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군이 자랑하는 최첨단 구축함에는 반드시 ‘이지스함’이라는 별칭이 붙어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한 장면, 최수종(강감찬 역)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한 장면, 최수종(강감찬 역)

'그리스 신화'를 읽지 않고는 서양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 그만큼 그들에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 아직도 살아 있거든. 대한민국 해군이 자랑하는 최첨단 구축함에는 반드시 ‘이지스함’이라는 별칭이 붙어있을 정도야. 이지스는 그리스 여신인 아테나가 들고 다니는 무적의 방패.

DDG-993 서애류성룡함 이야. KD-3급으로 7천600t에 길이 166m 너비 21m로 360도를 감시하는 레이더가 1,000㎞ 떨어진 1,000여 개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 추적하고, 이 가운데 20여 개를 동시에 공격해. ‘신의 방패’라 불러. 왜냐고? 이지스함이거든.

미래의 전쟁은 군인과 결합한 자율형 드론과 로봇 전쟁으로 예상해. 정말 지겨운 전쟁, 악몽 같은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거의 없어. 대한민국 어느 벤처의 비전이야. “전술 인공지능 플랫폼, Cerberus로 그 어떤 적도 막는다” 야. 케르베로스(Cerber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 셋 달린 개. 24시간 잠도 자지 않고 지옥문을 지키는 개. 상상이 가? 벤처의 호연지기가 정말 멋지지.

우리는 안타깝게도 '영웅'이 없어. 왜 그런지 몰라. 대륙의 눈치 때문에 그랬는지 아니면 일찍부터 영웅이 임금에게로 귀속되어서 그런지. 죄다 영웅은 태어나자마자 꿈도 못 펼치고 그냥 죽어.

어릴 때 읽었던 <아기장수 전설> 알지? 가난한 집에 태어난 아기가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리고 어릴 때부터 영특하여 장차 큰 인물이 될 것 같으니 부모는 그만 놀라 아이를 죽이고, 그랬더니 장차 아이가 탈 용마가 나타나 울고 가더라는 거야.

또 있어. <오누이 힘내기 설화>. 홀어머니가 힘이 장사인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살았어. 둘은 같이 살 수 없는 운명이라 ‘목 베기’ 내기를 해. 오빠가 쇠나막신을 신고 한양까지 갔다 올 동안 누이는 치마로 성을 쌓는 거야. 가만히 보니 누이가 이길 것 같아 딸에게 뜨거운 팥죽을 먹여 아들을 이기게 만들고, 누이는 내기에 져서 죽고, 아들은 비겁하게 이겼다가 죽고, 어미는 자식이 다 죽어서 죽고. 죄다 이런 부류의 설화야. 참으로 서글프지.

서울 광화문에는 달랑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밖에 없어. 단군으로부터 5천 년 역사에 영웅이 어디 둘밖에 없지는 않을 터, 여전히 영웅에 인색한 나라에 둘만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을 지키고 있으니 외국인들은 '조선'의 역사만 역사인 줄 알 거야.

수나라 침공을 막은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당 태종의 침공에 맞선 안시성의 양만춘, 백제의 강역을 일본과 중국까지 확장한 무령왕, 나라를 위한 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계백, 지긋지긋한 내전을 종식시키고 삼한을 통일한 김유신, 거란의 침공에 맞선 지혜의 서희와 힘의 강감찬, 두만강 너머 팔백 리에 동북 9성을 쌓은 윤관, 이들 영웅은 어디로 사라졌지?

1945년 해방 이후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가 우리야. 그런데 전국 어디를 가도 '추모공원'만 보여. 이천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영동 노근리 평화공원, 거창사건추모공원, 광주 5·18 기념공원, 제주 4·3 평화공원 등등 성장기 국가 시절에 있었던 피해자 추모 공원도 있어야지만, 대한민국을 기적으로 만든 영웅도 있어야 하지 않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어려운 때가 많았어. 그때 영웅이 나타나 나라를 구한 것도 맞아. 이제 좀스럽게 너무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만한 국력이면 영웅이 있을 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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