센터링을 하면, 손흥민은 수비수 두 명을 가볍게 제치고 왼발로 좌측 골대 방향으로 슛하면” 최소한 4:0으로 이길 것 같다. 이렇게 되지 못하면 감독의 전략 전술 부재이니 ‘자르라고’ 명령만 하면 된다.
이런 훈수로 병력을 이리 보내 저놈을 치고, 저놈이 공격하면 이렇게 방어하면 될 일을 이순신은 날이면 날마다 왜놈과 싸우지 않고 원균과 싸우기만 하니 "전쟁을 질질 끄는 원인이 모두 이순신에게 있다"는 서슬 시퍼런 선조의 분노에 누구도 이순신을 옹호할 생각이 없었다.
“순신은 진실로 장수의 재질을 지녔고 해전과 육전의 재주를 겸비했습니다. 이러한 인물은 쉽게 얻지 못할뿐더러 백성들이 의지하는 바가 크고 적이 무서워하는 사람이옵니다.”
단 한 사람, "적이 무서워하는 사람은 살려야 한다"는 72세의 노 대신은 죽을 각오로 1298자 상소를 올린다. ‘논구이순신차(論救李舜臣箚)’
선조는 이순신에게 백의종군을 명했고, 그 사이 원균은 선조의 바람대로 칠천량 전투를 치루었으나 대패하고 군사 120여 명 병선 13척을 남긴다.
그가 임진왜란 때 구한 명장은 이순신뿐만 아니라 담양에서 의병 활동을 한 김덕령(金德齡), 이여송을 따라 참전한 두사충, 그리고 곽재우, 유정, 한백겸, 박명현을 추천하여 바람 앞 등불인 된 조선을 지켰다.
그는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이다. 또 다른 한 분은 서애 류성룡이다. 두 분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불과 30여 리, 두 분 다 퇴계 이황의 제자이나 정탁만은 남명 조식의 문하에 수학하여 양도의 맥을 잇게 된다. 그런 그가 어찌 경사, 천문, 지리, 상수(象數), 병가에 밝지 않으리오?
하지만 배운 학풍이 달라 약포 정탁 서원인 도정서원(道正書院)은 아는 이가 드물지만, 서애 류성룡의 서원인 병산서원에는 차가 빈틈이 없으니, 이는 곧 나라를 구한 경중에 따라 다른 것만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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